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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Jun 05. 2019

여혐은 안 되고 남혐은 된다?

[출간 후 연재] #01. 이선옥의 《우먼스플레인》

이선옥: 요즘 여혐이라고 줄여서 많이 얘기하는데, 최근 2–3년 사이에 사회적으로 널리 회자되는 용어가 됐죠. 여성혐오라는 말 자체가 정치, 언론, 방송, 문화, 예술 모든 영역에서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략…) 


지금 사람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은 이중 신호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요즘 세간에 도는 ‘만물여혐설’이라는 게 있는데,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황현희: 이건 제 생각이 아닙니다. 만물여혐설. ‘여자를 약자로 대해도 여혐이고, 강자로 대해도 여혐이다. 여자를 여자로 대해도 여혐이고, 남자로 대해도 여혐이다. 여자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도 여혐이고 그렇다고 여자를 보호하지 않는 것도 여혐이다. 여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하는 것도 여혐이고,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여혐이며,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도 여혐이고,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말라고 (이거 언제까지 읽어야 돼요? 다 똑같은 얘기 아닌가요?) 하는 것도 여혐이다. 여자에게 의무와 권리를 요구하는 것도 여혐이고, 요구하지 않는 것도 여혐이다. 그래서 남자는 무슨 말을 해도 여혐이며 그렇다고 침묵하는 것 역시 여혐이다.’ 누가 썼는지 시조 같네요. 

: 이러니 펜스룰이 나오는 거예요. 

: 펜스룰도 여혐이라는 거죠.

: 그러니까 만물여혐설이 우스운 말 같지만 이게 남성들이 느끼는 혼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여혐이고 저것도 여혐이다. 혐오 개념에 대해서 사람들이 모르는 거예요. 모르는데 정확히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그냥 모든 행위와 표현을 다 여혐으로 규정해버리니까 답답한 거죠. (…중략…) 

그래서 저는 여성혐오 개념부터 정립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성혐오에 반드시 혐오 표현이 따라와요. 여성혐오라는 영역에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와 미소지니(misogyny)라는 개념이 섞여 있습니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에서 앞의 여성혐오는 미소지니이고 뒤의 혐오는 우리가 보통 인지하는 혐오감정의 혐오예요. 성차별, 여성에 대한 숭배・찬양, 이런 것까지 다 여성혐오라고 넣어버리는 바람에 개념이 무한 확장된 거예요. 그래서 여성이 불편해하거나, 여성을 규정하는 모든 것이 다 여성혐오로 취급되죠. 그래서 저는 개념의 정립, 개념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 여혐은 안 되는데 남혐은 되는가?


이: 이 여혐에서 제가 중요하게 얘기할 건 이중잣대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게 여성혐오는 성립되지만 남성혐오는 성립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강자는 혐오 발언을 들어도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남성들이 무슨 위협을 느끼느냐는 논리입니다. 최근에는 인권운동에 관여하거나 법을 전공한 분들, 특히 남성 지식인이 많이 얘기해요. <까칠남녀>에서도 있지 않았나요? ‘롤리타는 범죄지만 쇼타는 취향이다.’ 


황: 그거 유튜브 조회 수가 300만이 넘었더라고요. 롤리타는 성인 남성이 어린 여성에게, 쇼타 콤플렉스는 성인 여성이 어린 남성에게 성적 흥미를 느끼는 건데, 저는 둘 다 성적 취향으로 규정하는 게 맞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아니라는 거예요. 여자 쪽은 취향이 될 수 있지만 남성은 범죄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정말 큰 문제예요. 

이: 이해 안 가시죠? 보편상식의 기준에서 보면 이해가 안 되는데, 지금 이념 차원에서는 큰 힘을 얻고 있습니다. 개독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잖아요. 그런데 기독교가 기득권 집단이고 사회에서 힘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개독은 혐오가 아니라는 거예요. 같은 논리로 남성혐오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겁니다. 남성은 여성이 아무리 혐오해도 살해당할 위협이나 강간당할 위협 같은 공포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남성혐오는 성립할 수 없다는 거죠. 하지만 여성은 남성의 혐오 발언으로 위협을 느끼기 때문에, 그리고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여성혐오는 범죄라고 주장해요. 

김: 여성들이 느끼는 성폭력 위협, 폭행 위협은 진짜 맞아요. 

이: 그것과 혐오 표현은 다른 문젠데 이걸 섞어버린다는 거죠. 그래서 여성들이 하는 워마드류 혐오 발언이나 혐오 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심지어 이념적으로 시민권을 부여해주면서, 남성의 혐오 발언에 대해서는 강한 처벌을 요구하는 이중적 기준이 당연시된다는 거예요. (…중략…) 



우리 사회에서 이런 담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진보진영이거든요. 인권 영역에서든 어디서든 그렇잖아요.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인권 개념을 새로 짚어내서 사회적으로 환기하는 일을 해온 것이 진보진영인데, 지금은 진보진영이 혐오 발언에 면죄부를 주고있어요. 

심지어 ‘여성들아, 마음껏 혐오해라.’ 같은 말을 공식적인 글에 쓰거나 ‘초라한 남근 다발들.’ 같은 말을 공적 매체에 쓴단 말이에요. 남성들이 느끼는 혐오에 대한 분노나 공포나 위협에 대해서는 어떤 식으로도 취급하지 않아요. (…중략…) 그래서 저는 한국 지식인들이 너무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혐은 존재할 수 없다, 이런 말은 성립되어선 안 됩니다. 

황: 쉽게 생각할 때 소수라는 건 단어 뜻 자체로 보면 적은 수를 의미하는데, 여성은 인류의 반이잖아요. 이 운동 차원이나 캠페인 차원에서 도덕 규범을 주장하는 것과 제도로 이어지는 건 다른 문제인데, 우리는 지금 이걸 섞어놓고 막 그냥 얘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엄밀하게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김: 그러니까 남혐은 없다. 이게 잘못됐다는 얘기 아닙니까? 

이: 성별이라는 개념에서는 이미 여성과 남성이 똑같아요. 혐오는 당연히 존재해요. 남성혐오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할 수 없어요. 워마드만 들어가도 남성혐오가 어떤 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다 보이는데요. (…중략…)


감정이 처벌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이: 페미니스트들이 주로 논거로 드는 게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 불안감, 위협감입니다. 저도 여성이기 때문에 그 불안감과 공포를 이해합니다. 그런데 감정이 처벌의 근거가 될 수는 없어요. 정확히 말하면 처벌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같은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위협감이 다 다르거든요. 


그런데 페미니스트들은 가장 약자로서 느끼는 극단적 수준의 공포를 기준으로 삼으려고 해요. 만약 어떤 여성이 자기는 말만 해도 엄청난 공포를 느낀다고 하면 그 기준에서 법을 만들어야 됩니까? 아니잖아요. 거기 동의할 수 있나요? 

사회구성원의 보편적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주관적 감정에 기초해 제도를 만들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실존하는 위협이나 처벌가능한 개념을 명백하게 규정해야 해요. 그렇지 않고 여성들이 불안을 느끼니까 어떻게 해야 한다 식의 논리는 아무 논증도 없는 권리주장인데 용인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남성을 옹호하려는게 아닙니다. 기본권을 훼손하려는 시도에 대해 강력한 문제의식을 가지고있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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