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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Jan 04. 2016

45 자책감과 죄책감. 그리고 좌뇌의 강박 혹은 거짓말

많은 일이 나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그냥' 일어난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우리 인간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원인이나 이유를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진다. 이 강박은 의식적이라기보다는 무의식적이라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


문제는, 우리가 잘못된 일의 원인과 이유로 너무 자주 '나의 잘못'을 찾아 갖다 붙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뇌과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이유를 편집증적으로 만들어 내는 '좌뇌의 강박 혹은 거짓말'이다. (이하 '좌뇌의 강박'. 뒤에서 상세히 설명함). 그렇게 함으로써 좌뇌는 자신의 본능적인 '이유 충족 욕구'를 만족시키지만, 결국엔 자기 부정의 심리라는 부작용도 함께 만들어 진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단지 언어 기능을 담당한 좌뇌의 습관 때문에 생기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수 있다. 우리는 이 '좌뇌의 강박'의 정체를 눈치챔으로 불필요한 자책감과 죄책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사실 의외로 많은 일이 '그냥' 일어난다. 즉 '내 잘못'이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 '그냥'을 눈치채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불필요하고 맞지도 않는 이유와 근거를 만들지 않고 말이다.


예를 하나 들어 보자. 내가 깜깜한 길을 걸어가다 잘 보이지 않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그 이유는 하필 '그냥' 거기에 돌부리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니다. 누구라도 깜깜한 그 구간을 지나가다 그 돌부리 위를 지나가면 속절없이 넘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예로,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았는데 뒤 사람이 심하게 기침을 한다. 집에 와서 보니 결국 감기가 옮았다. '내 잘못'이 아니다. '그냥' 감기 걸린 사람이 내 뒤에 있었기에 그런 것이다. 근처 사람들도 다 감기 옮았을 것이다. 처음 간 어느 외진 마을에서 길을 걸어가는데 갑자기 길가 덤불에서  미친개가 나와서 내 다리를 물었다. 다행히 광견병은 옮지 않았다. 이 경우도 '내 잘못'은 아니다. 알아보니 그 동네 길을 가던 이들이 여럿 물렸다고 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일상적이거나 복잡한 여러 일들도 엄밀히 보면 사실상 위의 돌부리, 감기, 미친개의 상황과 같을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때조차도 '없는 내 잘못'을 잘만 만들어 내고 그것으로 자책감과 죄책감을 만들고 빠져 허우적 대곤 한다.


자신이 연관된 잘못된 일에 대해서 건강하고 객관적인 자기반성과 자기통찰을 가지는 건 좋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한 점을 파악하고 필요한 부분을 보충해서 미래에 같은 실수나 잘못, 상황을 반복하지 않도록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반성과 통찰이 아니라 불필요한 자책감이나 죄책감을 가지곤 한다. 혹은 반성과 통찰은 하되 그에서 멈추지 않고 자기 부정까지 가버리는 경우도 많다.


물론 우리가 꼭 '내 탓'만 하는 건 아닌다. 때로는 타인들 탓도 하고 또 환경이나 현실 탓도 한다. 심지어 운명 같은 것을 탓하기도 한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주로 관심을 갖는 건 '나 자신'이며 그래서 잘못에 대한 원인과 이유도 결국은 '나'에게서 많이 찾게 된다. 습관성이기도 하다. 더구나 자책감과 죄책감은 무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제대로 대응하기가 더 곤란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러고 있는 것이다.


실제 나의 잘못 등과는 상관없는 경우에 내 잘못, 나의 부족 등을 원인으로 지어내는 것이 문제이다. 이렇게 되면 자기 미움과 자기 부정만 커질 뿐 실제 나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은 전혀 없다. 정확한 자기반성과 통찰도 방해한다. 그래서 이것을 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냥 '하지 말자'고 해서 멈추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 근본 원인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아래에서 그 원인이 무엇이지,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같이 보자.




그런데, 도대체 '좌뇌의 강박'은 무엇인가?


아래는 영국 BBC2에서 2000년 7월과 8월에 걸쳐 6부작으로 방영된 다큐멘터리〈브레인 스토리(Brain Story)의 6부 'The final Mystery(마지막 신비)'의 동영상 링크이다. 아쉽게도 자막은 없다.(하지만 한국에서 2002년 2월에 EBS에서 방영되었으므로 해당 동영상을 정식으로 구해서 보면 되겠다)


BBC 다큐 Brain Story 6부: The final Mystery(마지막 신비)


영상에서 '36분 27초'부터, 수술로 좌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한 '조'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다. 지금은 하지 않는 수술이지만 한 때 간질 등의 치료 방법으로 좌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하기도 했는데, 한쪽 뇌에서 발생한 간질 발작이 다른 쪽 뇌로 연결되어 일어나지 않게 하는 효과를 위해서였다고 한다.('좌뇌의 강박'을 주제로 한 케이스는 꼭 이 '조'의 경우만이 아니라 비슷한 다른 케이스들도 있으므로 인터넷에서 검색을 통해 더 찾아볼 수도 있. 기존 자료에는 '좌뇌의 거짓말'이라는 말로 주로 나와있다)


해당 장면에서 조를 대상으로 간단한 실험을 한다. 조에게 오른쪽 눈에 단어 하나를 보여주고 그게 뭔지 말해 보라고 한다. 오른쪽 눈을 통해 들어간 정보는 좌뇌로 전달되고, 좌뇌는 언어 뇌이므로 조는 화면에서 단어를 보는 족족 무슨 단어인지 잘 답한다. 그런데 조의 왼쪽 눈에 단어를 보여 주자 조는 답을 못한다. 왼쪽 눈을 통한 정보는 우뇌로 가는데, 뇌량이 끊어져 있으므로 우뇌에서 좌뇌로 정보 전달이 되지 않아 자신이 보았던 것을 '언어적으로 재해석'을 하지 못한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단어를 봤는지 답을 못하는 조에게 그림을 그려 보라고 하자 자신이 보았던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다. 즉 좌뇌에서 언어적으로 해석을 못했을 뿐 우뇌에서는 본 것이 무엇인지 '비언어적으로 인식'은 되었으므로 그걸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은 이 부분인데, 조에게 "왜 그 그림을 그렸는가?"라고 묻자 조는 자기만의 적당한 이유를 댄다. 예를 들어 왼쪽 눈으로 'house'란 단어를 본 후에 조는 집 그림을 그리는데(혹은 여러 그림이 있는 카드 중에 집 그림이 있는 카드를 선택함), 왜 그걸 그렸냐고 물으면 "최근에 이사 갈 집을 찾고 있어서"라는 식으로 답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의 솔직한 그리고 정확한 답은 '그냥' 혹은 '모른다'이다. 즉 조의 좌뇌가 강박적으로 이유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조의 경우만이 아니라 이렇게 뇌량이 절단된 환자들의 경우 모두 같은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즉, 왼쪽 눈을 통해 들어간 시각 정보가 우뇌에 머물면서(그 대상이 무엇인지 언어적으로 인식이 안될 뿐 비언어적으로는 인식한 상태), 실제로는 '우뇌가 본 것'을 그리게 된 것이고 그러므로 답을 해도 '모른다'나 '그냥' 등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좌뇌가 나서서 '가짜 이유'를 만들어 답을 하는 것이다. '좌뇌의 거짓말'이란 용어는 그래서 생긴 것이다.


즉, 우리의 뇌(특히 좌뇌)는 자신이 뭔가를 행하거나 선택하면 반드시 그것에 대한 고유한 근거나 이유, 원인을 찾아대는 강박증이 있는 셈이다.


위 실험을 바탕으로 추론해 보면 평소에도 좌뇌가 찾은 건 진짜 원인이나 이유가 아닐 수 있다. 물론 항상 그런 게 아니라 그게 진짜 이유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건 어떤 '근본 기제'이다. 나의 선택과 행위 등에 대해 나에게 떠오르는(혹은 내가 찾아낸) 원인과 이유 등이 진짜 그것이 아닌 기제. 때로 맞는 답을 하고 때론 아닌 답을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애초에 기본 기제가 '진짜 이유'를 말하는 게 아니라 '멋대로 가장 그럴싸한 답을 만들어 내는 것'이란 말이다.


물론 기본 기제는 이렇다 하더라도 실제 일상에서는 되도록 연관성이 큰 이유나 원인들을 부지런히 찾고 또 연결하려 한다. 그리고 많은 경우 무난하게 상황과 일들을 처리한다. 왜냐하면 실제 보고 경험하는 것들을 언어적으로 해석하며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밀히 살펴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그리고 여러 중요한 상황에서, 우리가 어떤 원인을 찾거나 선택을 할 때 의외로 '뇌량 절단 상태'와 같은 상황이 많이 일어난다면?


즉 어떤 사안에 대해서 우리가 떠올리는 것이 '진짜 원인이나 이유'가 아닌데, 우리는 그게 떠올랐기 때문에 절대 사실로 받아들이고 믿는 상황들 말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이든 타인이든 '이유'의 희생양를 필요로 한다


만약 그런 경우들이라 해도 해석과 그에 따른 실제 행동이 별다른 문제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크게  상관없기도 하다. 가짜 이유면 어떤가, 어쨌든 상황과 일이 제대로 돌아가면 된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문제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불필요한 자책감과 죄책감이다. 자기 부정과 자기 미움의 심리를 일으키는 경우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의 실수나 잘못 등이 어느 정도 있을 수 있다 해도 그것은 사실 적정선에서 끝나고 그 상황 자체 그리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요소들, 보이지 않는 원인들, 불가항력적인 흐름들이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내 잘못 보다는 그런 요소들이 더 큰 경우가 많다.


그런데 우리 뇌는, 마치 뇌량이 끊어진 좌뇌가 우뇌가 본 '무엇'을 전달받지 못해서 자기가 본 것을 인식 못하듯이 그런 요소들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그러면 '모른다', '그냥'이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뭔가 그럴 듯한 진짜 이유를 가져야만 하는 좌뇌적 강박'이 원인이 되어 '본래의 것이 아닌 그럴 듯한 이유'를 만들어 내는 것고 스스로 그걸 믿는다. 일종의 무의식적 습관이고 고집이고 반응인 셈이다.


그리고 그 이유들로서 '내 잘못'을 느끼고 잡아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차피 내가 가장 많이 알고 있는 것,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 찾아낼 거리가 많은 것이다. 어쩌면 내가 나를 희생양 삼는다고나 할까. 또한 주위에  자기보다 더 약한 이가 있다면 보통 우리는 그를 탓하기도 한다. 이 경우는 다른 사람을 좌뇌의 거짓말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다. 나이든 타인이든 희생양 삼기 기제는 같으며 둘 다 못난 짓이라는 점은 같다.




'그냥' 일어난 일들은 그냥 일어난 것임을 허락해 주기


우리가 내 잘못, 내 실수, 내 무능력, 내 착오라 여기는 많은 부분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실제로 그런 부분이 있다면 나 스스로 외면하거나 피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잘 파악하고 챙겨서 차후에  되풀이되지 않게 준비를 하자. 지혜롭게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혹시라도 스스로의 '좌뇌의 강박'에 시달리고 속아왔던 부분이 있다면 앞으로는 점점 더 눈치를 채고 그 의미 없는 수다를 그냥 멈추자. 그래서 본래의 잘못이 아닌데 스스로 괴롭히고 힘들게 하지는 말자. 이것이 오히려 제대로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존재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타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버스에서 감기에 걸리고,  미친개에게 물리고, 엄한 놈들에게 억울하게 당하고,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곤란에 처했던 그러한 과거들은 나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그냥' 일어났던 일이었다.

그런데 나의 좌뇌의 '이유, 원인, 근거 만들기 강박'에 의해

'내 잘못'들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냥' 일어난 일들은 그냥 일어난 것임을 허락해 주기.

내가 '모르는' 일과 상황들은 '모른다'고 인정해 주기.

그래서 불필요한 자책감, 죄책감에서 자유롭게 되기.


이것이 우리가 한번 해 볼만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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