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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Nov 12. 2015

35 반복되는 감정과 생각에 '여전히' 괴로운 이들에게

왜 놓으려 해도 놓아지지 않는가?

이 주제에 대한 이전의 글이 있었습니다.


링크: 반복되는 느낌, 생각에서 자유롭기 - 느껴지고, 떠오른다고 해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방법을 다 알 것 같고 또 실제 실행해 보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 것입니다. 나도 싫어하는 어떤 감정과 생각이 자꾸만 느껴지고 떠오릅니다. 버리려 해도 안 버려지고, 멈추려 해도 안 멈춥니다. 그래서 힘듭니다. 이젠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이젠 모르는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될 수 있다는 방법으로도 안 된다면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모든 훈련과 방법에서는 그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 그리고 효과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반복과 경험치가 필요합니다. 노하우와 방법론이 명확하다 하더라도 실제 체험 중에 발생하는 요소들은 한정된 내용의 설명만으론 다 커버되지 못합니다. 이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현실은 항상 말이나 글로 모두 설명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넘어선 실제 반응과 현상들이 항상 존재하며, 이론을 바탕으로 현실의 것들까지 모두 계속 고려하고 품고 헤쳐 나가면서 이루어 나가는 것이 성취의 본래 과정이겠습니다.


이 글은, 일전에 제시했던 '반복되는 느낌과 생각에서 자유롭기 - 느껴지고, 떠오른다고 해서 중요한 것은 아니다'에 대한 일종의 사후 서비스 글입니다. 혹은 추가, 보충 설명이기도 합니다. 특히 '여전히' 잘 안 되는 분들을 위한 글입니다.




반복되는 감정과 생각에서 자유로우려 노력하는 중에 가장 많이 나오는 말 중에 다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속 그 감정과 생각이 반복해서 떠올라요. 그래서 힘들어요."


감정이 계속 떠올라도 괜찮습니다. 그게 '단지 감정일 뿐임' 알면 됩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게 '단지 생각일 뿐임'을 알면 됩니다. 느껴지지만, 생각나지만 '느껴지는 것일 뿐 중요한 것이 아니고, 생각날 뿐 중요한 것이 아니다'입니다. 이게 앞서 글의 요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 때문에 여전히 힘들 가능성이 제일 큽니다. 결코 느껴지는 걸 안 느껴야 한다거나, 생각나는 걸 생각나면 안 된다고 하지 마세요! 그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비효율적인 짓입니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애써서 다시 안 느껴지고, 생각나지 않으면 그렇게 해도 좋지만 안 되는 걸 자꾸 하면 바보 짓입니다.   


그냥 '아, 여전히 이 느낌이 남아 있구나', '아, 여전히 이 생각이 드는구나'라고 하고, 그리고 '그래, 느낌이 들지만 이게 중요하고 의미 깊은 건 아니지.', '생각이 떠오르지만 중요하다는 건 아니지. 내가 의미가 크다고 여길 필요는 없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계속 자각하는 것입니다. 알아채는 것입니다.

  

자, 왜 우리가 계속 그 감정과 생각에 힘드냐면, 그것들이 느껴지면 무심결에 '아, 이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거야'라고 여기고 있고, 그것들이 생각나면 '아, 이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거야'라고 여전히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죠. 그러면서 계속 그 감정과 생각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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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늑대와 흰 늑대 이야기


그 유명한 '검은 늑대와 흰 늑대' 이야기에서, 누가 살아 남느냐의 바로 그 문제입니다. 옛날 한 인디언 주술사가 한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검은 늑대와 흰 늑대를 키우고 있다면, 두 늑대 중 누가 살아남을까?"  답은, 결국 내가 먹이는 주는 놈이 살아 남는다는 것입니다. 계속 먹이를 주면 그놈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내면의 감정과 생각의 문제에 대한 비유입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내가 자주 느끼고 자주 생각하는 것이 내 안에서 살아남는 것입니다. '아, 이건 중요하고 의미있는 것이야'라고 하는 믿음이 바로 두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것입니다. 


또 간혹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해결책은 '안 느껴야 하고, 생각 안 해야 해'입니다. 그걸 내 안의 감정과 생각에 먹이를 안 주는 방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고 오해입니다. 잘못된 하수의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안 느껴야 해, 생각 안 해야 해'라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내 안의 그 감정, 생각에 관심을 주고, 중요하다 여기고, 먹이를 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느낌과 생각이 지금 느껴지고 떠오른다는 것은 그게 중요해서가 아니다. 그냥 아직은 내 뇌 속에 혹은 의식 속에 그 '관성'이 혹은 '패턴'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 뿐입니다. 그러므로 최상의 반응은 그냥 '그럴려니' 하는 것입니다. 그걸 거부하거나 부정하고, 또 없어야 하거나 없어져야 하거나 혹은 느끼면 안 되는 거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안 되는 것이니까요. 또 그 정도로 중요하지도 않고 말이지요. 또 그게 내 안의 늑대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올바른 방법입니다.


그건 그냥 하나의 '흐름'이고, 흘러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냥 지나갈 것인데 '아, 이건 중요한 거야. 의미 있는 거야' 하면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억압하거나 무시, 회피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바로 '늑대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들입니다. 이걸 눈치채야 합니다.


  



계속 느껴져도, 생각나도 괜찮습니다. 그냥 '아, 아직 관성이 남아서, 뇌신경회로가 남아서 내 머리 속에서 자동 플레이가 되고 있구나'하고 쿨하게 인정하고 그냥 그렇구나 하는 것입니다. 가령 몸의 경우, 내 상처가 아직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물이 묻으면 쓰라린 게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냥 '아, 아직 쓰라리네...' 하고 맙니다. 그렇게 알아채는 것이지요. 그리고 치료가 필요하면 약을 더 쓰거나 혹은 상처에 다시 조처를 취해 주지요. 근데  그때 '아, 쓰라리면  안 되는데. 이 쓰라림은 뭔가 잘못된 거야...'라는 식으로 그 쓰라림 자체를 부정하거나 억압, 회피하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몸에 있어선 그런 바보짓은 아무도 안 합니다.


떠오르는 감정, 생각도 같습니다. 그 자체를 부정하거나 없아야 한다 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아, 이런 감정과 생각이 느껴지는구나...' 하고 알아차려 주면서 필요한 조처가 있으면 취해 주면 됩니다. 몸의 상처처럼 말이지요.


그러면 저 혼자 느껴지다가 그냥 흘러 사라집니다. 물론 그 관성과 패턴이 남아서 몇 번을 더 반복해서 올 수는 있습니다만, 올 때마다 위와 같이 처리해 부면 결국엔 점점 사라집니다. 내가 여하 간의 반응으로 그것을 중요하다 여기거나, 붙잡고 있지 않는 한은 말이지요. 이게 감정과 생각의 관성을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입니다. 늑대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 바로 그 비법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필요한 조치를 취해 주는 것'과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이 그냥 무심하게 놓아두는 것'은 모순이 아닌가? 얼핏 보면 모순되는 듯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무심히 놓아두는 것'은 마음의 영역에서의 아주 적극적인 조치입니다. 그걸 부정하거나 그것 때문에 괴로워 하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잘못된 조치인 것이죠. 자, 마음에서는 그렇게 대응하고 이제 실제 현실과 행동에서는 또 그 상황에 맞는 가장 적절하고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이 대응에는 아무런 한계와 제한이 없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취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느낌, 욕구, 바람, 생각 등과  상관없이 항상, 이미 당당하고 떳떳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걸 느끼든 안 느끼든 상관하지 않고, 느끼고 떠오르는 것을 개의치 않기 시작하면 이제 서서히 시간이 지나가면 지나갈수록 점점 그것들과는 상관없게 됩니다. 안 느껴지고 안 떠오르는 게 아니라 떠올라도  상관없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안 되어도 우리가 당당하고 떳떳하게 존재하는 것에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상관이 없기에 또한 점점 사라집니다. 이 기제를 잘 눈치채야 합니다. 사실은 아주 미묘한 기제입니다. 이론적으론 얼핏 이해가 되는 듯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실제 '아~!' 하는 게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말이지요.


그리고, 더 나아가 그러한 감정과 생각의 떠오름에 매여도 괜찮습니다. 그걸 멈추고 싶은 데 안 멈춰지고, 떠올라도 상관치 않고 싶고, 개의치 않고 싶고, 영향 받지 않고 싶은데 계속 그렇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매이면 안되~! 신경 쓰면 안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매여도 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별 중요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중요성을 부여하지만 않으면.


그래서 '정확히' 보아야 합니다. 매이는 그 행위의 본질이 무엇인지.


느껴지고 생각난다고 해서 매이는 게 아닙니다. 그건 그냥 우리 뇌에 혹은 의식에 혹은 마음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느끼고 생각난다고 모두가 그걸 무의식적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아닙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즉, 느껴지고 생각나지만 '그 느껴지고 생각나는 그 현상 자체'를 대수롭지 않게, 중요하지 않게, 별스럽지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보통 '매인다'는 것은 '그것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여기는 것을 자동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무심결에 말이지요. 그게 정말이라고 여기면서, 그게 사실이라고 여기면서 그걸 믿는 것입니다. 정말 다분히 무의식적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이 부분을 잘 눈치채지 못합니다.   




마음의 고집을 버리기


어떤 경우엔 그래서 또 하나의 해결책으로 '관찰하듯 바라본다'는 식의 대응을 해 보려고도 합니다. 또 그런 것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착오가 있습니다. 그게 결과적으로 '관찰하듯 되는 것'이지, 계속 내가 그게 중요하고, 사실이고, 의미 있고, 절대적이라고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여기거나 믿고 있으면 관찰하듯 바라봐지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관찰하듯이 보겠다고 하면 그건 명백히 선후가 바뀐 대응입니다. 그래서 잘 안됩니다. 그냥 관찰하기만 하는 건 힘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에 계속 괴로워하지 말고 우리는 이제 뭔가 제대로 해 봐야 합니다.


 '느끼고 떠오르는 그 의식의 내용과 과정 자체'에 대해서 내가 계속 그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기고 있고 그게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그 믿음을 눈치 채야 합니다. 여전히 내가 그렇게 믿고 있는 그 마음의 고집. 그걸 눈치 채야 합니다. 내  마음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게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여기고 있는데 그게 무시가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즉, 이건 몰라서 그런 게 아닙니다. 안 되어서 괴로운 게 아닙니다. 내 정신적, 의식적 고집 때문에 괴로운 것입니다. 내가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감정과 생각은 실제 그것들은 괴로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지점이 바로 포인트입니다. 이 패턴을 넘어버릴 포인트입니다.


다시 한번 더 말합니다. 내가 계속 '나는 지금 그 느낌을 느끼니 그게 중요하다. 그게 떠오르니 그게 중요하다.'는 그 고집을 붙잡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아, 더 이상 이 느낌과 생각을 반복해서 떠올리기 싫어~!'라고 하면서도 계속. 이제는 이 바보짓을 눈치채야 합니다.


느낌과 떠오르는 생각, 그걸 부정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건 분명 불가능하고 안 되는 일이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도 사실 우리는 계속 그걸 하려고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힘든 것입니다.


'느껴지므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생각나므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이다' 
이 고집을 이제 멈춰 보라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것만이 아니라 '모든' 느낌과 생각에 대해)


왜?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건 우리 뇌 혹은 의식이 만든 하나의 '설정'에 불과합니다. '느껴지면 중요한 것이다. 떠오르면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여기고 믿자!'라는 내적 설정 혹은 패턴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설정이 생겼는가?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진화 과정 중에 생겼겠죠? 살아가면서 내가 느끼거나 떠올리는 것들 중에 중요한 것들이 실제 많이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들을 또 집중해서 잘 처리해 가며 살도록 해 주는 아주 유용한 기제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필요할 때만 유용하지 대부분의 경우엔 별로 필요 없습니다. 한번 일상에서 잘 살펴보십시오. 과연 느껴지고 떠오르는 모든 것이 실제 다 중요한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이걸  눈치채고, 필요 없는 경우는 느껴져도 떠올라도 '그냥 그렇구나' 하고 말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냥 '내 의식이, 내 마음이 너무 열심히 일하려고 하는구나. 그래 장하다. 근데 지금 느껴진 것, 지금 떠오른 그건 별로 의미 없는 거네.'하면서 의도적으로 알아 채는 것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그 패턴을 의식적으로 멈추는 것입니다.


그렇게 점점  눈치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느낌과 생각들을 안 놓아도 됩니다. 보통 '놓아버린다'를 해결책으로 많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놓아지는 것 역시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지, '놓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고 놓아지는 게 아닙니다. 이것도 이제 눈치채야 합니다.(참 눈치 채야 할 것도 많네요. ^ ^)  

 



그럼 결국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냥 알아 버리세요. 알아채 버리세요. 인정해 버리세요. 수긍해 버리세요. 받아들여 버리는 것입니다. 정 안되면 그냥 '선택'해 버리세요! 선택해서 그렇게 해도 됩니다. 결과는 똑같습니다. '내 생각과 느낌은 중요해'라고 붙들고 있는 나의 이 의식적 고집, 패턴, 습관, 버릇을. 그 한계와 오류를 파악하고 알고서 말이지요. 말하자면 ‘노력하기가 아닌 선택하기’입니다. 선택하기야말로 사실 가장 큰 삶의 용기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정적인 느낌과 생각만에 대해서 그런 게 아니란 것입니다. 모든 느낌과 생각에 대해서이지요. 이 부분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느낌과 생각을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여기면서 어떻게 부정적인 것만 안 그렇다가 되겠습니까? 그렇겐 안 됩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그게 틀렸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주 효율적이고 효용성, 실용성 높은 놈들입니다. 고도의 진화된 의식 기능입니다. 다만, 그걸 사용할 필요가 없을 때 사용하기에 문제가 될 뿐입니다. 이걸 눈치채는 것입니다. 그 고집을 버리고 말고 하기 전에 이러한 실제 현황을 그냥 알아채는 것입니다.   


비록 그 알아챔이 처음엔 아주 희미하고 약한 듯해도 괜찮습니다. 일단은 '아, 그렇구나~'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리고 이제 이후로 점점 더 선명하게 만들어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실제 점점 더 선명해집니다.




노력하기가 아닌 선택하기


선택하기야말로 가장 큰 삶의 용기이다.      


변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변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사랑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이해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그 일을 하려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행복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행복하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살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당당히 존재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당당히 존재하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내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되는 걸 선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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