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언제 시작되는가

- 갈래? 갈까? 가자!

by philosophers needlework

친구들과 여행을 계획 중이다. 10년 동안 돈을 모아왔다. 각자 사는 곳이 멀어 자주 만나기가 어려우므로 일주일에 한 번 영상통화를 하며 구체적인 사항들을 의논해 결정한다. 어디로 언제 갈 것인지를 정하고 제일 먼저 항공권을 산다. 현지에서의 숙소와 교통편을 알아보고 붐빌 것 같은 방문지는 예약한다.

실용적으로 보면 여행은 집을 나서는 순간,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 또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낯선 도시의 공기를 처음 들이마시는 순간에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쩌면 지도를 찾아볼 때, 거기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또는 항공권을 검색하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이미 여행은 시작된 건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일상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는 순간이 진짜 여행의 시작이라고도 한다. 몸이 아닌 마음이 먼저 떠나는 거다. 기대하고 상상하는 그 과정 자체가 여행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나는 어딘가에 가려면 옷부터 만들기 시작한다. 천을 고르는 순간 이미 나는 그곳으로 가는 중에 있다. 린넨인지 실크인지를 고민하는 동안 내 손끝에는 여행지의 공기가 느껴진다. 바람이 세게 불까, 내리쬐는 햇살이 따가울까, 저녁이 되면 얼마나 서늘해질까를 천의 질감으로 가늠한다.

재단하는 동안에는 그곳에서의 내 모습을 그린다. 어느 거리를 걸을지, 어떤 카페에 앉을지, 무슨 풍경을 만날지. 가위질 한 번 한 번에 아직 오지 않은 순간들이 모양을 잡는다. 한 땀 한 땀, 실이 천을 통과할 때마다 여행은 조금씩 구체화된다. 단추를 다는 동안에는 그 단추를 채우고 풀 순간들을 상상한다. 아침에 서둘러 채울 수도 있고, 저녁에 여유롭게 풀 수도 있다. 혹은 예상치 못한 비를 맞고 돌아와 젖은 손으로 더듬거릴 수도 있다.

옷이 완성되어 갈수록 여행도 함께 채워진다.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옷감의 무게와 색깔과 내 손이 기억하는 모든 바느질 자국으로 나는 이미 그곳을 경험하고 있다. 어쩌면 여행이란 몸이 아니라 마음을 옮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 마음을 형태로 빚어내는 일, 입고 만질 수 있는 무언가로 만드는 일. 그것이 나만의 여행 준비다.

나에게 여행의 시작은 항공권을 사는 순간도 짐을 싸는 동안도 아니다. 나의 여행은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손끝으로 전해져 그 마음이 천과 실과 만나는 순간 시작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 옷을 입고 떠날 때 나는 이미 그곳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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