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툰 사랑의 언어
선물의 사전적 의미로는 ‘상대방에게 주는 물건’이지만 그 안에는 마음과 정성, 배려와 애정이 담겨 있다. 선물은 단순한 물질적 교환을 넘어서 관계의 언어가 되고, 감정의 매개체가 된다. 그런데 때로는 이 선물이라는 것이 받는 이에게 기쁨이 아닌 부담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시댁에서 택배가 자주 왔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닌데 곡식부터 양념류 각종 해산물 과일 등 신선식품은 물론이고 데친 시래기 같은 반가공 식재료, 각종 김치와 밑반찬, 심지어 무친 나물까지 먹을거리가 대부분이었다. 가자미가 서로 달라붙은 채 꽝꽝 얼어 있어 그걸 떼느라 애먹었던 일. 냉동실을 열다 봉지봉지 얼린 덩어리가 떨어져 발등을 찧었던 일. 감사에서 분노로, 편리함에서 죄송함으로 감정이 요동치던 나날들이었다. 이 모든 것들은 자식에게 먹여야겠다는 집념의 구체적인 발현이었다.
집에서 집으로 물건을 가져다주는 택배 서비스가 없던 시절에는 물건만 고속버스에 태워 보냈다. 받을 사람이 터미널로 직접 찾으러 갔다. 신혼살림에 뭐 그리 김치가 많이 필요하다고 아주 커다란 통에 김치를 가득 담아 보내셨다. 오는 길에 발효되어 터질 듯 부풀어 있는 그것을 들고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던 길에는 다시는 김치를 안 먹겠다 다짐한 적도 있었다. 그 다짐은 김치를 맛본 순간 사라졌다. 그 후로 그렇게 맛있는 김치는 먹지 못했다.
나 혼자 시댁에 다녀오던 길이었다. 당연하게 보따리보따리 싸 주셨다. 열차에 올라 짐을 선반에 얹어 주셨다.(그때는 입장권이라는 제도가 있어 마중이나 배웅할 때 잠깐 객차에 오를 수 있었다). 종이박스와 보자기에 묶인 것들이 여섯 개나 되었다. 남편이 마중 나오기로 했지만 나중에 내릴 일이 큰 걱정이었다. 임신 중이라고 특실에 탔는데 짐이 신경 쓰여서 편치 않았다.
서울역에 도착해 여러 번 오르내리며 짐을 객차에서 플랫폼으로 내렸다. 짐꾼이 다가와 허락도 없이 내 짐을 지게에 실었다. 그때는 짐꾼이 있었다. 버스나 택시 타는 곳까지 짐을 옮겨주는 서비스다.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정말 옛날 일이다. 짐꾼은 서울역 광장 한복판에 짐 보따리 여섯 개를 내려놓고 수고비를 요구했다. 짐꾼을 보내고 나는 광장 한가운데에 여섯 개의 짐과 함께 서 있었다. 남편과 서울역 정문 쪽에서 만나기로 한 터여서 그쪽으로 가야 했다. 짐을 두고 갈 수는 없어서 양손에 들고 발로 밀며 조금씩 이동했다. 박스에서는 뭔가 국물이 흘러나왔다. 휴대폰이 흔지 않던 시절이라서 남편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한참 뒤에 멀리서 남편이 뛰어왔다. 손에는 내 생전 처음 본 커다란 꽃다발과 케이크 상자가 들려 있었다. 장미가 무려 백송이였다. 그때가 내 생일이어서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마련한 것이었다. 그 꽃다발을 본 순간 나는 울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보다 뒤돌아 공중전화부스로 달렸다. 나중에 들으니 시댁에 전화해서 ‘아가 운다’(내 짐작으론 ‘아’는 ‘이 아이’의 경상도 말)고 말했다 했다. 남편은 양복 재킷이 젖도록 땀을 뻘뻘 흘리고 나는 눈물을 닦으며, 짐을 들고 택시 정류장에서 비싼 모범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웃들은 택배가 오면 당연하게 우리 집에 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그 내용물은 복도를 채운 냄새로 이웃에게 알려졌다. 이번엔 장어가 왔군. 전 데우는 냄새나는 거 보니 제사가 있었네. 한 번은 이웃들을 초대해 음식을 나누어 먹으려 했는데 다들 젓가락만 들었다 놨다 했다. 지역색이 강한 음식들이어서 나누어 먹을 수 없었다. 부쳐 먹고 지져 먹고 끓여 먹어도 냉장고는 비지 않았는데 또 택배가 오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이런 지경이어서 택배포비아가 생길 지경이었다.
그 어느 날 경비실에서 연락이 왔다. 택배 찾아 가란다. 웬만하면 직접 갖다 줄 텐데 너무 무거워서 들어줄 수 없다고 직접 가져가라고 했다. 와, 이건 또 뭐람. 아무래도 냉장고를 한 대 더 사야 하나 생각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경비실로 내려갔다. 척 봐도 쌀이었다. 안 터진 게 용할 정도로 빵빵한 자루였다.
자루를 질질 끌며 집으로 가져갔다. 현관에서 더 나아갈 수 없어 쌀자루는 신발들 틈에 자리 잡았다. 현관을 들고나는 데 80킬로 우람한 몸매는 존재감이 엄청났다. 며칠 뒤 조그만 나방이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쌀나방이 생긴 거다. 딸아이는 기겁을 하고 방문을 닫고 나오지를 않았다. 떡이라도 해야 하나 심란해하면서 자루를 풀어 살폈다. 벌레가 얼마나 생겼나 쌀을 이리저리 헤치다 보니 뭔가 걸렸다. 비닐봉지에 든 직사각형 모양으로, 두툼한 느낌이 손에 전해지며 든든한 느낌이 손에 전해졌다.
최명희의 《혼불》이었다. 소설 전집 10권은 쌀 속 여기저기에 박혀 있었다. 한 권 한 권 꺼내며 울었다. 지나가듯 그 전집이 갖고 싶노라 말했는데 나도 잊었는데 그 말을 기억하고 쌀자루 속에 넣어 깜짝 선물을 해주신 그 마음에 감사하여 울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책 잘 받았다는 언급이 없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선물은 때로 부담이 되고, 때로 감동이 된다. 주는 이의 마음이 크면 클수록 받는 이의 부담도 커진다. 하지만 그 부담조차도 사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진정한 선물은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마음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물이란 완벽한 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불완전한 소통, 오해와 이해가 뒤섞인 관계의 증거다. 우리가 계속해서 선물을 주고받는 이유는, 그것이 서툴지만 사랑의 언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겁고 부담스러워도, 때로는 맞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마음만큼은 분명하고 따뜻하다. 《혼불》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