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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May 13. 2016

깊은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허용 후 활용' 대화법

가장 강력한 대화 기법 중 하나이다

(# 둘로 나눈 글 '후반부'이므로 이 글을 읽기 전에 아래 링크된 전반부를 먼저 읽어야 한다.)


앞의 글에서 설명한 대화의 3가지 원형은 아래과 같았다.

(대화편 전반구 글 링크: "'대화의 3가지 원형'을 알면 대화가 보인다")


1 원형. 자기 이야기만 한다.
2 원형.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이야기만 한다.
3 원형.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상대와 이야기한다.


이 글에서는 제대로 된 대화법인 '3 원형'에 대한 구체적 방법론을 설명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방법론 이외에도 얼마든지 상대와의 대화를 위한 방법론들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는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한 가지를 집중적으로 말하고자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에선 너와 내가 '따로인 둘'이 아니라 '극성이 둘인 하나'인 관점이 선명할 수록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든 너든 하나의 극성만이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 그 새로운 하나를 온전히 만들기 위해서 대화를 하는.  


(# 참고: 다른 방법론이라면 가령 다음과 같은 것이다. '생각이 아닌 감정 느끼기 대화법'이 가능하다. 우리는 대화를 나눌 때 대부분 '생각'을 말하고 듣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일상의 많은 대화에서 말하는 이는 자신의 '감정'을 나누고자 하는 게 더 크다. 이 간과되는 부분을 보는 것이다. 또 '본래 욕구 느끼고 말하기'도 좋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나 자신의 본래 욕구가 무엇인지 모르고 엉뚱한 걸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상대방의 본래 욕구도 내가 능동적으로 느끼고 알아주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혹은 앞서 글에서 잠깐 언급했던 '비폭력 대화(NVC)'도 아주 체계적이고 좋은 방법론이다. 이 글에서는 말하는 건 또 하나의 효율적인 방법론이 되겠다)





'3 원형'의 구체적 방법론
: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허용 후 활용'해서 상대와 이야기한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사실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가다 보니 뜻하지 않게 긴 여정이 되어 버렸다. 대화란 게 그런 것이다. 결코 간단치 않은 소재이다. 제대로 써 보려면 최소 책 한 권 정도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 글에서 아무리 최소한으로 다루려 해도 벌써 이렇게 길어져 버린다.(그래서 글의 전반부를 '대화의 3가지 원형'편으로 해서 둘로 나누었다)


'3 원형'을 밝혀 본 것으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했지만 어느 영역이든 완성을 위해서는 구체적 스킬이 필수이다. 여기 나오는 것은 기본 스킬이고 핵심 스킬이다. 테크닉이다. 그 어떤 대화법이 되었든 결국은 이 흐름으로 가게 된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그 구체적 방법은 바로 '허용 후 활용'이다.

나눠서 이야기하면 '허용'과 '활용'이다.


어떤 대화든 상대방이 한 말을 먼저 '허용'하고, 그리고 다시 그것을 '활용'해서 내가 말을 하는 것이다. 서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누구든 할 수 있는 이가 먼저 하면 좋다. 때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상대도 점점 따라오게 되어있다.(물론 눈치 없는 사람은 상대가 자기 이야기를 받아주면 끝없이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런 경우에조차 계속 허용만 하고 듣기만 하라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대화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다. 그럴 때 정중히 '말을 주기만 하지 말고 말을 나누자'고 전해 주어야 한다)


'허용'은, 대화에서 상대가 무엇을 이야기 하든 글자 그대로 다 허용하는 것을 말한다. 우선 내가 마음에서 받아줘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많이들 오해 하거나 헷갈려한다. 이것을 마치 내가 상대방이 말한 것을 찬성하거나 좋아하지도 않는데 억지로 찬성하고 좋아하라는 것으로 여긴다. 아니다, 그런 게 결코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대화에서는 두 사람 모두 살아야 한다. 나만 살거나 너만 살아서는 온전한 대화가 안된다. 일방적이 되면 일단 한 사람이 먼저 죽고 결국 둘 다 죽는다. 그런데 내가 상대의 말에 반대하고 싫어하는데 억지로 찬성하고 좋아하라는 것은 나를 죽이라는 말이므로 그건 명백히 아니다.




'허용'하라는 말은 무엇인가?


바로 '너라면 그런 느낌, 생각, 말, 행동을 할 수 있겠다'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내가 찬성하든 반대하든, 내가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건 너의 말이고, 너의 자유이고, 너의 고유성이고, 너의 입장이니 너라면 그래 그럴 수 있겠다'라고 쿨하게 허용해 주는 것이다. 그 말의 존재를 말이다. 그냥 받아 주는 것이고, 그냥 인정해 주는 것이고, 그냥 허락해 주는 것이다. 상대의 상태, 존재 그 자체를 말이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허용하는 척'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그런 건 다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오히려 상대들은 그걸 눈치챈다. 서로가 눈치챈다. 인간에겐 그런 감이 있다. 그러면 부작용만 있을 뿐이다. 물론 처음에 온전히 허용하는 게 좀 힘들 때는 훈련 삼아, 연습 삼아 '허용하는 척'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 처음엔 의도적으로 하자. 그러나 계속 그렇게 가면 안 된다. 결국 한계에 부딪히고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어느 때부터는 제대로 허용해 주어야 한다.


일단 이 '허용' 가장 핵심이다. 서로 이게 되어야 이제 '진짜 대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서로의 말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마음에서. 필요하면 같이 느껴주고, 같이 생각해 주는 것이다. 같이 행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것이 구체적인 기법으로는 '백트레킹(Backtracking, NLP에서), 추임새, 말 따라 하기, 메아리, 페이싱'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근본 기제가 '허용'임을 알아채는 게 중요하다.


가장 기초적인 방법은 상대가 한 단어나 문장을 내가 그대로 따라 해 주는 것이다. 기초 기법이지만 상당히 고급 기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종종 이 '허용'을 '그냥 말 따라 하기'로 오해하기도 한다. 기법으로 배울 때 그렇다. 하지만 말 따라 하기는 '허용'의 가장 단편적인 부분일 뿐이다. 핵심은 상대의 말을 따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다. 그렇게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이 내가 내 마음에서 상대의 말, 상대를 허용하느냐 하지 않느냐이다.


애초에 이 '허용'이 없으면 사실상 대화는 더 이상 의미 있게 진행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대화란 서로가 서로의 말을 듣고 받아서 그에 대해서 또 나의 말을 하는 식으로 나누는 것인데, 서로가 서로의 말을 허용해 주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방이 내가 생각하기엔 별 것 아닌 일로 고민한다고 하자. 그걸 나에게 토로하는 경우다. 그럼 보통 우리는 자칫 섣부른 위로 혹은 조언이나 충고 등을 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 상대가 원하는 것은 그런 위로나 조언이나 충고가 아니다. 사실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말을 할 때 가장 원하는 것은 '동조'이다. 다른 말로 하면 '그냥 같이 느껴 줌'이다. 그런데 이 동조가 가만 보면 '허용'이다. 그리고 '공감'이기도 하다. '있는 그대로 허용함, 허락함, 인정함, 내버려 둠, 받아 줌'이다.


그래서 뭔가 위로, 조언, 충고하고 싶은 마음을 멈추고 그냥 "그래, 그게 네 고민이구나. 그래 너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지"라고 해 주는 것이다. 물론 항상 이렇게 길게 말하는 건 아니고 실제로는 "그래, 그거 고민되겠다 야", "그래, 그거 힘들겠다", "어휴, 많이 힘들지" 등이 되겠다.


심지어 상대방의 그 고민이 내가 전혀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럴 때 '허용'을 하는 내 맘속의 전체 생각을 쓰면 다음과 같다. '나는 솔직히 너의 고민이 이해가 안 돼. 나라면 그건 고민이 안 돼. 그건 그냥 이렇게 저렇게 하면서 넘어갈 수 있어. 왜 그걸 고민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내 관점, 내 입장이고. 너는 너의 입장, 상황, 이유, 환경이 있을 수 있느니, 지금 네가 그게 고민이라면 그러면 고민이 될 수 있겠다. 그리고 힘들 수 있겠다. 내 고민은 아니지만 너의 고민은 될 수 있겠다'이다. 고민만이 아니다. 슬픔, 분노, 외로움, 당황함, 위축, 즐거움, 기쁨, 행복 등 모든 게 그렇다. 감정만이 아니라 가치관, 신념, 윤리관, 종교, 철학, 인간관, 세계관 등이 모두 해당된다.


이런 마인드가 진짜 제대로 된 '허용의 마인드'인 것이다. 그런데 '허용'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렇게 마음에서 허용을 한다고 해서 내가 가만히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 허용이 제대로 된 상태에서 이제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이다. 즈가 '나도 허용해 주는 것'이다. '어, 그러면 평소에 우리가 조언하고 충고하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르지?'라고 할 수 있다. 다른다. 아주 다르다. 아니, 다르게 된다.


허용이 온전히 일어나면 일어날수록 내가 이전과 같이 함부로 조언이나 충고 등을 하지 않게 된다. 혹은 조언이나 충고를 하더라도 뭔가 표현이 달라지고 내 마음의 느낌이 달라진다. 뭔가 좀 더 공감의 마음에서, 동조의 마음에서 좀 더 여유롭게, 이해하는 식으로 하게 된다. 물론 훈련과 경험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점점 그렇게 된다. 그리고 상대도 그걸 느낀다. 그래서 대화가 더욱더 유연하고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말이다. 처음엔 잘 안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면 점점 더 그렇게 된다. 이것은 처음에 바로 된다기 보다도 꾸준히 실제 하다 보면 저절로 경험하게 되고 변하게 된다.


"만약 내가 상대의 말에 반대하거나, 무관심하거나, 화가 나거나, 상처를 받거나 하는 경우는 어떡하나요? 그래도 여전히 다 허용하면서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라고 또 질문할 수 있다.


아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마음에서 그리고 실제 말에서 '허용'이 있는 상태에서, 이제 나도 내 이야기를 최대한 지혜롭게 하는 것이다. 때론 있는 그대로, 때론 조금 조절해서 상황에 맞게 말이다. 그리고 상대도 이제 나를, 내 말을 '허용'해 주는 것이다. 서로가 그런 것이다.


상대를 허용하고, 동시에 나도 허용하는 것이다. 보통 이것을 어려워하는 이유는 이게 모순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아니다, '동시 허용'이 가능하다. 어쩌면 이것을 눈치채는 게 가장 중요할 수도 있다.


일단 마음에서 허용된 후에는 이제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상대의 말에 반대이면 맹렬히 반대하자.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좋으면 칭찬과 격려도 하는 것이다. 또 심심하면 심심하다고 한다. 허용의 바탕 위헤서, 그렇게 말 해도 서로 또 허용해 주면서, 받아주면서 상대의 이야기를 하고 또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같은 과정을 거쳐도 허용이 바탕에 깔려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혹 이렇게 하면 대화가 되겠냐고 물을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그냥 맨 서로의 이야기만 하다 끝나는 게 아니냐고. 오히려 반대다. 그냥 '1 원형'이나 '2 원형'처럼(전반부 글에서 설명함) 하면 서로의 이야기만 하다 끝난다. 그러나 '허용'을 기반으로 해서, 서로의 이야기를 하면 이제 계속 새로운 것이 나온다. 새로운 해결책이 나오고, 새로운 가능성이 계속 나온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이것은 실제 대화를 통해 체험적으로 경험해야 한다. 그러면 그 파워를 알게 된다. 그래서 글의 제일 앞에 '실제 훈련, 연습'이 중요하다고 했던 것이다.




진정한 대화의 목적
: '무슨 표현을 해도 괜찮고, 무슨 표현을 들어도 괜찮기'


보통 대화나 표현에 있어서 우리는 '무슨 말은 하면 안 되고, 무슨 말은 들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많이 접근한다. 그래서 자꾸만 말과 표현에서 스스로 검열하거나 통제하게 되고 상대가 하는 말과 표현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려 한다.


그러나 대화의 진정한 목적은 아무 감정도 없고, 무덤덤하다가 아니라 '어떤 감정이 들어도 괜찮기'이다. 당연히 우리는 어떤 표현을 들으면 부담이 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또 내가 어떤 말을 할 때도 이런저런 감정,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괜찮다는 것이다. 본래 대화란 게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격한 감정이 없어야 하고 충돌 등이 없어야 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의해 그런 것이 발생하더라도 그 자체가 괜찮은 것이다. 여하 간의 변화무쌍함을 기꺼이 경험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든 상대든 '무슨 표현을 해도 괜찮기'이다.


자기만 말을 해야 하고, 자기 권위만 세우고, 자기만 주도하겠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잘 못하는 사람들은 얼핏 보면 거만한 듯하고 강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아주 약한 것이다. 그 마음과 심리가 말이다. 자존감과 주체감이. 그래서 타인이 조금만 말을 하면 그걸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여기거나, 저항으로 여긴다. 그리고 자기를 반대한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평소 훈련이, 경험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재벌 2, 3세들 중 일부 인물이나 기업체 오너들 그리고 건물주 등등의 소위 '갑질'도 사실은 그들이 인간적으로 무척 약하기에 벌어지는 일이다. 인간 사이의 대화와 관계에서의 그 자연스러운 상황들과 현상을 마음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불쌍한 일이다. 그리고 타인에겐 고통을 준다.


'허용'은, 사실 내가 듣기에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 모두 해당된다. 즉 누가 나에게 칭찬을 할 때도, 그가 그런 느낌과 생각이 있어서 그걸 표현한 것이므로 나는 그냥 허락해 주는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말이다. 굳이 그걸 거부하거나 혹은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냥 저 사람은 날 좋게 봐주고 싶어 하고 칭찬하고 싶어 하니 그 마음을 이해해 주고받아주는 것이다. 나를 칭찬하는 상대방의 본래 마음도 사실은 자신의 그렇게 감탄하는 그 마음을 내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걸 잘 느껴주고, 알아주고, 인정해 주고, 받아주면 된다. 그리고 나는 그냥 내 할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칭찬, 칭송, 열광을 받으면 너무 흥분하거나 매몰되기도 하는데 굳이 그럴 것까진 없는 것이다. 그건 그들의 몫이고 그들의 일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두고, 원하는 것을 주고 나는 나의 일을 하면 된다.  


역으로 나에 대한 부정적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그 사람이 나를 혐오하거나 했다고 해서 내가 그런 존재가 되는 게 아니다. 그냥 '그 사람의 느낌과 생각과 판단'일뿐이다. 근데 나도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혐오할 수 있듯이 그에게도 그럴 자유는 기본적으로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게 당연히 싫지만 내가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한다고 해서 그 사람의 마음에서 그게 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겉으로 안 그런 척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므로 그냥 "아, 당신의 느낌과 생각, 판단은 그렇군요. 뭐 나는 그렇지 않지만 그리고 그런 게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당신 것이니까 당신 자유입니다. 자유롭게 하세요"하고 허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하라는 게 물론 아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지는 것이다. 그 사람이 표현하는 혐오가 나의 존재성을 결정하는 게 전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고 나서 이 바탕 위에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표현들, 행동들은 또 다 하는 것이다. 그게 오해나 누명이면 하지 말라고 하고 틀렸다고 한다. 그 말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고, 착오가 있으면 풀어 줄 수도 있고, 나도 같이 상대에게 대거리로 뭐라 할 수도 있다. 완전 자유다. 다만 마음에 허용은 깔려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활용'에 대해서 보자


여기서 말하는 활용은, 대화를 좀 더 풍부하게 하고 다이내믹하게 만드는 기법이다. '무엇'을 활용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냐면, 바로 '상대가 말한 것'이다. 즉, 앞에서 허용으로 받아들인 상대의 말을 내가 '활용'해서 대화를 하는 것이다.


보통 대화에서는 꼭 이 활용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잘 이용하면 좋다. 특히 내가 반대하거나 싫어하는 것, 내가 당황해하는 것 등을 상대가 말했을 때 그것을 일단 '허용'한 후에, 다시 '활용'해서 되돌려 주거나 대화를 진행할 때 아주 유용하다.


일반적인 경우는 이렇다. 상대와 내가 대화를 한다. 상대가 어제 본 영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 나는 그의 이야기를 그대로 '허용'한 후에, 이제 그 영화 이야기를 '활용'해서 상대에게 질문이나 감탄, 놀람, 의문 등으로 되돌려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면 대화가 아주 매끄럽게 진행된다. 물론 내가 필요하면 또 내 이야기를 하면 된다. 많은 경우 이 정도로만 대화해 주어도 좋은 대화의 상대가 되어 줄 수 있다. 그냥 내 이야기만 하려고 하면 소재가 딸리 수도 있고 또 상대와 함께 나누기에 파워가 약할 수 있다. 그럴 때 상대가 한 말들, 상대의 느낌과 생각, 행동 등을 허용한 후에 그것을 다시 활용하여 내 말속에 넣어서 말을 하면 아주 유용한 방법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우리가 실제 활용할 것은 상대의 모든 것이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대화를 하려면 좀 더 구체적인 소재와 주제가 필요하므로 그것을 상대가 말한 것으로 하는 것이다.


만약 상대방이 나를 비난한다고 하자. 그러면 그 비난을 일단 '허용'한 후에, 이제 그 비난을 '활용'해서 나의 말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상대의 말을 활용하지 않고 바로 나의 반론, 주장, 화제, 소재, 주제를 바로 이야기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제 대화가 끊어지게 된다. 특히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만 하는 식으로 들어가면 더 그렇다.


주의해야 할 것은, '활용'한다는 것이 무조건 상대방이 이야기한 것만 중심으로 하라는 게 아니다. 물론 상대의 말을 계속 중심으로 두고 활용해서 대화를 할 수도 있다. 필요하면 그렇게 하자. 그런데 대화는 '내 이야기'도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럴 때 상대방의 것을 활용해서 내 이야기를 하면 훨씬 더 대화가 매끄럽고 우호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점이 있다. 하나는, 내가 상대방의 이야기와 상대방 자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또 더 이해하게 된다. 일단 활용을 위해 상대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부분이 가장 크다. 둘은, 상대방도 계속 나와의 유대감이나 우호감을 더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계속 자기의 관심사 혹은 자기와 관련된 것이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상대가 말한 것과 관계가 없을 때도 이 활용을 통해 연결을 시키며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면 주제 전환도 아주 부드럽게 되는 효과가 있다. 혹은 내 주장이 상대의 주장과 반대의 것일 때도 상대의 것을 활용하면 아주 유연하게 연결되게도 된다. 토론이나 논쟁, 설득 등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될 기법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활용은 꼭 이러한 목적으로만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공감과 허용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꼭 내 주장, 설득만 성공시키려는 게 아니라 너와 나 공동의 해법을 찾는 과정이라고 하는 게 더 맞다. 본래 대화의 목적이 그런 것이다. 공동의 것을 완성시켜 나가는 것.


허용과 활용 기법은 그를 위한 유용한 도구인 것이다.


(참고: 대화편 전반부 글 링크: "'대화의 3가지 원형'을 알면 대화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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