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디깎이 수리 여정
읽는 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내가 겪은 일을 글로 쓸 수 있을까.
우리 집 잔디깎이가 고장 났다. 휘발유를 사용하고 줄을 당겨 시동을 거는 자주식 구동 기계다. 잔디를 깎던 중에 스타터 줄이 끊어졌다. 20년이나 썼고 기계가 크고 무겁고 다루기 어려워 충전식으로 사야겠다 내심 준비도 했다. 그랬어도 막상 고장이 나니 당혹스러웠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에서 고치는 법을 검색해 보았다. 매우 쉽다 하였다. 줄이 감긴 곳의 뚜껑만 열면 간단하게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리가 간단하다니 새로 사기가 아까워졌다.
1주차: 첫 번째 좌절
남편과 나는 잔디깎이를 구입한 곳에 갔으나 그 회사가 없어졌어요, 라는 말을 들었다. 약이 올라 근처에 새로 생긴 대형 공구마트에 전화했고 수리는 본사에서 한다고 주소를 안내받았다. 토요일은 오전 근무밖에 하지 않으므로 당일 수리는 어렵다는 설명을 듣고 다음 주말에 가 보기로 했다.
2주차: 여정의 시작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잔디깎이를 차에 실었다. 기계가 커서 SUV 뒷좌석을 접고 실었다. 요철이 심한 구간을 지날 때 흔들릴 것에 대비하여 줄로 이리저리 고정했다. 비상등을 켜고 시속 30㎞ 이하로 운전하여 수리센터에 도착했다. 줄을 풀어 차에서 조심조심 내렸다. 직원이 보더니 요새는 이런 거 안 쓴다며 단칼에 수리 불가를 선언했다. 고칠 수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을 안 하고 있어 매우 허탈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단골 카센터에 가서 의논해 보기로 했다. 카센터 사장님은 전에 우리 잔디깎이 바퀴 수리를 해주신 적이 있고 뭐든 고치는 것을 즐기시던 분이었다. 카센터에 가니 낯선 젊은이가 우리를 맞았다. 자신이 카센터를 인수했다고 한다. 전에 계시던 사장님은 암 투병 중에도 계속 일하셨던 분이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행히도 잘 계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건 그렇고 자기는 잔디깎이는 못 고친다고 했다. 우리가 크게 실망하자 시내에 이런 종류 잘 고치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자기가 아는 형님한테 상호와 연락처를 물어 알려주었다. 그곳 역시 토요일에는 문을 일찍 닫는다고 했다.
3주차: 만물상을 찾아서
이제는 잔디깎이 싣는 일에 요령이 좀 생겼다. 지난번보다 더욱 단단히 묶고 헌옷을 뭉쳐 앞뒤 양옆으로 괴었다. 내비에 주소를 입력하고 어렵게 찾아간 곳은 예초기나 잔디깎이 외 여러 기계들을 고치고 부품을 파는 만물상 같은 곳이었다. 사장님은 잠깐 볼일이 있다며 우리를 기다리라 하고 어디를 다녀왔다. 마나님 나들이에 터미널에 태워주고 왔다는 것이었다. 젊은 부인이랑 사니 불편하네 어쩌네 하며 자랑을 한참 했다.
사장님은 원래 서울 어디서 살았는데 어쩌다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부터 부인이랑 결혼하게 된 사연까지 한참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우리 잔디깎이를 보더니 볼트와 너트로 조이는 형식이 아니라 고칠 수 없다고 하였다. 특별한 공구가 따로 있어야 하는데 자기는 없다며 그 공구가 있는 곳을 알려주었다. 그곳에는 확실하게 있다고 자신했다. 다만 농협경제사업부여서 농기계만 취급하는데 자기랑 거래도 하고 그러므로 소개로 왔다고 말하면 고쳐 줄 것이라 했다. 하지만 농협 역시 문을 닫는 시간이었다.
4주차: 희망 고문
뭐에 홀린 듯 잔디깎이를 고쳐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다시 토요일이 되어 일찍 일어나 잔디깎이를 차에 싣고 찾아가 농협 문 열기를 기다렸다. 잔디깎이를 내려 놓고 나사 같은 것이 붙어 있는 곳을 알려주며 그걸 풀 공구가 있다고 하여 찾아왔다고 설명했다. 젊은 직원에게 소개해 준 곳 이름을 댔으나 그곳을 모른다 했다. 공구도 없단다.
남편과 나는 허망한 마음을 추스르며 여기까지 왔으니 하는 데까지 해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 동네에 모터를 수리하는 곳이 있는데 예전에 잔디깎이 칼날을 갈아준 적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고 그곳에 희망을 걸었다.
이제는 너무나 능숙하게 잔디깎이를 차에 싣고 고정해 모터 수리점으로 갔다. 가게는 열려 있는데 사람이 없어 간판에 적힌 번호로 전화했다. 딸이 하는 옆 가게 펫샵에 있다고 금방 오겠다 했다. 사장님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우리 잔디깎이를 고쳐 준 이력이며 그간 얼마나 고생을 하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주절주절 털어놓게 되었다.
결국 그 공구는 여기에도 없었다. 이제는 망가져도 좋으니 뜯어라도 보자고 부탁해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옆 가게 공업사 사장님이 와서 조용히 지켜보다 말없이 사라지더니 공구를 들고 왔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헤매던 바로 그 공구였다. 이름은 리벳이라고 했다. 더 정확하게는 리벳건과 리벳못이었다.
꼭 필요한 그 공구가 있어서 커버를 열어 시동 줄을 바꾸고 다시 커버를 고정하는 데 성공했다. 모두의 기대 속에 줄을 당겼지만 줄이 힘없이 풀려나와 되감기지 않았다. 엔진이 작동하려면 줄이 풀렸다 다시 감겨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결국 시동은 걸리지 않았다. 우리(남편과 나, 모터 사장님, 옆집 카센터 사장님)는 맥이 풀렸다.
고치지는 못했으나 수고를 끼친 사장님께 약간의 사례를 하고 우리는 갈 길을 잃었다. 그래도 그 공구 이름은 알게 되었다. 다른 농협을 알아봐야 하나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어딘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수원에 있는 기계 수리점에서 고칠 수 없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며 다음 주 토요일에 와 보라고 했다고 전했다. 검색으로 찾은 곳이란다. 다시 희망의 불씨가 지펴졌다.
5주차: 수원으로
다음 토요일에 수원으로 출발했다. 이제는 잔디깎이를 차에 싣는 건 일도 아니어서 고속도로를 달릴 만큼 단단히 고정을 했다. 그곳은 구 도심에 오래된 공구상과 기계들을 다루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 옛날 용산이나 구로, 청계천을 떠올리게 했다. 일방통행인 길을 뺑뺑 돌다 결국 역주행까지 하며 겨우 찾아간 가게에 잔디깎이를 내려놓고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남기고 다음 주를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계를 싣지 않았어도 속도를 내지 못했다. 5주째 주말마다 잔디깎이를 싣고 다니다 보니 천천히 운전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6주차: 수리 완료
잔디깎이를 맡기고 돌아온 후 월요일에 견적이 나왔다. 당연히 고칠 수 있고 시동 줄과 바퀴와 에어필터를 갈고 손잡이 고정 장치를 고치는 데 13만 원쯤 든다고 했다. 수리비로 20만 원 정도는 예상하고 있어서 너무나 기쁘게 수리를 부탁하고 기대에 찬 일주일을 보냈다.
드디어 우리의 잔디깎이를 영접할 토요일이 되었다. 한 번 가 본 곳이라 일방통행에도 안 헤매고 잘 찾아갔다. 도로변에 우리 기계가 범블비 같은 모습을 하고 늠름하게 서 있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알아보았다. 날아갈 듯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잔디깎이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7주차: 드디어
잔디깎이를 써 볼 기회가 왔다. 어제 비가 오고 토요일인 오늘 아침에 날이 개지 않아 하늘만 쳐다보다 잠깐 환해지니 마당으로 나섰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천 원어치 사 오고(우리 집 잔디깎이는 연비가 놀랄 만큼 좋다. 주유소 사장님은 냄새만 맡고 돌아가는 기계라고 부른다.) 의자며 테이블을 치우고 잔디깎이가 지날 길을 미리 정리했다. 휘발유를 붓고 시동 줄을 힘차게 당겼다.
당기기는 당겼는데 시동이 안 걸렸다. 남편이 얼굴이 벌게지도록 여러 번 줄을 당겼다. 그런데 역시 안 걸렸다. 너무나 기운이 빠져 주저앉고 싶은 순간 구동 손잡이를 안 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구동 손잡이를 잡고 시동 줄을 당겨야 하며 손잡이를 놓으면 엔진이 멈춘다는 사실을 잠깐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힘차게 돌아가는 잔디깎이의 엔진음을 들으며 지난 한 달 반 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작은 일 하나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문제를 대하고 해결하려 노력했던 여러 사람들의 선의가 생각났다. 동광상사, 우림공구마트, 금호카센타, 삼원통상, 마평농협경제사업부, 동아모타, 대호카공업사, 성원기계콤프, 그리고 남편과 나 우리 모두가 잔디깎이를 고친 셈이다.
* 표제면의 배경은 카와시마 코토리의 사진전 <사란란>에 가서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