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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기 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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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Dec 23. 2015

40. "나, 일찍 죽을 것 같아"

그저 같이 느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가끔 도움을 필요로 하시는 분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가 있다. 수년 전에, 50대 후반의 부부이시라면서 한 여성 분이 전화를 준 적이 있었다. 남편 분과 소소한 것에서 계속 부딪히고 대화를 하자고 해도 금방 틀어지고 결국 싸우게 되는 일상을 이야기하시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가 없다고 하셨다.     


젊었을 때는 자신이 되도록 많이 참아서 넘겼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참을 수도 없다고 하셨다. 당연하다, 어떻게 사람이 계속 참을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엊그제도 결국 그렇게 싸우다가 본인이 먼저 이혼이라는 말을 꺼내셨는데(본심이 아니시고 그냥 화가 나서), 남편 분이 그 말을 듣더니 갑자기 진지해지며 아이가 대학 졸업하는 1년만 참아달라고 했단다. 1년 후에는 자기가 사라져 주겠다고.     


여성 분은 또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하셨고... 남편 분이 심근경색 등의 병이 있는데, 그래서 자주 자기는 일찍 죽을 거라는 말씀도 하셨단다. 소심한 성격이어서 작은 일에 화도 많이 내시고 등등. 시어머님도 치매로 10여 년째 고생하고 계시고.       


하지만 여성 분이나 남편 분이나 지금 헤어진다고 해서 두 사람에게 좋을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을 잘 아신다고 하셨다. 그러나 일상에서 계속 일어나는 다툼과 충돌에 의한 상호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셨던 것이다. 뭔가 좀 잘 풀어보려 해도 안 되고. 내일이면 남편 생일인데, 지금 같으면 미역국도 끓여주기 싫다고 하셨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근본적으로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느끼고 계신단다. 그래서 그렇게 전화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통화 중에 마음이 좀 급하셨는지 우선 당장에라도 뭔가 도움 말씀을 주실 수 없냐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 하나가 있다고. 그런데 말씀 드리면 그대로 한번 해 보시겠냐고 먼저 여쭈었다. 왜냐하면 방법을 알려만 주고 실행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해 보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말씀드렸다.     


우선 남편 분이 "나, 일찍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할 때 본인의 반응은 무엇이었냐고 질문 드렸다. 그러면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말이 씨가 된다” 등의 반응을 보이신다고 했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이후에는 남편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본인의 생각이나 느낌은 잠시 내려놓고 우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남편 분의 마음을 같이 한번 느껴주시라고. 달리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마시고 '아, 저런 말을 하는 남편의 지금 마음은, 지금 감정은 이런 것이겠구나...'하며 그냥 느껴주기만 하시라고.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시라고 했다.

 (이런 경우 상대방의 마음을 같이 느껴주는 것이 핵심이지만, 이것을 직접 말로 잘 표현 하는 것도 또한 중요하다)       


"당신, 그 정도로 많이 불안한 거지? 건강에 대해서 걱정도 많이 되고... 내가 그 마음을 잘 몰랐네. 그런데 이젠 좀 알 것 같아..."     


그리고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흐느낌이 들려왔다. 울먹이시면서 자신이 무엇을 잘 몰랐던 건지 이제 알 것 같다고 하셨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나도 함께 마음이 숙연해졌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모를 뿐이다. 혹은 알지만 익숙지 않아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 관계 나눔에 있어 서로 받고 주어야 할 것들을 말이다. 그런데 조금만 힌트를 얻거나 혹은 체험을 하게 되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론 알게 된 후에도 성숙한 나눔이 익숙하게 될 때까지, 일상이 될 때까지는 여전히 힘들 수 있고 또 중간중간 넘어야 할 작은 고개들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과정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하나씩 넘으며 앞으로 나가면 된다. 그렇게 고개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나는 더 성숙해지고, 행복의 순간들은 더 많아지고,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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