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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Aug 23. 2018

"나는 이제 죽음을 준비합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웰빙(Well-being)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웰빙이란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살아있는 동안 잘 먹고 잘 살다가는 것. 이 당연한 삶의 지향점이 어떻게 유행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일까?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에는 웰빙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살기에도 급급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어 가족들의 배를 안 곯릴까 하는 고민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경제적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사람들은 차츰 삶의 목적에 대해 사유하기 시작했다. 열심히 돈을 벌어도, 지금 당장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회의감은 당장의 행복에 대한 갈구로 이어졌다. 웰빙 열풍은 바로 그러한 열망에서부터 시작됐다.



웰빙에 이어 등장한 웰다잉 열풍


웰빙에 이어 등장한 단어가 '웰다잉(Well-Dying)'이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웰다잉은 '죽음에 대한 준비'로 이어졌다.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게만큼은 죽음이 찾아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어쩌면 죽음이 두려워서 일부러 외면하려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급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은 더욱 당황스럽고 두렵기만 하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동안 세상과의 작별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 웰다잉이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웰다잉이 유행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유언을 미리 써보고 영정사진을 찍거나 관속에 들어가 임종체험을 하는 등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장례식 때 틀 음악이나 묘비명을 자신이 정하기도 한다.


임종체험에 도전하는 개그맨 노홍철 - MBC <나 혼자 산다> 캡쳐


죽음학 전도사로 유명한 정현채 교수(서울대 의대 소화기내과) 역시 일상에서 웰다잉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는 2007년부터 병원, 죽음학 모임 등에 나가 죽음학을 강의해오고 있다. 얼마 전, 방광암 진단을 받은 그는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도 덤덤했다고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소중함을 깨닫고 매사에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죽음에 대해 여전히 부정적인 시선들


그러나 아무리 웰다잉이 열풍이라고 해도 죽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두렵고 꺼림칙한 일이다. 정 교수 역시 처음 죽음학 강의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 동료들로부터 "머리가 이상해진 것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어야만 했다고 고백한다.


일본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요리후지 분페이도 비슷한 경험을 겪어야만 했다. 그는 2005년 죽음에 관한 그림에세이 《죽음 카탈로그》를 출간했는데, 책을 쓰기도 전에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쳐야만 했다. "죽음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하자 주변 지인들로부터 싸늘한 반응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장 믿었던 어머니조차도.


"그만둬!"

어머니에게 죽음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하자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 
어머니는 보건소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아마 내 주위에서는 어머니가 사람의 죽음을 가장 많이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해해줄 거라 믿었는데 입구에서 차단당하고 말았다. 
게다가 머리는 괜찮냐, 고민이라도 있는 거냐, 일에 문제는 없냐 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죽음이 그렇게 금기시할 대상일까? 

친구들도 "당연하지"라며 의외라 할 만큼 냉랭했다. 
어째서 모두 그렇게 생각할까. 
TV에서도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했는데. - p.10


카르페 디엠… 아니, 메멘토 모리!


그러나 분페이는 오히려 주위 사람들의 냉랭한 반응이 이 엉뚱하고 기발한 작업에 대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켰다고 말한다. 모두가 기피하는 죽음에 대해 정면 도전해보고 싶다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그는 '죽음이란 무엇일까'라는 화두를 던진 채, 답을 찾기 위한 자신만의 여정에 돌입한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했다. 동서고금 여러 민족이 꿈꾸었던 사후세계의 모습, 사람들이 맞이하는 다양한 죽음의 형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묘사된 죽음의 형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태도 등 죽음에 관한 것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죽어서도 전장에 나가 싸운다고 믿는 바이킹족들


요리후지 분페이가 묘사한 '적극적인 죽음의 형태'


이 지난했던 작업을 통해 그는 "죽음이란 게 절대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고 해서 꼭 심각한 얼굴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누구든 죽음을 기분 좋은 일로 인식해야 살면서도 즐겁다"고 역설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누구든 죽음을 기분 좋은 일로 인식해야 살면서도 즐겁다. 
죽음의 형태는 이렇게 다양하지만
죽으면 모두 고통스러운 세계에 간다고 생각하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 
지옥도 있지만 균형을 이루듯이 천국도 있기 때문이다. - p.52


그래서 그는 웰다잉을 '이불을 개는 것'에 비유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이불을 개는 것처럼, 매일매일 나의 하루를 조금씩 개어 정리해두자는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삶이 짓눌리지 않도록, 가능한 한 똑바로 죽음을 향해서 말이다.



죽음을 마주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겨라)'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선행되어야 함을 말이다. 


과학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하여 인류가 불멸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는 이상, 오늘도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고 있다. 그러니 이불을 개듯, 매일매일을 정리하며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건 어떨까.


[참고문헌]


1. 《죽음 카탈로그》, 요리후지 분페이, 필로소픽, 2018.07.10.
2. 허윤희·박승화 기자, 「'죽음학 전도사'의 위엄 있는 죽음맞이」, 한겨레21,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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