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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Jun 09. 2024

구원은 없다. 애초에 추락이 없으므로.

깨달음은 없다. 애초에 무지가 없으므로.

구원은 없다. 애초에 추락(타락)이 없으므로.


없는 추락을 있다고 만들면

없는 구원이 당연히 필요하게 된다.

(음을 만들면 저절로 양이 만들어지듯이)


추락을 만들지 않으면 

구원도 만들 필요가 없다.


/


주의하라.


지금 여기서 '추락이 있다 혹은 없다, 구원이 있다 혹은 없다'를 

논하는 게 아니다.


'있다'에 목을 맬 필요 없지만,

'없다'에 목을 맬 필요도 없다.

'있다'만 만들어진 게 아니라 '없다'도 만들어진 것이므로.


/


'추락이 있다/없다, 구원이 있다/없다'에 집착하면

본래는 없는 추락과 구원에 오히려 계속 얽매이는 게 된다.

인간 인식의 이 맴돌이에 주의하라!


그냥 추락이니 구원이니 하는 중얼거림 자체를 떠나는 것이다.


'있다/없다'의 부질없는 다툼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있음과 없음을 모두 잘 쓰되, 

필요 없으면 가차 없이 무심해 버리는 것이다.

본래 그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기에.


/


본래는 없는 건데 그것을 만들어 쓰면 있는 것이 된다.

하지만, 있는 것이 되었지만 본래는 없는 것이다.

다시, 없는 것이지만 만들어 쓰면 있는 것이 된다.


여기에 무슨 있고 없음이 있는가?


이 실상를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에서 근본적 차이가 생긴다.

그렇지 않겠는가?


/


이것이 금강경 '시명, 즉비(是名, 卽非)'의 본래 의미이기도 하다.

굳이 이전 사람이 쓴 금강경의 내용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모두가 능히 눈치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눈치챈다'는 것은
그냥 '아, 이해했어'하고
다시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이 이해 이후 다시는 과거로 돌이켜지지 않는
근본적 눈치챔을 말한다.


/


소위 말하는 '깨달음'과 '무지'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깨달음은 없다. 애초에 무지가 없으므로.


나아가, 인간의 모든 앎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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