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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May 18. 2016

삶을 완성하는 세 기둥: 힘, 지혜, 사랑

세 가지 모두 동일하게 중요하다

사람과 삶을 구성하는 요소는 여러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중에 아래 세 가지로 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힘, 지혜, 사랑이다.


사람들은 보통 하나나 두 가지 요소 정도만으로 삶을 보곤 한다. 그러면 아무대로 간과된 요소들 때문에 뭔가 힘들어진다. 혹은 본인은 만족될지 몰라도 주위가 힘들어진다. 자신만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서라도 여러 요소를 고루 챙기는 것이 필요하다. 이 경우엔 세 가지이다. 의자가 제대로 서기 위해 최소 세 개의 다리가 필요하듯.





힘은, 아주 실용적인 요소이다. 물리적인 신체의 힘도 되겠고 정신적이거나 심리적인 힘도 되겠다. 생명력 같은 것도 가능하다. 생명체가 잘 살아가려면 어쨌든 힘이 있어야 한다. 인간의 경우라면 사회적인 힘도 있다. 경제적인 힘, 지식적인 힘, 권력적인 힘.


그런데 한국 사회는 이 '힘의 요소'가 지나치게 사용되고 있다. 사실 후진적인 사회일수록 그런 측면이 있게 마련이다. 지혜나 사랑 등의 다른 요소가 아직 온전히 기능하지 못하기에 개인이든 집단이든 힘에만 너무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여러 부작용이 일어난다. 물론 지혜와 사랑의 경우도 너무 그 하나만 의존하면 문제가 발생하는 건 마찬가지다.


힘만을 의존하거나 지나치게 중독된 경우의 폐해는 그것이 지혜와 사랑 없이 행해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무엇을 할 수 있는 힘은 있지만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의 지혜가, 누굴 위해 사용해야 할 지에 대한 사랑이 없다. 그래서 힘의 남용과 오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지혜가 없는 힘은 '비효율적으로' 사용된다. 개인과 집단이 모두 해당된다. 이왕 가지게 된 힘을 좀 더 유용하게, 효율적으로, 단기와 장기적으로 모두, 자기와 타인에 모두 좋게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이 분명 있는데 모르기에 할 수가 없다. 물론 때로는 앎에도 불구하고 자기 욕심과 욕망 때문에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큰 이유는 역시 '모르기' 때문이다. 혹은 아주 피상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사랑이 없는 힘은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사용된다. 문제는 인간이란 게 자기만으로 존재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철학적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면 '개체'와 '개인'이라는 것도 하나의 설정이지 절대적인 게 아닌 측면도 있다. 타인이 배려되지 않고 남용된 힘에 의해 당장 자기 한 몸과 자기 집단은 뭔가 이득을 얻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전체'의 고통과 희생으로 되돌아 온다. 시야가 좁고 인식이 짧아서 그걸 미처 못 보는 것일 뿐이다. 결국 온다. 그런데 그렇게 인과과 되돌아와도 왜 그런 결과가 오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또 엉뚱한 해석을 하고 대처를 하게 된다.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힘의 결과는 이렇게 무섭고 혼란스럽다.


힘에 더해 사랑은 있는데 지혜가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그 좋은 요소가 잘못 사용된다. 힘은 맹목적으로 사용된다. 분명 더 적절한 방법, 더 지혜로운 방법이 있는 데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다. 잘못하면 사랑이라는 요소가 힘의 잘못된 사용의 정당화 근거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만이 아니다. 자신이 목표로 하는 모든 대상이 해당된다. 물건, 성취, 성공, 완성, 신념, 종교, 윤리, 철학. 자신이 사랑을 쓰는 게 아니라 사랑에 지배당한다. 그래서 지혜가 필요하다.


힘에 더해 지혜는 있는데 사랑이 없는 경우도 심각하다. 갈수록 양극화가 심화되는 현대 자본주의 흐름이 대표적이다. 힘도 있고 머리도 좋은데 타인과 세상은 안중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하면 더 큰 이득, 이익, 힘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는 있다. 이럴 땐 오히려 지혜가 '독'이 되는 것이다. 자기는 좋다고 맘껏 사용하지만 궁극적으론 자기와 타인과 세상 모두를 죽이는 독이 된다.


그러므로, 만약 힘은 충분히 존재하는데 혹은 힘에서 모자라진 않는데 지혜나 사랑이 부족한 경우는 이들을 적절하게 채워줘야 한다. 자라는 아이들이든 다 자란 성인들이든 모두 말이다. 자기든 타인이든 모두.


의도적으로 힘 외의 두 요소에 대해 알려 주는 것도 좋다. 혹은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다. 힘도 좋지만, 그것도 필수 요소임은 맞지만 그것만으론 온전히 살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힘을 잘 사용할 수 있는 지혜와, 누구를 위해 사용해야 할지 알려주는 사랑이 있어야 '힘이 넘치는' 본인에게도 좋다는 것을.




지혜


모든 종류의 지혜이겠다. 인간이 가진 모든 앎과 지식, 정보, 학문. 그리고 머리 좋음. 이제 인공 지능의 시대가 오면 이 지혜의 요소의 비중은 더 커지겠다. 그러나 지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힘과 사랑이 필요하다. 건물이 세워지기 위해 최소 3 개의 기둥이 필요하듯.


힘이 없는 지혜는, 일단 실현이 안 된다. 아무리 좋은 것을 떠올릴 수 있어요 그것을 만들 실제 힘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래서 많이 안타깝기도 할 것이다. 이미 알고 있기에 그 아는 것만 실현하면 되는데. 하지만 지혜와 같이 힘도 엄연히 존재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힘없음을 한탄만 하고 있어선 힘이 생길 수가 없다. 답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힘을 키우는 것'이다.


혹은 '힘을 이용하는 지혜'를 발휘할 수 있다. 직접 힘을 만들거나 키우는 것이 힘들다면 이미 존재하고 있는 힘을 잘 가져오고, 잘 활용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협력'이기도 하다. 힘과 힘을 연결하고 사용할 수도 있고, 힘과 지혜를 연결할 수도 있다. 물론 지혜와 지혜를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랑이 없는 지혜는, 차라리 없는 게 낫기까지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자기'만을 위하게 되는데, 결국은 타인과 전체에 해롭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도 엄연히 지켜야 하고 살려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우선 자기부터 많이 키우고 확장하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최대한 자기를 키우고, 살리고, 강화하고, 확장하다. 하지만 그것만 해서는 안된다.


사랑은, 거창하거나 추상적인 무엇이 아니다. 그냥 '나 이외의 존재들을 함께 생각함'이다. 이 사랑이 부족하면 결국 전체를 보지 못하고 자꾸만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나'란 결국 전체의 일부로 존재하기에 전체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나와 내 집단도 문제에 휘말려 들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랑이 없는 경우 이것을 보지 못한다. 보지 못하기에 없는 줄 안다. 어쩌면 사랑이 없기에 그와 연관해서 일어날 지혜마저 없게 된 격일 수 있다. 힘과 사랑과 지혜는 이렇게 서로 키우고 키움 받는 요소들이기도 한 것이다.


지혜에 더해 사랑은 있는데 힘은 없는 경우는, 사실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당사자도 그렇고 그걸 보는 사람도 그렇다. 그런데 아마 지혜와 사랑이 함께 상승 작용을 일으켜 힘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 경우에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조급함이겠다. 힘만 있으면 당장 모든 걸 할 수 있는데 단지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함에서 오는 조급함이다. 그러므로 인내와 여유가 필요하겠다. 그 바탕에서 천천히 실제의 힘을 키워가는 것이다.


지혜에 더해 힘이 있는데 사랑이 없는 경우는 어떨까?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런 경우는 위험하다. 자칫 타인과 사회와 세상에 고통을 주는 일을 잘 모르고 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세상에 대한 고려 없는 과학 기술 등의 발전도 여기 해당되겠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가. 그건 당연히 아니다. 지혜와 힘은 크면 클수록 인간에게 도움이 되므로 당연히 깊게 할수록, 크게 할수록 좋다. 과학의 기술의 발달은 인간에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고 있는가. 다만 그에 추가해서 사랑의 요소를, '타인과 전체를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의도적으로 말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해야 하고 서로 간에 주의를 주고 논의를 해야 한다.




사랑


앞서도 말했지만, 사랑은 뭔가 거창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에 대한 가장 넓은 정의는 앞서 말한 대로 '나 이외의 존재들을 함께 생각함'이다. 그렇게 함께 생각하면서 이제 여러 가지 후속적인 느낌, 생각, 행동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 모두를 포함해서 사랑이라 할 수 있겠다.


지혜가 없는 사랑은, 많은 괴로움을 만들어 낸다. 연인 간의 사랑도 그렇고 부모가 자녀에 대해 가지는 사랑도 그렇다. 사람만이 아니라 다른 대상에 대한 사랑도 같다. 우리는 사랑을 하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맹목적인 사랑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랑이 필요하다. 나만의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닌 나와 상대 모두를 위한.


힘이 없는 사랑은, 효과가 미약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사랑을 가지는 사람도 사랑을 받는 대상도 서로 미적지근할 수밖에 없다.


사랑에 더해 힘이 있는데 지혜가 없는 경우는 어떨까? 이 경우엔 맹목의 요소가 더 커진다. 혹은 혼돈이나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힘이 있기 때문에 뭔가를 하긴 하지만 유용한 효과가 없거나 아니함만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지혜를 갖추는 건 또한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기에 우리는 지혜 없이도 그냥 쉽게 쉽게 진행해 버리기를 원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행함에서 오는 심리적 만족은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은 후회를 가져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돌아서 가는 것이다. 얼핏 보기엔 지혜와 함께 가는 길이 돌아가는 것 같고 뭔가 지지부진한 듯도 보이지만 사실은 반대인 것이다. 가장 빠른 길이다. 지혜를 키워야 한다.


사랑에 더해 지혜가 있는데 힘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힘이 꼭 물리적 힘을 말하는 건 아니겠다. 마음의 힘, 의식과 정신의 힘일 수도 있다. 혹은 실행력, 추진력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꼭 사랑의 실천이 아니더라도 삶에서의 실행력 자체가 문제가 된다. 외부적 힘이 없는 상태에서 뭔가를 새롭게 구축하려 할  물리적 시간이나 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내면의 힘들은 좀 다르다. 이 경우엔 통찰과 자각, 인식의 힘이 크다. 혹은 '무의식의 의식화'의 힘도 있다. 심리적 치유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 경우엔 자신의 내면의 힘을 빼앗는 원인들을 찾아서 해소해야 한다.




사랑, 지혜, 힘
: 사회적 사례


가령, 얼마 전에 유럽에서는 시리아 등 내전에 의해 자국을 탈출한 난민들이 대거 이동하는 일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유럽 각 국들의 대응은 사뭇 달랐다.


어떤 나라는 노골적으로 난민을 거부하겠다고 표방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반면에 어떤 나라는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각 나라마다, 사회마다 나름의 입장과 상황이 있기에 그런 다른 대책과 정책이 있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핵심은, 어느 경우든 자신의 상황에 맞추어 최대한 사랑과 지혜와 힘의 요소를 모두 사용해서 대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난민을 받지 않기도 했다면 받지 않는 상황에서, 받기로 했다면 받는 상황에서 말이다.


받지 않는 경우는 사실 상황이 조금 단순하다 할 수 있다. 잘 막기만 하면 되고 들어와도 추방하면 되기 때문이다.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한 국가와 사회는 이제 사랑과 지혜와 힘을 최대한 사용해서 상황을 진행시켜야 했다.


독일 등이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경우였다. 이때 내외의 많은 이들이 걱정을 했다. 그렇게 받아들인 난민들로 인해 일어날 후속 문제들 때문이었다. 이것은 일면 타당한 걱정이다. 난민들에 대한 거처와 경제적 지원, 정착 후의 정책 등이 간단치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착 중과 후에 자국 지역민들과의 조화와 융합도 긴 시간을 통해 주의 깊게 진행해야 한다.


그런 것들보다 더 직접적인 위협은, 난민들 속에 섞여 들어올 수도 있는 테러범들이었다. 이 경우엔 아주 직접적인 위험 요소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난민들이 지역 사회에서 일으킬 수 있는 여러 범죄나 지역민들 혹은 극우주의자들과의 충돌 등도 고려 요소이다.


실제 그 후 프랑스에서 큰 테러 사건이 있었다. 테러범들이 난민들 중에서 나왔다는 뉴스들이 있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연말의 명절 행사에서 일단의 난민 남성들이 해당 지역 여성들을 성폭해, 성희롱 한 사건도 있었다.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던 이들은 "그것 보라. 이런 위험이 있으니 반대가 맞았다. 저들을 받지 말아야 했다. 왜 착한 척하느라, 부질없는 자비를 베푸느라 받아들여서 이렇게 테러가 나고 무고한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라고 의기양양 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당사국들의 대처는 달랐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그런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난민들 전체를 혐오하거나, 공격하건, 난민의 정착을 되돌리거나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 하고 있다. 즉 사랑과 지혜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이게 맞다.


비록 개인적인 게  아닌 국제 정세, 국제 정치적인 경우이지만 충분히 '사랑과 지혜와 힘'의 삶의 세 기둥에 대한 사례가 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의 요소가 없다면 그냥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추가로 할 일도 없다. 그러나 좀 더 성숙한 관점에서 보자면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대응이 아니다. 가설이지만, 프랑스나 독일 등의 국가도 위기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자연 재해든 핵 발전소 등의 사고이든 여하튼 큰 일이 벌어지는 경우 등을 가정해 보는 것이다. 그럴 때 이들 나라에서 난민이 발생한다면 이웃 국들이 어떻게 해 주기를 바랄까? 물론 해당 국가들에서 그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실제로는 낮다. 그러나 '난민의 받아들임' 여부에 대한 보편적 타당성 등을 논할 땐 이런 가정이 충분히 사유의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말했지만, 성숙한 결정으로 난민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때 이제 지혜와 힘의 요소를 함께 준비해야 한다. 그냥 받아들임으로만 끝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을 선택하지 않는 것보다 분명 더 힘들고 복잡한 일임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더 용기 있고 타당인 일임도 분명하다.


그리고 이제 그렇게 사랑을 선택한 후에는, 난민을 받아들이면서 그리고 받아들인 후에 있을 모든 상황과 과정에 대한 지혜와 힘을 발동시켜야 한다. 혹시 있을 지도 모르는 여러 사태, 난관, 여지, 충돌 등을 최대한 예방하거나 처리하기 위한 사전 정책과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다. 즉 지혜다.


그리고 힘의 요소도 필요하다. 테러와 지역민들과의 충돌 등 실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최대한 지혜롭게 대응하고 처리하면서도 이제 그러한 사태가 난민들에 대한 혐오 운동, 극우들의 폭력 대응, 지역 사회의 분열 등이 일어나지 않게 '건강한 힘'을 발동해야 한다. 그래서 사랑과 지혜를 더욱 강하게 표방하고 실천해야 한다. 실제 몇 유럽 국가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그렇게 했고 할 것이다.


물론 각 국의 난민 정책이 모두 좋게만 진행되고 또 성공적으로만 진행되고 있진 않을 것이다. 여러 현실적 어려움과 고통들이 있을 것이다. 애초의 의지대로 결코 쉽게만 진행되진 않겠지만 나름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 지혜, 힘
: 개인


개인의 경우도 같다.


때론 어려운 상황에서 사랑을 선택한 후에 이제 추가로 지혜와 힘으로 최대한 노력을 해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혹은 그러한 노력이 힘들기에 애초에 사랑을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혜와 힘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각각을 선택하면서, 이제 그 선택한 요소만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고 완성하기 위해 다른 두 요소도 애써서 확대하고 강화시키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차이는 이렇겠다. 애초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일단 편안함은 확보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체가 될 것이다. 멈춤이 될 것이다. 더 이상의 성장과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좋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만약 성장과 변화를 원한다면 용기를 내어 선택을 할 수 있다. 일단 선택을 했다면 세 가지 요소 모두를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꼭 그런 선택의 상황이 아닌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각자에 따라 누구는 사랑을, 누구는 지혜를, 누구는 힘을 가진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미 가진 혹은 쉽게 가진 요소만을 의지하고 다른 요소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면 이제 본인도 점점 힘들어지고 주위도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항상 사랑과 지혜와 힘, 이 세 가지 요소 중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고, 강화시키고,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이렇게 할 때 결국 주위 사람들과 세상도 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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