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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끌림

- 부패는 주변으로 전염된다

by philosophers needlework

상자에서 유난히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것이 있다. 무엇일까 궁금해 살피다 그물망 패드로 감싸인 한 놈을 골라들었다. 조심스레 완충제를 벗겨내자 표면이 살짝 상해 있다. 손가락으로 눌러보니 탄력은 있었지만 한쪽 면에 어둡게 물든 부분이 보인다. 칼을 들어 상한 부분을 도려낸다. 그리고 남은 성한 과육 한 조각을 입에 넣는다. 순간 입 안에 퍼진 것은 놀랍도록 강렬한 단맛이다. 싱싱한 것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진한 달콤함이다. 농익은 맛이 수상쩍게 느껴진다. 썩어가는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최고로 달콤한 순간은 곧 부패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상자를 다시 살펴보니 특별히 달콤한 향기를 내뿜던 과일들 주변의 다른 것들도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 아직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것들조차 그 옆에 있다는 이유로 어딘가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달콤한 것이 먼저 썩고 상해가는 것 곁에 있는 것이 그다음으로 썩어가고 있다.

가장 매력적인 것이 가장 빨리 무너지고 그 주변의 것들까지 끌어당겨 함께 변질되어 간다. 너무 달콤한 것, 너무 빛나는 것들이 지닌 위험한 끌림의 본질이 여기 있다. 달콤한 유혹, 찬란한 성공, 감각적인 쾌락은 종종 그 정점에서 가장 빠르게 부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부패는 주변으로 전염된다. 부정이 부정을 낳고 타락이 타락을 불러오는 것처럼 한때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들이 어느새 독성을 품고 주변까지 병들게 한다. 그럼에도 이런 위험한 완숙함에 끌린다. 마치 상한 과일의 달콤함에 이끌리듯이.

상자에서 남은 과일들을 꺼내 하나씩 살핀다. 완벽하게 싱싱한 것은 아직 맛이 덜했고, 완전히 상한 것은 이미 먹을 수 없다. 그 사이의 어딘가, 익음과 상함의 경계에 있는 과일들이 가장 달콤하다. 그 시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한 순간의 완벽함이다. 오늘 맛본 과일의 달콤함은 내일이면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찰나의 맛, 그 위험한 완벽함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마치 우리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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