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루 MuRu Mar 13. 2016

커제는 정말 이세돌을 디스했나? -일상의 적대감 만들기

쉽게 속아서 만들어진 일상의 적대감은 우리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 주의: 이 글은 특정인과 특정 상황에 대한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 그리고 우리의 일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관점에서 읽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일상 관계에서 우리는 수많은 갈등과 충돌을 경험한다. 그런데 사실이 아닌 허구와 거짓말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학교와 직장, 여러 모임과 공동체에서 자신에 대한 잘못된 뒷담화나 소문들을 누가 하고 다니는 것을 듣게 되면, 왠지 알지 못할 억울함과 분노 그리고 슬픔과 허망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내 편, 네 편을 나누게도 되고 나도 그 사람들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뒷담화로, 때로는 실제 행동으로 적대감을 표현한다. 그러나 실제 있었던 말과 행동을 알게 되면 순식간에 사라질 서로 간의 적대감과 미움, 오해가 아주 많다. 종종 우리는 진실을 끝까지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어두운 마음을 품고서.

사실 이러한 과정은 '속임수와 기만의 과정'이다. 우선은 내가 외부에 의해 속고 그러고 나서 나 스스로에게 속는 것이다. 문제는, 결국 그로 인해 손해 보고 고통받는 건 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와 주위 사람들도. 이 글은 '커제와 이세돌'의 이야기로 시작되지만, 단지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우선 아래 기사를 보자.




“이세돌 처참, 인류 대표 자격 없어” 커제 발언… 진실은

중국 바둑랭킹 1위 커제(19)가 구글 인공지능(AI) 알파고에게 2연패 한 이세돌(33) 9단을 비판했다는 이야기가 오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논란이 된 커제의 발언은 10일 이세돌과 알파고의 두 번째 대결이 끝난 뒤 나왔다. 대국 중계를 마친 커제의 관전평을 중국 매체 소후 등이 보도했다. 중국어 원문기사 보기

해당 발언은 곧바로 번역돼 국내에 전해졌다. 커제가 대국 결과에 대해 강한 실망감을 드러내는 한편 이세돌을 향해 독설을 쏟아냈다는 내용이었다. 국내 다수 보도에 따르면 커제는 “이세돌이 0대 5로 질 수도 있다. 오늘 패배는 처참했고 따분했다”고 평했다. 이어 “이런 마음 상태로 바둑을 둔다면 몇 번이든 질 것”이라며 “평소 이세돌은 매우 강하지만 오늘은 괴로워 보였다”고 말했다. 특히 “(이세돌은) 인류 대표 자격이 없다”고 쏘아붙였다.

이 같은 인터뷰에 국내 네티즌들은 분개했다. “자만이 하늘을 찌른다”거나 “바둑 실력보다 인간성부터 키우라”는 등 질타가 이어졌다. 하룻밤 사이 인터넷은 커제를 향한 비난 여론으로 들끓었다.

그러나 11일 상황은 반전됐다. 앞서 알려진 내용은 오역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어를 안다는 네티즌 A 씨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중국어로 된 원문 기사를 보니 번역본과 다소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A 씨에 따르면 커제는 “절망적이지만 완패였다. 알파고가 강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다. 또 “이세돌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며 “인류 대표로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은 버리고, 상대를 기계가 아닌 한 명의 바둑기사라고 생각했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 해석이 정확하다면 커제는 단지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가 적잖은 오해를 불러온 셈이다. 충격의 2연패를 당한 이세돌은 이날 하루 휴식을 취하며 전열을 정비했다. 오는 12일 오후 1시 알파고와의 5번기 제3국에 나선다. 이세돌은 남은 세 판을 모두 이겨야 이번 대국의 승자가 될 수 있다.

출처: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국민일보



'거짓'으로 만들어지는 일상의 적대감


일상에서 우리는 누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특히 '누가 너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하더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전해주는 사람의 의도가 있든 없든 그 말이 왜곡되거나 변형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좋은 말이거나 중립적 말이면 상관없지만 그렇게 전달되는 대부분의 경우는 부정적인 내용이다.


일상만이 아니라 여러 뉴스와 정보도 마찬가지다. 얼핏 객관적이고 공정할 것이라 여기는 미디어나 학문적 내용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때론 의도적으로 때론 비의도적으로 그렇다.


문제는 그로 인해 불필요한 오해, 적대감, 분노, 실망감 등이 생길 때이다. 더구나 사실이 아닌 허구에 의해서 말이다. 물론 말을 전해 주는 사람이 거의 있는 그대로 전해줄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사실'에 의해서도 부정적 반응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말'을 전해주는 경우조차도 결국 전해 주는 사람의 오해와 의도에 의해 오염되고, 또 듣는 나에 의해 또 오염될 수 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가 아닌 경우는 얼마나 더하겠는가?


일단 '전달자'와 그에 의해 '전해 지는 말'은 모두 의심해야 한다. 모두.


좋은 말이나 객관적 정보는 물론 전달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 외의 경우는 거의 전부 불필요한 것이라 봐야 한다. 전해 주는 이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또 나를 위해서 전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그 내용이 안 좋은 것이라면 확실히 의심되어야 한다. 특히 일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선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전해진 말이 사실 그대로가 아닌 경우'이다. 완전히 허구의 경우일 수도 있고 본래 했던 말이 왜곡된 경우도 해당된다. 그럴 가능성이 아주 많다. 위 기사의 커제의 말은 후자의 경우다. 커제가 실제 했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오히려 예의를 잘 갖춘 경우였다. 그런데 국내 기사는 그 말의 본의를 비틀거나 혹은 하지 않은 말도 덧붙여 거의 반대의 말로 만들어 버렸다. 아래 비교를 보자.


 “이세돌이 0대 5로 질 수도 있다. 오늘 패배는 처참했고 따분했다”와

“절망적이지만 완패였다. 알파고가 강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가 완전히 다른다.


“이런 마음 상태로 바둑을 둔다면 몇 번이든 질 것”과

“이세돌의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다”도 완전히 다른다.


“(이세돌은) 인류 대표 자격이 없다”와

“인류 대표로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부담은 버리고, 상대를 기계가 아닌 한 명의 바둑기사라고 생각했으면 한다” 역시 거의 극과 극의 표현이다.


더구나 왜곡된 기사에서는 '쏘아붙였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일상에서도 자주 보던 수법이 아닌가?


국내 네티즌들의 반응을 보자.

이 같은 인터뷰에 국내 네티즌들은 분개했다. “자만이 하늘을 찌른다”거나 “바둑 실력보다 인간성부터 키우라”는 등 질타가 이어졌다. 하룻밤 사이 인터넷은 커제를 향한 비난 여론으로 들끓었다.


물론 어떤 경우는 실제 누군가 했던 말을 전해 주는 경우도 있다. 위의 경우도 처음 기사의 기자는 나름대로 그렇게 '번역'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커제의 막말을 빨리 국내에 전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기사에 대한 욕심, 클리 수 유도, 독자들에 대한 자극의 유혹이 더 컸을 수도 있다. 두 가지가 맞물려 무리수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상에서도 거의 비슷한다. 말을 전해 주는 이가 '순수한' 마음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떤 것이든 모종의 의도가 있다. 설사 정말 순수했다 해도 말을 전하는 행위가 있는 순간 그 순수성은 자라져 버린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말을 들은 사람의 반응이다.


허구에 넘어가면 결국 내가 고통을 받는다


결국 그 말에 넘어가면 고통을 받는 건 '나'이다. 나는, 본래는 없었던 말에 의해서 고통을 받고 또 그 말을 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생각으로 또 고통을 받는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스스로 더 부정적 측면을 키운다는 키운다는 것이다. 때로는 전해진 말의 내용보다 더 심화되는 경우도 있다.


비교적 우호적이었거나 중립적이었던 상대에 대한 내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뀐다. 나는 '그가 그런 말과 행동을 했으니 내가 그에 대해서 부정적이 되는 건 정당해. 그는 내 마음의 응징을 받아 마땅해.'라고 여기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실제 그가 그렇게 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심리적 정당성과 만족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잘못된 정보에 의해 잘못된 믿음과 인식을 가지게 될 때 결국 손해 보는 건 다른 누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그래서 이후에 불필요한 반응을 할 수도 있다. 일상의 관계라면 그와 있을 좋은 일도 놓칠 가능성이 많게 된다. 또 없어야 할 부정적 관계가 형성된다.


일상의 관계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그는 정치인, 사업가, 학자, 예술가, 연예인, 종교인 등등 모두가 될 수 있다. 나와 직접 일상적 인연이 있는 경우는 아니지만 여하간의 잘못된 반응을 일으킬 수 있게 된다. 이 때는 경우에 따라 그 영향이 아주 적거나 아주 클 수 있게 된다. 영향이 클수록 손해와 고통도 커진다.


허구와 사실을 구분하는 방법
: 상식에 어긋날 땐 분노하기 전에 오히려 의심하라!


일단 '아니, 어떻게 그런 심한 말, 심한 행동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심한 말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때엔 특정 상대방이 정말 나를 미워하거나 나에 대한 적대감 등이 있어서 혹은 오해가 있어서 작정하고 못된 말, 잘못된 말,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을 순 있다. 그래서 그런 때엔 잘 구분을 하고 또 제대로 대처를 하기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


그런데 대부분 '어, 심하다. 왜 그런 말을? 그런 행동을?' 정도가 되는 경우엔 실제론 그 정도로 말을 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서로 상식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내가 상식적으로 부당하고 그런 심한 말을 하지 않는다면 상대들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나만 정당하고 당당하고 상대들은 옹졸하고 비겁하다'는 식의 생각은 우리가 쉽게 가지는 선입견이기도 하다. 누구나 '나'는 옳고 '타인'은 틀리게 마련이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한다. 이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봐야 한다. 다만 우리가 그런 생각의 습관이 있음을 눈치채는 게 중요하다. 그런 느낌과 생각은 있지만 그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의도적으로 유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나도 상대도 모두 정당하고, 당당하고, 옳을 수 있다'거나 혹은 '나도 상대도 모두 틀릴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도록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것은 명백히 의도적인 인지와 훈련이 필요하다.


위의 커제의 경우도 그렇다.


“이세돌이 0대 5로 질 수도 있다. 오늘 패배는 처참했고 따분했다”

“이런 마음 상태로 바둑을 둔다면 몇 번이든 질 것”

“(이세돌은) 인류 대표 자격이 없다”


이런 말은 거의 성격 장애가 있는 사람이 할 정도의 말이다. 그것도 대중이 모두 보는 SNS상에 대놓고 한다면 말이다. 우리는 실제 커제의 성격이나 인품을 알진 못하지만, 상식적으로 유명인이 모두가 보는 대중의 장에 저렇게 함부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여파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도? 어지간히 성격과 인격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오히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물론 가끔은 실제 성격이나 의도가 그런 유명인이 있긴 하지만 극히 드물다)


그러나 그것이 '기사'라는 형식으로 그리고 실제 그가 한 말을 번역해서 전달한다는 말에 많은 이들이 거의 그대로 믿어 버렸다(사실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상에서는 그 말을 전해 주는 이들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래서 결과는 어떤가? 말도 안 되는 표현을 하니 대중들의 반응은 당연히 격앙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도 인터넷 댓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을 보면 위에 커제가 했다고 한 처음의 발언을 실제 커제의 발언 그대로로 믿고, 저 말들을 바탕으로 커제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그들은 자기가 잘못 전달된 말에 속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혹은 지금 믿는 대로 계속 믿고 싶은 것이다. '못된 커제'를 계속 세워두고 또 미워하고 싶은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의 반응도 그렇다(사실 이 글에서는 커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가 더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상대방 악마화의 문제:
내가 악마가 아니 듯 그도 악마가 아니다. 상대의 선의를 내가 먼저 믿어 보기.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자신을 정당화하고 상대방을 악마화 하는 것을 당연한 듯이 한다. 다른 개체에 대해 경계심을 세우는 것은 어느 정도는 동물적 본능이기도 하다. 거기에 인간의 생각 기능이 더해지면서 왜곡되며 강화된 것이 '상대방의 악마화'라 할 수 있다. 그냥 '일반적인 경계'가 '악마화'로 변형된 것이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실제 나와 사이가 나쁘거나, 나를 해치려 하거나 억울한 누명을 씌우거나 없었던 일을 있는 듯하는 경우들도 있을 순 있다. 여하 간의 이유에 의해 서로 비우호적인 되는 것이다. 그런 경우엔 또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에 대처를 하면 된다. 만약 상대가 부당한 말이나 행동을 했다면, 차분하게 직접 가서 그 사람에게 할 말을 당당하게 하면 된다. 그래서 중립적이고 안정된 마음으로 '불필요한 말을 만들어 내지 말고 또 뒤에서 말하지 말고 앞에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자'고 하자. 만약 그 정도가 심하다면 일부러라도 강력하게 경고도 하자. 계속 그러면 나도 모종의 조처를 취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면 또 하도록 하자. 그런 경우에 조차도 참거나 억압될 이유는 전혀 없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그가 떠돌고 있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거나 내가 오해를 한 경우라면 당연히 그 오해를 없애는 것이 좋다. 나에게도 이익이다. 상대에게도 이익이다. 이를 위해선 두 가지 대처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무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해 준 말을 내가 스스로 냉정히 분석해 보니 뭔가 잘못 전달되고 있는 듯하게 보이면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그 말에 신경 쓰지 않는다'이다. 그 전해진 말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가 그런 말을 한 행위 자체도 말이다.


가령, 위 커제와 이세돌의 경우를 보자. 두 사람이 실제 어느 정도로 친숙한지는 모르겠지만 친하든 아니든 이세돌이 뉴스에서 얼핏 위 기사를 보았다 해도 그냥 '훗, 말도 안 되는.'이라고 넘겨 버리면 그것으로 끝인 것이다. 일상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냥 넘겨버리는 것, 보내버리는 것이 최상이다.


또 하나의 대처는, 실제 그 사람에게 직접 확인하는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들이 말만을 들을 이유가 없다. 타인들은 그 사람이 아니다. 이 당연한 부분을 우리는 많이 간과한다. 그런데 이때 주의할 것이 있다. 확인하는 과정에 그 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미리 흥분하거나 화를 내며 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아무런 사전 판단과 사전 반응을 가지지 않은 채로, 혹은 설자 내 맘속에 모종의 부정적 반응이 있다고 해도 그에 개의치 않고 그냥 드라이하게 물어보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이 있던데 혹시 정말 하신 말인가?"라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다만 사실 확인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래서 당신에 대해 있을 수 있는 오해를 없애고 싶다. 우리 관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지금 질문을 하는 진짜 의도이다."는 식의 말들을 덧 붙이는 것도 좋다. 필요하면 최대한 우호적이고 예의를 갖춘 태도와 어조, 표정과 언어를 쓰는 것이 좋다.


내가 이렇게 확인할 때 상대방은 혹여 당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전해 예상치 못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는 자신은 하지도 않은 말이나 의도하지 않은 것을 듣게 되는 입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할 때 나도 미리 상대방이 당황할 수 있음을 예상해야 한다. 심지어 나에 대해 불쾌해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다. 만약 자신이 정말 그런 적이 없거나 그런 의도가 없었다면 말이다. 그래서 그런 것 까지도 미리 예상한다.


그러면서 서로가 드라이하게 혹은 우호적으로, 예의를 갖추고, 상식선에서 대화를 하고 상호 확인을 하면 된다. 그래서 오해를 풀면 되다. 그 과정 중에 내가 사과할 것이 있으면 하면 된다. 상대도 사과를 할 게 있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그것 없이 서로에 대한 오해와 분노와 혐오의 어두운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것보다 백배 낫다.




위 글은 주로 남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그리고 남이 또 다른 남의 이야기를 잘못 전달하는 경우가이 주된 내용이지만, 사실 내가 나에게 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즉 나의 판단이자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주로 오해나 편견, 고정관념, 착오, 착각 등으로 될 때이다.


그리고 남의 경우든 나의 경우든, 그 이야기를 충분히 참고하고 또 제대로 대응해야 할 부분에서는 제대로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결코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남과 나에 의해서) 전달된 내용들을 무조건 무시하거나 잘못된 것이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불필요한 것, 아닌 것'을 정밀히 잘 파악하고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면 '본래 대응해야 할 부분'에서 오히려 좀 더 효율적이고 객관적이고 유연하게 파악을 할 수 있고,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간 공지] 책 '자기 미움'의 출간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

- 가장 가깝기에 가장 버거운, 나를 이해하기 위하여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책 '자기 미움'이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출판사 '북스톤'에서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로 정성 들여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브런치에서 '자기 미움' 심리의 원인과 해결을 주제로 연재해 온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책의 부제처럼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가장 가깝기에 가장 버거운, 나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책의 내용으로는 '자기 미움 심리, 정체성 문제, 감정 다루기, 상처 넘어서기, 타인과의 관계' 영역에서 실제 도움이 되는 이해와 구체적인 실천법들이 상세히 들어 있습니다.

- 이경희 작가 드림


아래는 책 <자기 미움> 링크입니다.

# <자기 미움> 종이책: 네이버 책 링크 / 교보문고 링크 / 예스 24 링크 / 알라딘 링크 

# <자기 미움> 전자책: 리디북스 e-book 링크 / 교보문고 e-book 링크


축하해 주세요! 책 <자기 미움>이 2016년 문공부 주최 '세종 문고'에 선정되었습니다. '인문/철학/심리' 영역에서 입니다. 선정 후 정부 지원으로 전국 2700여 도서관, 학교, 기관 등에 배포되었으며 전자책 출간 지원도 받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라 생각되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관심 작가 브런치>

이시스 작가의 브런치: 흥미로운 신화 이야기(신화 속에 있는 연인과 부부 유형), 힐링 동화, 시, 자기 치유, 따돌림에 대한 좋은 글들이 있는 브런치


매거진의 이전글 답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