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티브가 예술인 까닭

- 방구석 철학자의 예술론

by philosophers needlework

모티브는 여러 무늬가 하나의 무늬로 통합되어 그 연속에 의해서 하나의 제품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라고 사전에 설명되어 있다. 모티브는 반복의 단위다. 무늬가 무늬를 부르고 연속이 하나의 완성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계속된다.

일반적으로 굵기가 동일한 여러 색깔의 실로 뜨며 코바늘을 주로 사용한다. 같은 패턴 여러 장을 이어 조끼나 카디건 또는 가방을 만들기도 하고 쿠션 커버로 이용되기도 한다.

어쩌면 모티브는 규칙의 예술이다. 예쁘게 반복되고 안정적으로 맞물리고 계획대로 조립하여 완성된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이렇게 만들면 내가 만드는 모티브가 그리 특별할 리 없다. 하지만 내가 만드는 모티브는 그 이론에서 비켜선다.

나는 실을 사지 않는다. 무언가를 뜨고 나서 남기는 남았는데 새로 하나를 완성하기에 모자라 묵혀두었던 실들이나 안 입는 스웨터나 목도리, 담요 등 풀 수 있는 것들을 풀어 마련해 놓은 실을 주로 활용한다. 내가 얻은 실은 대개 누군가의 시간이었다. 안 입는 스웨터, 오래된 목도리, 침대를 장식하던 담요. 나는 그것을 풀어 새로운 시작의 실로 다시 감는다.

그래서 굵기가 각각이고 원하는 색이 없을 때가 많다. 굵기는 여러 가닥을 합쳐 어림하여 어찌어찌 맞춘다. 때로는 나누어 가늘게 가르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한 가닥처럼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여러 겹의 실이 합쳐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을 옷감에서 뽑아낼 때도 있다. 트위드는 양모를 평직·능직·헤링본 등으로 조밀하게 짠 옷감으로 굵은 실을 섞어 짜 조직감이 살아 있고 표면이 거칠며, 여러 색 실을 섞어 다채로운 컬러를 내는 경우가 많다. 자투리 천 중에 트위드 원단이 있으면 정말 반갑다. 아주 고급 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실은 특별히 나만의 개성을 구사하고 싶을 때 매우 아껴 사용한다.

실을 여러 방법으로 만들어 놓아도 굵기가 영 안 맞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바늘 굵기를 달리하여 스티치 크기가 일정하게 되도록 만든다. 실이 가늘면 좀 굵은 바늘을, 실이 다른 것에 비해 굵다 싶으면 가는 바늘을 사용하는 식이다.

내 모티브는 균일하지 않다. 한 칸은 얇고 다른 한 칸은 두껍다. 예상치 못한 색이 끼어들고 거칢이 부드러움 옆에 앉는다. 그 차이들이 모이면 내가 만든 것이라는 증거가 된다. 그리고 다시 반복할 수 없다.

모티브를 활용한 예

나의 예술은 버려진 것들이 다시 선택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누군가의 몸을 떠난 스웨터, 유행이 지나 묻혀 있던 목도리, 어느 집 구석에 접혀 있던 담요. 그것들은 한때 누군가를 따뜻하게 했고 이제는 내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 이건 시간의 재배치, 기억의 재구성이다.

예술은 완벽함이 아니라 살아 있는 흔적이다. 삐뚤어도 끝까지 엮어내는 힘, 버려진 것에게 다시 이름을 붙이는 마음, 그리고 그 결과가 한 번뿐인 무늬로 남는 일. 내 손끝에서 시작된 실 한 올이 나를 다시 살려내는 방식으로 오늘도 고요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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