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에 기대어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몸을 일으켰는데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등을 바닥에 댄 채 일어나려고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분명 내 것인데 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여러 개의 다리가 허공에서 헛되이 발버둥 치는 것 같았다. 나는 뒤집힌 채로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침대에서 벗어나려고 몸을 비틀고 돌렸지만 소용없었다. 마치 등딱지가 바닥에 붙어 있는 것처럼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는 외출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일정이 있어 나가야 했다. 어찌어찌 침대에서 빠져나왔지만 몸을 똑바로 펴고 걸을 수가 없었다.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채로 비틀거렸다.
세수할 때는 몸을 앞으로 굽히지 못하니 물이 팔꿈치를 타고 줄줄 흘러 상체가 거의 젖었다. 차라리 샤워하는 게 나을 뻔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은 낯설고 우스꽝스러웠다. 이게 정말 나인가 싶었다.
옷을 입으려 한참 끙끙대다 바지에 발을 집어넣는 데 성공했다. 아뿔싸 한쪽 바지통에 두 발이 모두 들어가 있었다. 벗었다가 다시 입어야 했다. 양말을 신으려 했지만 손이 발에 닿을 듯하기만 했다. 결국 바닥을 구르며 양말을 발에 꿰듯이 신고 신발은 뒤축을 구겨 신었다.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집어 올릴 수도 없고, 컵을 떨어뜨려 유리가 사방에 튀어도 치울 수가 없었다. 집안이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사레라도 들어 기침이 연달아 터지면 정말이지 토할 지경이 되었다. 앉으면 불편하고, 일어서면 더 불편했다. 걸을 때는 그나마 견딜 만했지만 계속 걷다 보면 다리가 아파서 앉고 싶어졌다. 그러면 다시 통증이 시작되었다.
언제 통증이 올지 몰라 아프지 않을 때도 힘들었다. 가족들이 나 때문에 힘들지도 모르겠다는 자책감도 들었다. 낫기는 할까 하는 불안과 병이 더 악화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에 잠이 잘 안 오고 무기력감에 우울해졌다. 가족들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평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적응이 안 되었다.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벌레가 되었다. 정확히는 허리 통증으로 인해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벌레 같은 존재가 되었다. 등을 바닥에 댄 채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애쓰다 갑자기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가 떠올랐다. 카프카도 허리가 아팠을까. 카프카가 그린 거대한 벌레의 모습이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프카는 부조리한 상황을 그렸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허리디스크 환자의 일상을 묘사한 것 같다.
카프카의 작품이 지닌 힘은 부조리한 상황을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려낸다는 점에 있다. 《변신》의 그레고르처럼, 허리 통증으로 고통받는 나의 모습 역시 현대인이 경험하는 소외와 무력감의 은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의 반역은 곧 삶의 반역이며, 일상의 붕괴는 존재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침대에서 벌레처럼 버둥거리던 그 아침은 단순한 신체적 고통의 순간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조건부성과 삶의 부조리를 깨닫는 철학적 각성의 순간이었다. 아무래도 덜 아팠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