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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픽 Nov 07. 2017

비트겐슈타인의 맏형, 한스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그의 음악적 재능 - 절대 음감- 과 죽음에 대해

  우리가 익히 아는 루트비히 '루키' 비트겐슈타인은 8남매 중에 막내였습니다. 살아 있었으면 두 번째 누나가 되었을 도라 비트겐슈타인을 포함하면 9남매겠지만, 도라는 태어난 해에 사망하고 맙니다.

  도라를 제외하고 누나가 셋, 형이 넷이었습니다. 집안의 장남인 요하네스 '한스' 비트겐슈타인과 막내 루트비히의 나이 차는 12살. 띠동갑입니다. (1877년생과 1889년생)

  오늘은 이 큰형. 요하네스 '한스' 비트겐슈타인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그의 음악적 재능과 죽음에 대해 말이지요.



수학적 지식이 대단히 해박했지만, 한스가 지속적으로 흥미를 보인 분야는 음악으로, 음악에서 경이로울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드러냈다. 네 살 땐 지나가는 사이렌 소리가 최고조로 높아지다가 사분음으로 서서히 약해지는 걸 들으며 도플러 효과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섯 살 땐 긴 카니발 행렬의 양 끝에서 두 개의 관악대가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틀렸어! 틀렸어!"라고 울부짖었다. 서로 다른 조의 두 행진곡이 동시에 연주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명한 요하임 4중주단의 연주를 듣기 위해 가족들이 클라이너 음악홀로 외출하던 날, 한스는 한사코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는 연주를 듣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신 콘서트에서 연주되고 있는 음악의 악보들을 앞에 쫙 펼쳐놓은 채 바닥에 앉았다.

작품을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으면서 각각의 인쇄된 악보들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네 개의 음악 선율이 어떻게 하나로 합쳐져 소리가 나는지 머릿속에 또렷한 느낌을 그릴 수 있었고, 가족들이 돌아왔을 땐 그 기억을 되살려 부모님 앞에서 전곡을 피아노로 연주해냈다.

- 비트겐슈타인 가문 / p. 46


굉장하지요.
'금손'이라는 표현이 있어요.
손재주나 그림 실력이 뛰어나서
고퀄의 창작물을 뚝딱 만들어내는
능력자를 뜻하는 말인데요.

한스 비트겐슈타인은 '금귀'라고 해야 할까요?

보통 이럴 때
'절대음감'의 소유자라고 표현하곤 합니다.


절대음감 in 사전 _ 
어떤 음을 들었을 때에, 
다른 음과 비교하지 아니하고도 
그 음의 고유한 높낮이를 알아내는 능력

  한스 비트겐슈타인의 일화에 딱 들어맞지요. 이런 음악적 재능을 가진 맏아들이었지만, 비극적인 인생의 종말을 맞고 마는데요. 아마도 아버지 카를 비트겐슈타인과의 불화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의 성격을 제대로 판단할 줄 몰랐던 카를은 장남이 사업에 탁월해 기업가와 경영자로 두각을 나타내기를, 자신의 원대한 업적을 드러내주기를 강렬하게 소망했다.

...(중략)... 카를은 한스가 음악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모습에 질색한 나머지 마침내 정해놓은 시간 외에는 어떠한 악기도 연주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금했다.

- 비트겐슈타인 가문 / p. 48


  넘치는 재능을 뿜어내지 못하고 억압당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요. 결국 한스는 1901년 집을 떠났고 (아마도) 1902년 5월 2일에 자살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떠돌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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