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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Feb 08. 2020

자신의 행동이 차별과 혐오에 해당되는지 아닌지 구분하기

- 자신의 생각, 행동이 차별과 혐오에 해당되는지 아닌지 구분하는 방법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 대해 자신이 가진 생각이나 행동이 차별과 혐오에 해당되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 생각과 행동의 결과가 당사자에게 피해와 고통을 주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이다. 만약 피해와 고통을 준다면 그것은 차별과 혐오이다.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생각, 종교적 신념 등으로 소수자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관점, 행동을 정당화하곤 한다. 일단 각 주장은 나름 타당하게 여겨질 수 있다. 모든 생각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나름의 타당성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이다.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의 경우에도, 그래서 그들에 대한 생각과 행동이 실제 당사자에게 어떤 영향과 결과를 주느냐이다. 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아무리 나름의 타당성과 심지어 '선의'로 한다고 해도 말이다.(사실 이런 경우엔 그 '선의'가 더 무섭다. 실제 결과는 그 반대이곤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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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한다. 만약 그 생각과 행동, 어떤 신념이 당사자 소수자에게 고통과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정당화하고 고수하고 고집하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이 된다. 누구도 그럴 권리는 없다. 본인도 그렇게 희생당하는 걸 원치 않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은 결코 악의가 없고 의도적으로 해칠 생각도 없다고,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일수록 더 자세히 보라. 정말 그 당사자가 그 때문에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고, 어떤 고통을 겪을 수 있는지. 정말 당사자를 위한 것이 되는지.


가령,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이전 한때에 우리는 '장애인이 밖에 나오면 다른 사람들도 불편하고 장애인 본인도 불편하기 때문에 굳이 외출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을 많이 가졌었다. 심지어 이걸 '장애인 자신을 위해서'라고도 여겼다.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은연 중에 이런 생각을 가졌더라도 마찬가지다. 그때는 그런 관점이 타당하다고 다들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 외출한 장애인들을 보면서, 외부로 표현하거나 그냥 맘 속으로 혼자 생각하면서 그렇게 반응했다. 


그때, 과연 장애인 당사자는 그걸 어떻게 느꼈을까? 한 인간으로서 존재성을 부정당하고 정당한 사회활동을 제한받는 그러한 생각이나 행동에 실제 어땠을까? 당연히 차별받고 혐오받는 느낌을 받으며 화가 나고 괴로웠을 것이다. 그리고 고통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장애인 당사자들과 가족들 그리고 돕는 이들이 애쓰고 노력해서 지금 정도까지 만들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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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소수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자 하거나, 어떤 학교에 진학하고자 할 때 어떤 이들은 자기 나름의 관점, 견해, 신념으로 그들이 그걸 하지 않는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한다. '그냥 세상과 사람들과 부딪치지 말고 좋은 게 좋은 것으로 하자, 굳이 소수자 자신도 나서서 스스로 번거롭게 되지 말고 조용조용히 진행할 방법을 지혜롭게 찾아보자'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 반대를 표하기도 한다. 모두 나름의 근거와 이유를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 당사자들이다. 그 당사자들이 피해와 고통을 입는가 아닌가. 


'그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학교에 진학하고 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 혹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가? 나, 우리도 불편하지 않을 권리가 있고, 나만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행동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라고 할 수 있다. 


그래, 물론 그럴 권리가 있을 순 있다. 그러나 고작 나의 불편함, 나의(혹은 어떤 집단의) 어떤 관점을 정당화하기 위해 타인의 실제적인 고통과 피해를 요구하는 그것이 과연 정당한가? 과연 바람직한가? 


만약 이것이 정당하다고 여긴다면, 그러면 본인은 타인, 타집단의 그것을 위해 자신이 고통과 피해를 기꺼이 입을 것인가 자문해 봐야 한다. 장담컨데, 아무도 '그렇다'고 답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그러면 타인에게도 감히 그걸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솔직한 것이고, 정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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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불편함과 관점, 신념은 왜 무시당해야 하냐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불편함(관점, 신념)과 그들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넓은 관점과 객관적 시야를 키워야 한다. 그들의 실제 고통을 모르기 때문에 나의 작은 불편함, 나(우리)의 한 견해나 관점, 신념 등이 엄청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모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더 알아야 한다. 더 파악해야 한다.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제 그 피해자들의 상태가 어떠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지. 


내가 모른 채, 현재 아는 것이 전부인 것으로 하며 손쉽게 내리는 생각, 판단, 결론이 누군가의 큰 고통을 야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약자나 소수자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면 마음만 그럴 것이 아니라 내 생각과 행동의 '결과'도 그리 되어야 한다. 


실제 결과, 이 '결과'가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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