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자기 미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Feb 01. 2016

느낌 좋은 놈, 생각 잘 하는 놈, 행동 잘 하는 놈

예를 들어, 말만 잘 하는 것도 충분히 좋은 장점이다

- 느낌 좋은 놈, 생각 잘 하는 놈, 행동 잘 하는 놈


인간을 대략 다음의 세 분류로 나누는 관점이 있다.

느낌에 강한 경우, 생각과 말에 강한 경우, 행동에 강한 경우.


그런데 느낌만 좋다고, 말만 잘한다고, 행도만 잘 한다고 해서 뭔가 모자라거나 잘 못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기능과 역할이 좀 다르다고 보면 된다. 각각이 그 나름의 효능이 있다.


물론 느낌'만' 좋거나, 생각(말)'만' 잘 하거나, 행동'만' 잘 하는 경우 즉 다른 건 좀 부족하면서 한 측면만 잘 하는 경우 아무래도 자기 잘하는 것만 집중하며 다른 부족한 것을 보완치 않은 상태에서는 실수나 오류, 허점 등이 곧잘 나오기도 한다.

(흔히 "저 사람은 말만 잘 해"라는 핀잔도 그런 부분을 지적한 말이 되겠다. 하지만 '말(생각) 능력'만 그렇게  대접받을 이유는 사실 없다. "저 사람은 느끼기만 잘 해"도, "저 사람은 행동만 잘 해"도 충분히 의미 있는 핀잔이 될 수 있다.

행동력이나 실행력은 보통 많이 칭송 받기도 하지만, 사실 깊은 느낌과 생각 없이 행동만 잘 하는 경우가 만들어 내는 피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잘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잘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자기가 잘 하는 것을 장점으로 잘 살려 살아가되 부족한 다른 측면들도 보완하면 자기에게 더 좋겠다. 타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느낌이 좋은 이들은 생각(말)과 행동을, 생각과 말의 능력이 좋은 이들은 느낌과 행동을, 행동(력)이 좋은 이들은 느낌과 생각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통합적인 능력을 키우는 것이 자신과 세상 모두를 위해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조차도 바탕은 자신의 본래 능력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것이 아닌 다른 능력을 주된 것으로 키우려 하는 것은, 의도와 노력은 가상하지만 실제 성과나 성취가 아주 힘들고 비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주의할 것이 있다. 자기가 잘 하는 영역 중심으로만 너무 타인과 세상을 보는 경우이다. 그럴 필요가 없다. 특히 다른 능력을 지닌 타인들에 대해서 그런 편견 어린(혹은 질투 어린) 시전을 많이 가지곤 한다. 역시 그럴 필요 없다. 그냥 서로 사용하는 도구가 좀 다를 뿐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느낌 좋은 이들은 생각(맑)과 행동이 좋은 이들을, 생각 잘 하는 이들은 느낌과 행동이 좋은 이들을, 행동 잘 하는 이들은 느낌과 생각 잘 하는 이들을 충분히 서로 존중해 주고 또 서로 잘 활용하는 것이다. 그러라고 서로 다르게 태어나는 것이다.


아주아주 거칠게 말해 보자면(이 부분은, 더  세분화해서 글을 한 편 쓸 수 있을 정도로 나름 생각해야 할 경우이긴 한데), 느낌 좋은 이들은 주로 예술성 영역들에, 생각-말이 좋은 이들은 문학, 철학, 종교 등에, 행동이 좋은 이들은 정치, 기업, 운동(스포츠와 사회적 운동 모두)에 많이 분포할 것이다. 아주 간략화 한 분석이니 이해를. 이 부분은 얼마든지 더 세밀히, 확대해서 이야기의 꽃을 피울 수 있기도 하겠다.

(물론 각 능력이 적용되는 사회 영역이 꼭  이렇게 기계적, 도식적으로 나뉘는 게 아니다. 모든 영역에서 사실은 각 능력이 골고루 사용되고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한 가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사회적 영역에  상관없이 각 영역에 들어가서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해 일을 하는 것도 가능하고. 위 영역 분류는 조금 상징적인 의미이다)  


(역시 아주 거칠게 말해 보자면) 그래서 우리에게는, 생각과 행동을 좀 할 줄 아는 예술인이, 느낌과 행동을 좀 더 갖추는 문학, 철학, 종교인이, 느낌과 생각을 좀 더 가지는 정치인, 기업인, 운동인 들이 필요하다 말해 볼 수 있겠다. 이 주제 역시 또 더 세밀히, 확대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겠다.




그런데 '나는 세 가지 능력 중  아무것도 잘 하는 게 없어' 하는 경우가 있다.


아니다. 단언컨대, 그런 경우는 없다. 오히려 불가능하다. 아직 잘 모르겠다면 아직 스스로 못 발견한 것이거나 혹은 빤히 있는데 못 보고 있는 것이다. 즉 자기가 자기를 잘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나 어른들이 아이의 그 특성들을 잘 못 알아보고 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느 경우든 능력이 없는 아이는 없다. 물론 그 능력의 당장의 수준이나 깊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누구라도 자신의 고유 능력 부분을 잘 알아주고, 개발하고, 살리고, 확대시켜 주면 모두가 활짝 꽃 피우게 된다.


사실 위 세 가지 능력은 어릴 때부터 당연히 외부로 드러난다. 본인이 애쓰든 아니든  상관없이 말이다. 아이들을 키워보는 부모들이라면 또 잘 알 것이다.


부모와 어른들과 사회의 역할과 기능은 다음과 같은데, 아이들이 자신의 본래 능력 영역을 잘 알아차리게 하고 스스로 그것을 살리고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회가 한 가지 능력만 강조하거나 혹은 어떤 능력이든 꼭 최고치만을 강요하거나 하면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럴 필요 없다. 어차피 인간의 사회는 이 세 가지 능력을 모두 골고루 필요로 한다. 그래서 '자연'이 인간을 이렇게 적당히 각 능력별로 분포시켜 출생되도록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일종의 집단적 자연선택인 것이다.


물론 다른 능력치들도 어느 정도씩은 키우고 보완하고  강화시켜 나가는 것이 필요하지만, 우선은 본래 자신의 능력을 발견해 주고, 느껴 주고, 살리고, 꽃 피우자. 다른 능력들은 그 보조 역할을 하게 하면 된다. 이게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나도 살고 상대도 살고 사회도 살게 하는 것이다.


## 주: 개인적인 삶을 사는 데는 굳이 다른 영역의 능력까지 의무적으로 키울 필요는 없겠다. 그냥 잘 살면 될 일이다. 하지만 만약 타인들과 세상과 어느 정도 이상 연관된 일을 하게 된다면 다른 영역의 능력들도 갖추는 게 자신과 모두를 위해 좋겠다. 자신의 삶을 자발적으로 더 풍성하게 만들기 원할 때도 또한 마찬가지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하는 게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