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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중철학자 유성범 Apr 14. 2024

사람을 먹는 세상

다큐편

누워서 아늑한 티비를 보는 것은 나름대로의 힐링타임이다. 나는 채널을 돌리다가 동물의 왕국같은 채널을 발견했다. 엄마도 좋아한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주제는 새끼 동물들의 탄생과 성장과정이었다. 장장 4개월을 걸쳐 사바나 초원 동물들의 육아 생활을 찍은 다큐멘터리었는데, 새끼들이 너무 귀여웠다.     


“역시 무슨 동물이건 새끼는 다 예쁘네.” 나는 말했다. 엄마는 멧돼지 새끼들을 가리키며 “돼지새끼”하며 혼자 껄껄 웃었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여러 동물들의 새끼를 비춰준다. 젖을 먹는 코끼리, 원숭이, 얼룩말부터, 그들을 노리는 사자, 치타, 하이애나같은 맹수, 그리고 곧이어 앵글에 뒤따라 나오는 그들의 새끼들까지. 내심 그 연출에 감탄하며 나는 넋놓은 듯이 그들의 먹이사슬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약육강식’ 그 자체다. 사슴이 모태에서 나오자마자 몇분 되지 않아 걷기 시작한다. 땅에 나오자마자 생존을 위해 어미를 따라 움직여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다시 장면은 한 암사자로 바뀐다. 나레이션이 나온다.     


‘...하지만 이 암사자는 더욱 위험한데요, 오직 20%의 새끼만 살아남는 환경에서, 이 암사자는 6마리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늠름한 암사자의 곁에 고양이 만한 사자새끼들이 6마리나 줄지어 따라온다. 방금까지만 해도 불안속에 태어난 사슴에 대한 연민은 또다시 저 여린 사자 새끼에게 향한다. 이어 어미가 어디선가 무언가를 사냥해왔는데, 아기들은 처음보는 시체를 보고 연신 하악질을 해댄다. 


창공에 피냄새를 맡고 독수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한다. 어미는 사냥감을 먹다가 말고 점점 많아지는 독수리들을 견제한다. 그제서야 상황파악을 했는지, 아이들은 머리를 파뭍고 생살을 뜯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독수리가 점점 많아지고, 결국은 사냥감을 빼앗겨 어미 사자는 자식들을 데리고 황급히 그 자리를 달아난다. 나는 속으로 되내였다. ‘저놈의 나쁜 독수리, 하나라도 먹어버려!’     


4개월이 지났다. 아이는 둘 밖에 남지않았다. 그 두 아이는 서로 뒹굴며 사냥놀이를 한다. 조금만 더 있으면 첫 사냥에 데뷔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동물세계의 잔혹함 보다, 동물들의 각 성장모습을 포착한다. 자식을 맹수로부터 지키려는 모성본능, 그리고 자식을 먹이기 위해 그들을 향해 눈을 반짝이는 맹수들, 그 뒤에 그 맹수들을 덮치려는 하이애나, 독수리 무리들, 그리고 또 앵글에 비춰지는 그들의 자식들.     

 

약육강식, 즉 힘이 있는 자가 약한자를 먹는다는 공식은 생존앞에서 이토록 평등했다. 동물들은 모두 살기 위해 사냥하고, 다른 동물이 살기 위해 사냥 당한다. 곤충은 풀을, 설치류는 곤충을, 설치류는 육식동물, 육식동물은 또다른 육식동물이, 그리고 지역을 옮기다가 강물에 쓸려 죽는 거대한 초식동물들. 


이는 인간과 다르지 않다. 동물들은 식사, 수면, 교배 3가지를 ‘위해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매슬로우는 욕구라는 단어를 붙여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명했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쾌감을 위해서 식사를 할 수도 있다. 욕구라는 본성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3대 욕구가 채워지면 그 이상의 욕구, 소유, 존경, 자아실현으로 고도화된다. 고등동물로 불리는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욕구로 인해 약육강식이라는 자연의 섭리를 불평등의 도구로 삼는다. 

    

<21세기 자본>의 대략적 추정치에 따르면 가장 부유한 1퍼센트인 4500만명은 평균 1인당 약 300만 유로를 소유한다. 이는 세계 평균 자산의 약 50배 규모이며 모두 합해 전 세계 부의 50퍼센트를 차지한다.     


빈익빈 부익부의 구조다. 밭을 가는 이들의 노동력은 부유한 이들에게 상납된다.  똑똑한 만큼, 자본이 많은 만큼 버는 것은 자본주의 순리지만, 탐심으로 인한 염려가 뒤따른다. 


그런 측면에서 동물은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욕심은 있어도 그 욕심이 사회를 만들고 자본을 만들어 노동계층과 지배계층으로 나누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물은 그저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존재다. 인간과 동물은 그런 측면에서 마찬가지다. 잡아먹고, 잡아먹힌다. 사회는 복잡하지만, 원리는 단순하다. 


다시한번 말한다. 잡아먹고, 잡아먹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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