# 용기의 시작
무엇부터 써야 할까. 무엇부터 말하고 싶은 걸까. 쓰면서 고민하자 싶어서 무작정 노트북 앞에 앉았다. 어쩌면 고백에 가까운 이야기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걱정도 되고 기대도 되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떼는 중이다. 일의 연장선에서 칼럼을 쓰거나 책을 쓴다거나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꽤 망설이게 된다.
어떻게든 이야기를 쓰고 싶단 생각에 소설을 통해서 내 생각을 슬쩍 집어넣는 것도 좋겠다는 비열한 시도도 했었다. 비겁한 동기로 시작된 일은 결국 끝맺지 못한 이야기로 남겨졌다. 소설을 처음 쓰겠다 했을 땐,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흥분과 기대가 충분했다. 그러나 본업을 하면서 소설을 쓰기란 녹록지 않았고, 소설 역시 내 이야기가 반영되는 것에 겁을 먹게 됐다. 내게서 나오는 이야기는 곧 '나'니까. 비겁함은 죄책감으로 둔갑해서 더더욱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게 됐다. 완성되지 못한 이야기는 숙제처럼 메모장을 채워갔고, 나 역시 본래의 내 자리로 돌아오게 됐다. 그렇게 시간이 또 흘렀다.
뜻하지 않게 바빠지면서 일은 확장되었고 내 손길이 닿아야 하는 일도 늘어났다. 그렇게 모른 척 지난 시간이 꽤 됐다. 책조차 펴지 않으며. 글과 이야기를 깊숙한 상자에 꽁꽁 싸맸다. 다시 글을 쓴다면, 필시 내 얘기는 아닐 거라고 뻔뻔하게 생각하면서.
그런 내가, 다시 글을 쓰겠다는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도 내 이야기로.
내 이야기를 누가 관심이나 줄까 싶다. 재미도 없는 상담사 나부랭이 이야기.
은둔을 자처하고 한남동 구석에 자리를 잡고 시작된 개인 작업실에 숨어들었던 때가 벌써 8년 전이다. 시간의 흐름만큼 개인 작업실은 어느덧 함께하는 식구가 점차 늘었다. 식구가 늘어난 만큼 외관도 상담센터의 구색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몇 줄로 정리될 수 있는 이야기를 뭐 하러 풀까 싶었지만, 그냥 바람처럼 분 마음의 용기에서 시작해 보려 한다.
이 이야기를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서 풀어야 할까. 아마도 사람이겠지 싶다. '나'라는 사람, '내가' 만난 사람, '나와' 함께 하는 사람. 아무래도 '사람'은 내게 제일 중요하니까. 은둔을 자처한 것도 '사람' 때문이었고 세상 밖으로 다시 슬금슬금 나오게 된 것도 '사람' 때문이었다. 철저하게 사고 중심인 쌉T인 내가 '사람'을 어찌 풀지는, 나조차도 예상이 안된다. 그저, 내 인생에서 '사람'은 빼놓은 수 없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니까.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이 버거운 내가 조금이라도 적응하고 살기 위해 '사람'에 대해 공부했고, 결국은 '사람'을 만나며 나는 '강제 성숙'되었다. 나는 지금도 '사람'을 매일 만난다. 그렇게 나는 '사람' 때문에 달라졌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앞으로 쓰일 이야기가 뻔한 '사람' 이야기가 아닌, '사람'을 통한 내 얘기를 하려 한다. 내가 어떻게 '강제 성숙'되었는지, 그리고 지금도 어떻게 '강제 성숙' 당하고 있는지. 오롯이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일지라도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공개된 장소에서.
앞으로 풀어갈 나의 이야기가 조금 뻔뻔스럽다 해도 너그러이 이해해주십사 하는 마음으로, 구구절절 변명처럼 늘어놓는 나의 변이다. 만약 한 명이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면, 혹은 그 과정 속에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시작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