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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청춘

- 라인댄스를 배우러 다닌다

by philosophers needlework

작년 추석 이후로 허리가 아파 고생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갑자기 시작한 필라테스가 원인인 듯했다. 병원에서는 큰 이상이 없다고, 나이가 들면서 그럴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에 묘한 상실감이 밀려왔다. 아프다 하니 의사는 진통제와 근육이완제를 처방해 줬을 뿐이었다. 허리 통증은 고관절 불편으로, 다리 저림으로 이어졌다. 불편할 정도로만 아파서 적극적으로 병원을 쫓아다니며 치료받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움직이기가 어려워 겨우 걸어 다녔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으면 잠깐씩 뛰어보기도 했는데, 의외로 뛰는 것이 회복에 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겨울에 나가 걷거나 뛰는 것도 날씨 때문에 한계가 있어 회복이 더디었다. 집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만 보를 채워 보기도 했지만 오래 할 일은 못 되었다.

우울해지기도 해서 노래 교실에 다녀볼까, 요가로 살살 몸을 풀어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자치센터에 라인댄스 수업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발을 자주 움직이는 스텝 위주인 것 같아 허리와 다리 회복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노래를 들으며 움직이는 것이므로 노래 교실을 다녀야겠다는 바람과도 잘 맞았다.

초급반이 따로 없어 내가 들어간 반에서는 기초 스텝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술이 요란하게 달린 형광색 의상과 비즈가 현란하게 박힌 구두, 밝은 조명, 꽝꽝 울리는 음악 모두 낯설었다. 나는 청바지에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첫 시간부터 나는 매우 주목받는 수강생이 되어버렸다. 부끄러워 죽겠는데 선배님들이 자꾸만 가운데 서 있으라 했다. 사방으로 돌기도 하니까 보고 따라 하라고 그런다 하였다. 본다고 따라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두 번째 수업 시간에는 레깅스에다 수영복 위에 덧입는 스커트 같은 것을 입고 수업에 갔다. 신발은 마침 가벼운 새 운동화가 있어 그걸로 되었다. 새로운 노래와 안무를 익히는 것을 '작품을 나간다'고 하는 것 같았다. 월요일마다 작품을 나갈 것이므로 빠지지 말라고 하였다. 옆 사람 자리를 침범하지 않으려고 애쓰다보니 수업이 끝났다. 선생님이 안무 영상을 단톡방에 올려줄 것이니 열심히 보라고 하였다.

영상은 튜토리얼이 없어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다. 유튜브에서 라인댄스 기초 스텝을 찾아 배우고 노래 제목을 검색해 보기 편한 영상을 찾으면서 열심히 공부하기는 했지만 진도가 잘 안 나갔다. 선배님들은 눈 딱 감고 석 달만 빠지지 말고 나오라 했다. 눈 감고 스텝을 잘 배울 자신은 없지만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일주일 3회 수업을 하고 났더니 사람들 얼굴이 눈에 익고 발놀림도 보이고 누가 실력이 좀 나은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선배님들은 대부분 시니어로 몸매도 울퉁불퉁했다. 불룩한 것이 위에 있으니 가슴이요, 아래 있으니 허리인 줄 알겠다. 그럼에도 옷은 화려하고 과감했다. 곱게 화장을 하고 편하면서 예쁜 댄스화와 의상을 정성껏 마련하여 신고 입고 주춤주춤 춤을 추었다. 그네들의 인생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 같아 존경스러운 마음마저 들었다. 울룩불룩한 허리라인조차 사랑스럽게 보였다.

한 10곡쯤 음악에 맞추어 스텝을 밟고 팔을 흔들고 돌다 보면 50분이 금방 지나간다. 제법 땀도 난다. Wax의 '오빠'라는 안무가 있는데 '오빠 나만 바라봐 / 바빠 그렇게 바빠 / 아파 마음이 아파 내맘 왜 몰라줘 / 오빠 그녀는 왜 봐 거봐 그녀는 나빠 / 봐봐 이젠 나를 가져봐 / 이젠 나를 가져봐' 이 부분에서 오빠를 큰소리로 외치면서 딱 두 분의 남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대목이 있었다. 지목당한 남성 한 분은 다음 시간에 나오지 않았다. 다행하게도 그다음 시간에는 출석했다.

다 함께 새로 나간 작품은 나도 곧잘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초보자도 있어 내가 잘한다는 소리도 들었다. 수업 중간에 스텝을 가르쳐 주겠다는 선배가 생겼다. 자신들도 처음에는 강습이 끝나고 집에 가는 길 가로등 아래서 신발주머니를 든 채 스텝을 익혔다고 했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오늘 새로 나간 작품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집에 와서는 댄스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통증 치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즐거워하며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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