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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깨우고 영혼을 울린다

- 낭독 독서

by philosophers needlework Mar 25. 2025

 독서 모임에서 주제 토의에 앞서 낭독 독서를 한다. 내가 제안해서 시작하게 된 일이다.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정해 한두 페이지 정도 돌아가면서 읽는다. 같은 책을 읽는데도 사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 든다. 열 개의 목소리에 열 개의 이야기이다. 그저 읽고 기꺼이 듣는다.

 지금 《디 에센셜 한강(한강 글, 문학동네 펴냄, 2022》을 소리 내어 읽고 있다. 책 친구들의 목소리 뒤로 홍샘이 커피 만드는 소리가 배경음처럼 깔린다. 원두를 그라인더에 넣고 손잡이를 돌려 가루를 만드느라 드르륵드르륵, 포트에서 물이 끓느라 보글보글. 알맞게 식은 물이 커피 가루가 담긴 여과지를 적시고 떨어지는 똑 똑 또독. 어느 음악보다 더 풍요롭고 향기롭다. 이야기에 목소리의 색이 덧입혀져 박샘은 최인호가 되고, 황샘은 강이가 된다.     

 낭독을 제안할 때는 읽고 싶지만 읽지 못한 숙제 같은 책을 함께 읽어내 보자는 취지였다. 그래서였을까 선뜻 하겠다고 나서지들 않아서 6개월이 그냥 지나갔다. 작년 말 새해에 읽을 책을 정하는 회의에 다시 한번 낭독 이야기를 꺼냈다. 한번 해 보자고 의견이 모아져 요즘 실행 중이다. 낭독이 정말 좋아지면 두껍거나 어렵거나 고전 이런 책은 저절로 읽게 될 것 같다.     

 낭독할 때는 책 한 권으로 돌아가며 읽는 것이 좋다. 내 책이 없어야 듣는 데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아무래도 책이 있으면 눈이 가서 신경이 분산된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그 사람의 입 밖으로 나와 공간을 넘어 내 귀로 들어온다. 나 혼자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는 훨씬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읽는 사람의 감성까지 따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목소리가 내 탁한 머리를 깨우고 무딘 영혼을 울린다.        

 책을 정하고 각자 읽은 후 감상을 나누고 주제를 정해 의견을 나누고 이런 토의 과정은 매우 섬세하게 진행된다. 서로의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책을 추천한 사람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한다. 크게 티를 내지 않지만 엄청난 배려가 있음이 느껴진다. 이렇게 쌓고 올린 신뢰를 바탕으로 독서 모임이 이어진다. 편안한 자리에서 낭독하는데 떨리거나 갈라지는 목소리, 새는 발음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광막한 공간과 영겁의 시간 속에서 찰나를 공유할 수 있음은 큰 기쁨이 된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 같은 문장을 함께한다는 그 느낌이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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