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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Dec 26. 2016

내가 나를 무엇이라 여기든, 나는 상관없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것은 다 한다.

내가 나를 대단하다 여기든

내가 나를 하찮다 여기든

내가 나를 좋게 여기든

내가 나를 싫게 여기든

내가 나를 좋지도, 싫지도 않게 여기든

모두 상관없다.

그리고 내가 해야 할 것은 다 한다.


왜냐하면 

내가 여기는, 내가 느끼는

그 어떤 '나'이든

그것은 '절대적인 나' 혹은 '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느끼는 것과 같다.


배우는,

위대한 어떤 인물을 맡을 수도

'지나가는 사람 1'을 맡을 수도

비극의 어떤 인물을 맡을 수도

심지어 아무 배역도 맡지 않을 수도 있다.


주의할 것은, 이 말이 

배역이 따로 있고

배우가 따로 있다는 말이 아니다.


상황과 경우에 따른 배역적인 측면이 있으되

그와 실시간으로 항상, 동시에

그 배역과 전혀, 아무 상관이 없이

내가 존재하는 측면이 있다는 말이다.


삶에서의 배역은, 

최선을 다 해 잘 맡아 주는 게 적절하다.

연극의 배역처럼 무조건 수동적으로

임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상황, 그 경우에서 

가장 적절하고, 유연하고, 지혜롭게

관계와 상황에 임하고 

능동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


그럼 그 배역을 연기하는 이는 누구인가?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


따로 '연기하는 이'는 없다.

오직 모든 배역을 기꺼이 맡아

그 배역을 통해 드러나는 '무엇'이 있을 뿐이다.


그는,

그것은,

어떤 배역으로도 한정되지 않는다.


존재와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는

어떤 식이든 배역을 맡게 되지만

그는, 그것은 

어떤 배역이든 배역 그 자체가 아니다.


/


인간의 기준으로서의 삶,

인간의 기준으로서의 존재, 

인간의 기준에 따른 세상과 우주.


'인간'이라는 이 임시적, 인위적, 가상적 존재성이 

무대이자, 소품이자, 배역이다.


우리는, 

나(라고 할 만한 무엇)는,

배역만 아닐 뿐만 아니라

무대도, 조명도, 소품만도 아니다.

시나리오도, 감독도, 스탭만도 아니다.

관객만도 아니다. 

무대만도 아니다.

무대 밖만도 아니다.


우리는, 

나(라고 할 만한 무엇)는,

그 모든 것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이다.


/


삶과 존재성은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나오는

무대 위 작품인 셈인데,

잠시 스크린에 맺혔다 사라지는 

하나의 영상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절대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허무의 것도 아니다.

절대와 허무 등의 한정과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풍차를 돌리는 바람처럼, 

물레를 돌리는 물처럼,

물을 끓이는 불처럼 

자연으로서 존재하며

자연으로서 기능하는 것.


우리는, 

나(라고 할 만한 무엇)는

이 모든 공간 자체이자,

이 모든 나고 스러짐 자체이자,

배경 자체이자, 

비었지만 꽉 찬 허공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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