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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May 13. 2016

'대화의 3가지 원형'을 알면 대화가 보인다

나는 어떤 대화를 하고 있는가

소통이 부족한 시대다. 그래서 소통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소통 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방식은 당연히 대화다. 둘이서 나누는 대화도 있고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이 나누는 대화도 있다. 말로 하는 대화도 있고 글이나 기타 다른 수단으로 나누는 대화도 있다. 온라인 대화도 있고 오프라인 대화도 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면 '대화법'에 대한 정보도 많다. 실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기도 하고 여러 매체에 글이나 책, 동영상 등으로 좋은 방법론들이 나와 있다. 특별히 문제만 없다면 웬만한 대화법은 다 도움이 되다. 각각 특유의 노하우가 있는 경우도 있고, 서로에게 부족하거나 없는 부분을 서로 채워줄 수 있다. 그러므로 능동적으로 책을 보거나 프로그램 등에 참가를 하면 본인의 대화 능력을 충분히 키울 수 있다. 대화법들을 잘 보다 보면, 결국에는 비슷한 지향점과 방법론을 사용하고 있음을 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대화란 어느 경우든 그 기본 구조는 결국 비슷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는 훈련이다'는 것이다. "말하는 거? 그거 누구나 다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럴 꼭 훈련해야 하나요?"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대화라는 게 결코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데 있어 내가 뭔가 부족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정확히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계속 더 잘 해보려 노력하지만 애쓰는 것에 비해 뚜렷한 발전이나 변화가 없곤 하다. 이유는 간단한데, '구체적인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화를 잘 하게 되는 것 즉 소통 능력을 키우는 것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두 가지 핵심을 따라야 한다. 첫째는, '구체적인 대화법'을 확실히 배워야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미 시중에 책이나 프로그램 등이 여럿 나와 있다. 대화의 기본 원리나 기본적인 대화법들도 말이다. 그런데 중구난방으로 이러저러한 방법이 있다고 알기만 해서는 정리가 안 된다. 그러므로 먼저 되도록이면 확실하고 구체적인 대화법을 배우는 것이 좋다.(필자가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한 프로그램은 '비폭력 대화(NVC)'이다. 한국에도 지부가 있으며 꾸준히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금방 센터 정보와 프로그램 일정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실제 연습'을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하든 혹은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실습을 하든, 그룹을 만들어 연습을 하든 여하튼 실제 말을 나누며 해 봐야 한다. 이것은 자전거 타기, 피아노 배우기 등과 똑같다. 대화는 이론이 아니다. 대화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흐름이다. 그러므로 특정 대화법 혹은 좋은 대화법의 스킬을 충분히 외우고 익혔다 해도 실제 연습, 훈련, 대화를 통해 몸에 익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대화법 책 10권을 읽어도 실제 훈련이 없으면 일상에서 대화할 때 여전히 똑같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만약 대화 능력, 소통 능력, 공감 능력, 관계 능력을 키우기를 원한다면 어떤 형식이든 실제 연습을 하도록 하자. 많이 할수록 당연히 좋다.


그런데 대화법 연습을 할 때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이 있다. 처음에 조금 연습했는데 금방 대화 스킬이 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이다. 그래서 포기한다. 세상에 그 어떤 기술도 조금 연습해서 확 발전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대화는 우리가 평소에 늘 하던 것이니 그리 될 줄 착각하는 것이다. 아니다. 대화도 다른 기술, 기예의 경우와 같다. 제대로, 오래 연습하고 또 신경을 써야 목적하는 만큼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무척 달다.


이 글은, 그러한 구체적인 대화법과 스킬에 대해서 말하는 글은 아니다. 물론 필자도 필요할 땐 그런 글을 쓸 것이다. 대화 훈련, 소통 훈련과 관련된 실제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 대신 우리가 나누는 모든 대화를 '3가지 원형'으로 분류해서 살펴볼 것이다.


3가지 대화 원형 중 가장 바람직한 것은 '세 번째 원형'이다. 그리고 아래에 링크한 다음 글에서 그 '3 원형'을 더욱 완성시키는 구체적 방법을 말할 것이다.

(3 원형의 구체적 방법론.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허용 후 활용' 대화법")


물론 3가지 원형은 모두 대화에서 각각의 기능과 역할이 있다. 무조건 한 가지 방법만 써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적절히 골라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성숙한 방법론은 '3 원형'이며 되도록이면 그 방법론을 사용하는 게 좋다. 그러면서 나머지 원형도 필요에 따라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화의 3가지 원형을 아는 것은 구체적이고 특정적인 대화법을 익히는 것과는 또 다른 효과와 이익이 있다.


우선 대화를 하면서 '지금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말을 하면서 정작 내가 어떻게 말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상대와 내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 서로 모른다. 그래서 그냥 중구난방 '소리'만 오가는 겪인 대화가 많다. 대화는, 당연히 소리만 오가는 것이 되어선 안 된다. 뭔가 서로의 마음이 오가고, 느낌과 감정이 오가고 그리고 함께 뭔가를 느끼고, 나누고, 만들고 결국에는 대화를 나누기 전보다 좀 더 가까워지고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게 좋다.


또한 대화의 3가지 원형을 파악하면 대화의 주인이 되고 대화를 주도해 나갈 수 있다. 즉, 이전에는 내가 오히려 대화에 치이거나 대화가 버거웠다면, 이제 내가 어떤 경우에 어떤 원형을 선택할 것이지 그리고 어떤 경우엔 필요치 않은 원형으로 할 때 그것을 멈추거나 바꿀지 등을 좀 더 능동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 물론 원형을 이론적으로 파악하기만 한다고 해서 바로 그렇게 된다는 말은 아니겠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역시 훈련과 연습 그리고 일상 대화에서의 실제 적용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예 이런 구분을 모를 때와 선명히 알 때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모르면 애초에 변화의 여지가 없지만 일단 알면 변화의 가능성이 생긴다. 그리고 실제 변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크게 말이다.




이 글에서 제시하는 대화의 3가지 원형은 다음과 같다.

기본에 충실한 분류이다.

(네 번째는, 링크된 다음 글에서 상세히 말할 '3 원형의 구체적 방법론'이다)


1 원형. 자기 이야기만 한다.
2 원형.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3 원형.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와 이야기한다.
  (3 원형의 구체적 방법론.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허용 후 활용' 대화법")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최고의 대화법은 3번째이다. 하지만 아래에서 먼저 각각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자. 잘 알면 알 수록 더 잘 활용할 수 있게 된다.


(# 참고: 우리는 얼마든지 다른 대화의 원형을 잡을 수도 있다. 가령 '느낌 나누는 대화, 생각 나누는 대화, 정보 나누는 대화'도 가능하며, '언어적 대화와 비언어적 대화'도 가능하다. 혹은 '내용을 나누는 대화, 통찰을 나누는 대화'로도 나눌 수 있다. '설득을 위한 대화, 소통을 위한 대화', '언어를 위한 대화, 언어를 넘어서기 위한 대화' 등도 가능하다. 만들기에 따라 모두 나름의 의의와 유용성이 있겠다)




1 원형. 자기 이야기만 한다.


당연히 가장 최악의 대화 원형이다. 필요할 때는 물론 있다. 누군가의 이야기만 들어야 할 때이다. 상황적으로 그럴 때가 있다. 연설이나 강연, 강의, 가르침 등의 경우다. 물론 이런 경우에조차도 완전히 100% 혼자만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은 아니다. 뒤에 나오는 3 원형의 방법론을 함께 활용해야 한다.


과거에는 이 원형이 아무래도 위세를 떨쳤었다. 특히 한국 사회는 더 그랬다. 사실 안타깝게도 아직까지도 그렇다. 왜곡된 가부장적 문화, 왜곡된 군대식 문화, 되도록 큰 목소리를  내어야 유리 해지는 문화, 기득층 갑질 혹은 서로 간의 갑질 등이 그 예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더 이상 이런 일방적 대화, 일방적 소통은 효과가 없다. 그리고 점점 허용되지 않고 있다. 개인과 집단의식에서 공히 말이다. 사실 효율성 면에서도 제일 떨어진다. 왜냐하면 다수가 생각과 경험치를 모아서 뭔가 하는 경우와 혼자서만 뭔가 하는 경우의 능력 차이, 실력 차이, 효능의 차이는 분명하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사회가 직면한 위기 중 하나로 '오너 리스크(Owner risk)'라는 말이 있다. 당장 구글에서 해당 단어로 검색을 하면 과련 기사와 칼럼의 리스트가 쭉 뜬다. 그 정도로 누구나 느끼고 공감한다는 말이다. 기업이나 공동체에서 그 소유주 혹은 리더가 오히려 가장 큰 위험이 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만 아는 것'이다. 상징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제 죽은 원형이다.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더 이상 효과가 없다. 하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횡행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자기 이야기만 하는' 당사자는 행복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더 이상 효과 없는 방법을 사용하면서 사실은 본인도 힘들어한다. 뭔가 이상하고 잘 안 되는 것이 느껴지고 경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기에 바꾸지도 못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힘들고 괴롭게 된다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 없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못 바꾸면 도태될 뿐이다.




2 원형.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1 원형보다는 좀 낫다. 그러나 여전히 한계는 크다. 1 원형과의 차이는, 일단은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다다. 즉 듣기만 한다. 그리곤 1 원형처럼 자기 이야기만 한다. 그럼 듣긴 왜 듣나. 그러면서 자기는 듣기를 하고 있으므로 대화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2 원형의 나름의 노력은 물론 치하해 줘야 한다. 일단 '듣기' 단계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아마 본인 스스로도 너무 자기만 이야기하는 것을 눈치챘기에 좀 들어줘야 한다고 즉 상대방도 말을 하게 하자고 결정했을 것이다. 다만, 듣기는 듣는데 '어떻게 들어야 하고, 들은 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일단 들었기 때문에 자기 머리 속으로 상대의 말이 들어가긴 들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2 원형의 경우엔 그렇게 들은 이야기에 대해서 의식적으론 거의 고려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들었지만 다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뭔가 들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차후에 어떤 가능성의 씨앗이 될 수는 있다.


하지만 큰 기대를 가질 순 없다. 거의 소 귀에 경읽기 식으로 듣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상대의 말을 듣는 목적도 자기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만약 상대가 이 2 원형에 빠져 있다면, 이것을 말해 주면서 이후에 나올 3 원형으로 대화하자고 말해 주는 게 좋다. 물론 이런 조어이나 충고도 함부로 하면 상대방이 잘 받아들이지 않거나 기분 나빠하지만 여하튼 필요할 때는 말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자기가 2 원형에 빠져 있는 것을 스스로 눈치챈다면, 이제 다음 3 원형으로 넘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의 말을 듣지만 내 이야기만 하는 건 1 원형 못지않게 무용하기 때문이다. 소통과 나눔에 있어서 말이다. 효능과 유용성이 많이 떨어진다. 결국 서로의 노력과 시간만 낭비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듣기'란 결코 쉬운 것이 아니기에 이 정도도 할 수 있게 된 것을 기꺼이 치하하고 격려하고 자랑스러워는 하자. 드디어 '듣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제대로' 듣기이다.




3 원형.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와 이야기한다.


이제 거의 다 왔다. 3 원형이 되어야 '진짜 대화를 한다'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제 드디어 대화의 필수 요소인 '상대와 나' 두 사람이 모두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와 이야기 하기 때문이다.


앞서 원형들은 모두 '나'만 존재했다. 대화란, 두 개의 극성이 서로 어우러지면 실시간으로 자기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하나의 자기장을 형성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하나의 극성만 힘을 쓰게 된다면 그건 그냥 하나의 극성의 '자기 수다'이지 대화가 아니다. 그럴 거면 혼자 말하는 게 낫다. 소위 대화를 한다면 두 극성이 모두 살아야 한다. 그래서 멋진 새로운 하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극성이 둘인 하나'가 말이다.


사실 1 원형과 2 원형은 '내가 나와 대화'하는 경우였다. 상대는 없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다면 이제 당연히 상대와 그의 이야기를 가지고 대화를 해야 한다. 물론 '내 이야기'도 한다. 그건 기본이다.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내 이야기와 상대 이야기를 동시에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3 원형의 다른 점이다.


상대에 대해 이야기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잘 느껴야' 한다. 상대의 살아있는 생생한 느낌을 말이다. 그리고 상대의 생각과 상대의 입장도. 만약 건성으로 듣거나 그냥 흘려듣는다면 상대 이야기가 끝나도 내가 할 말이 없게 된다. 이것이 2 원형의 한계였다. 그러니까 상대의 이야기를 들었어도 다시 자기 이야기만 하게 되는 것이다.


3 원형은, 이제 대화의 목적도 확실하다. 본래의 대화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상대'이다. 대화의 목적은 상대이다. 서로의 상대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도 있다. '나' 또한 대화의 목적에 포함된다. 둘 모두 대화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극성이 둘인 하나'로서 말이다. 핵심은, '나만 목적인 것'과 '상대도 목적인 것'의 차이인 것이다. 결과적으론 '나와 상대 둘 모두 대화의 목적'이지만 그러나 각자가 상대를 좀 더 목적으로 해 줄 때 혼자서만 말할 때는 기대할 수도 없었던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다. 때론 거의 기적 같은 일들이.


사실 대화는 하나의 기적이다. 둘 이상의 개체가 제대로 된 대화를 할 때 일어나는 일들은 기적 그 자체이다. 인간은 대화를 통해 다른 동물 등이 이루지 못하는 많은 것을 이룬다. 어쩌면 우린 대화가 너무 익숙하다 보니 마치 공기와 물처럼 그 귀중함과 특별함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화의 기적성'을 매번 새롭게 인식하면 할수록 이제 별 것 아니라 여겨왔던 대화의 본래 모습을 보게 된다.


대화는 또한 기회와 가능성이다. 대화가 없었을 때와 비교해서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것은 '상대가 있는 대화, 서로 상대가 목적인 대화'이다. 남이었던 서로를 우리로 연결시켜 준다. 개인 간의, 집단 간의 오해와 갈등을 푼다. 서로 우호감을 가지게 해 준다. 우정과 사랑을 나누게 해 준다.


보통 대화가 짐이거나 부담이 되는 건 1 원형이나 2 원형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3 원형으로 '제대로' 나누는 대화는 사실 기적, 기회, 가능성 그리고 축복이 된다.


그런데 3 원형도 능숙하게 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가 있다. 사실은 그 차이가 아주 크다. 훌륭하긴 한데, 어느 정도는 이것만으로도 일상의 대화와 관계를 충분히 원만하게 이어나갈 순 있는데 2%가 부족하다. 그 2%는 '구체적이고 효과적인 기법'이다.


이왕 제대로 대화를 하려면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기법, 흐름, 순서, 구조가 있으면 더 좋다. 물론 차후에는 그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으면서도 좋은 대화, 행복한 대화, 건강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지만 그 경우에도 이 요소들이 체화되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될 것이지 아예 없을 수가 없다.


그 기법 중에 가장 핵심이 되는 방법론을 다음 글에서 말하고자 한다.


링크: 3 원형의 구체 방법론.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허용 후 활용' 대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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