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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Jun 26. 2021

거기 한 생각뿐. 거기 한 느낌뿐.

사실과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뭔가 생각할 때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거기엔 뭔가 절대 사실이 있고, 어마 무시한 무엇이 있어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


짧게 이야기하면

'거기 실체가 있다. 저기 사실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실재로는

그런 어마 무시한 사실, 실체가 아니라

'다만 한 생각'이 있을 뿐이다.


/


생각 하나가 아니라

그 생각의 근거들이 있다고 또한 믿을 것이다.

그 생각이 사실이고, 실체임을 뒷받침하는

수많은 근거들이.


그러나

그 '근거가 되는 사실, 실체'라고 믿는 것들 또한

'다만 한 생각'들일뿐이다.


생각이란

아무리 쌓이고 쌓여도

'결국 생각'일뿐이다.

생각이 쌓인다고

'사실, 실체'가 되는 게 아니다.


/


어떤 생각, 모든 생각의 가장 밑바닥에 

있을 것이라 막연히 믿거나 짐작되는

'그 무엇'도

사실이나 실체가 아니라

'다만 한 생각'일뿐이다.


'있음'이라는 생각.

'사실이 있다'는 생각.

'실체가 있다'는 그 한 생각.


(나아가, 

이 모든 생각을 하고 있다는 '나'도 한 생각일 뿐.)


그 지점에 인식이 도달하면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끝낼 것도 없는 것의 끝.


(* 여기서 각성하라!

'사실'이니, '실체'니 하는 것도

다만 한 생각일 뿐임을.

그런 게 실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스스로 빠져들어

쓰고 있는 것뿐임을.)


/


'생각'에 대해선 이렇게 들어간다 해도

사람들이 더 어려워하는 것은 '느낌'이다.


오감적인 느낌과 감정적 느낌을 모두 포함하는.


"생각일 뿐이라고 쳐내기에는

이 느낌이 너무 강해요. 너무 선명해요.

그래서 감히 쳐낼 수가 없어요.

무시할 수가 없어요.

넘길 수가 없어요."


모두의 공통 고민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다.


그 '느낌'이라는 것도

실은 '생각'일뿐이다.


자꾸 느낌은 뭔가 실체를 감지하는 것이고

느낌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지만

아니다.


느낌도 다만 생각일 뿐이다.

좀 더 원시적인 생각,

언어적 생각 이전이 비언어적 생각.


원시적이든 비언어적이든

'다만 생각'일뿐이다.


/


생각이 들어도

그것이 다만 '한 생각일 뿐임'을

자각한다면

그 생각이 있든 말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생각일 뿐이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실, 실체 따위가 아니므로.


그 든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그 생각이 실제고 실체라고 믿는 그것이 문제이다.

그 한 생각!


똑같이 해서


한 느낌이 들어도,

거부할 수 없을 선명한 그 한 느낌이 들어도

그 역시

'다만 한 느낌일 뿐'이다.


그 느낌의 기반(들)도

무슨 어마 무시한 사실이나 실체들이 아니라

('사실', '실체' 등도 다만 한 생각이라 했다)

그냥 그 이전의 '한 생각', '한 느낌'들일뿐이다.


이렇게 들어가서

가장 밑바닥 혹은 가장 처음으로 간다 해도

거기 있는 건

오직 '한 생각, 한 느낌' 뿐.


/


이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여겨지는

'나(주체, 행위자)'라는 것 마저도.


/


이러한 과정과 그 결말을,


생각으로서가 아니라

(생각을 이용해 들어가되)


실제로 깨치는 것,

자각하는 것,

각성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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