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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루 MuRu Oct 27. 2015

공감을 위해 감정의 쓰레기통이 될 필요는 없다

억지로 상대방이 맞다고 하거나, 그의 기분을 받아 줄 필요도 없다

공감의 중요성을 많이 이야기한다. 그런데 제대로 공감해 주기는 쉽지 않다. 이론은 많지만 실제 공감은 힘들다. 그런데 항상 공감해 주는 것은 힘들지만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공감해 주는 건 우리에게 무척 필요한 일이다. 사실 공감은 아주 간단하다. 간단한데 몰라서 힘들어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상대에게 아주 쉽게, 제대로 공감하고 싶다면 여기 방법이 있다. 이제까지 들어왔던 공감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생각, 조언들은 이 순간 잠시 내려놓자. 그리고 정말 제대로 공감을 하고 싶다면 우선 출발은 이렇게 하자. 


상대방이 맞다거나, 상대방에 동의한다거나, 내 느낌을 포기하거나 무시하고 상대방의 느낌과 기분, 감정을 받아주거나 하지 마라.


그리고 단지 이렇게만 하라.


그냥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을 같이 느껴주기만 하라



말이 쉽지 그게 잘 되냐고 반론할 수 있다. 그런데 말만 쉬운 게 아니라 실제도 쉽다. 만약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제 아래의 설명들을 조금만 더 들어 보자. 그러면 더 도움이 될 것이다.(만약 그래도 잘 안된다면? 괜찮다. 공감 잘 안 되어도 괜찮다. 그와 관계 없이 잘 살면 된다. 이런 가벼운 마음이 좋다.)     


우선 주의할 것이 있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다. 이것은 실제 우리 인간의 마음이 움직이는 본래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 이전의 공감에 대한 많은 설명들은 무엇이었냐고? 그것들도 모두 이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사실 모두 맞는 설명이다. 다만 너무 돌아가거나 혹은 상세하게 보여 주려다 보니 좀 복잡해졌던 것이다. 또 웬만한 설명은 사실 꾸준하고 충실하게 실천하면 대부분 나름의 효과가 있다. 그러므로 공감에 대한 그 어떤 이론과 설명이든 모두 잘 읽고 듣고 또 실천해 보면 좋다.      


이 '아주 쉽게 제대로 공감해 주는 방법' 즉 '단지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을 같이 느껴주기'는, 실제 몇 번만 그 효과를 체험해 보면 하지 말래도 하게 된다. '같이 느껴주고, 그리고 마음이 풀어지는' 이 아주 자연스럽고 간단한 원리를 말이다. 처음에 잘 안 되더라도 실망 하지 말고 이후에 계속 반복해서 시도해 보면 된다. 사실은 인간이면 본래, 항상 다 하고 있는 건데 좀 무뎌져 있는 것일 뿐이다.      


'마음이 풀어지는' 부분은 같이 느껴주기가 잘 되면 될수록 저절로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오히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의무라기보다는 결과로써 자연스럽게 오는데, 그렇게 상대방의 마음 혹은 나의 마음이 저절로 풀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 더더욱 이 방법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이건 진짜 누구라도 경험할 수 있다.





공감을 어려워하는 이유
: 공감이 아닌 걸 공감으로 여김


그럼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것을 같이 느껴주기'를 조금 더 상세히 보자.     


글자 그대로 하면 된다. 그러므로 위 설명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었거나 무엇을 하면 되는지 알게 되었다면 그냥 해 보시라. 아마 이 글을 보고 바로 해 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직 충분히 익숙지 않을 때는 약간의 설명이 있으면 더 쉽게 할 수 있으므로 계속 글을 읽어 보자.     


우선 우리가 평소에 공감을  어려워하는 이유를  살펴보자. 일종의 오해 때문인데, 이것을 잘 이해하면 실제 공감이 더 쉬워진다.     


한마디로 공감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내가 상대방이 맞다고 해 줘야 할 것 같고, 상대방에게 무조건 동의해 줘야 할 것 같고, 내 느낌을 포기하거나 무시하고 무조건 상대방의 느낌을 받아줘야 할 것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분명히 말하건대 그런 건 공감이 아니다. 그러니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이다. 실제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각자는 엄연히 자신의 생각, 느낌, 의견, 감정, 옮고 그름이 있는데 어떻게 상대방의 것만 맞다고 해 줄 수 있는가.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설사 상대방은 살아날지 모르지만 내가 죽는다. 내가 죽으면 관계가 죽는 것이다. 공감은 그런 게 아니다. 공감은 상대방과 나, 둘 모두 살려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공감한다고 하면서 억지로 혹은 꺼림칙한 마음으로 상대방이 맞다거나, 옳다거나, 동의하거나, 상대방의 감정을 무조건 받아주거나, 내 느낌을 무시하거나 하지 말라. 상대방을 억지로 이해하려 하지도 마라.     


그런 건 나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거니와, 설사 상대방이 일순간 나의 그런 행동에 기분 좋아하거나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오래가지 않는다. 상대방도 나의 속마음을 금방 알고 느낀다. 혹은 그 자리에서 바로 선명히 느끼지 못하더라도 뭔가 꺼림칙함이  마음속에 남는다. 그래서 나중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나에게도 안 좋고 상대에게도 안 좋은 것이다.




그냥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것을 같이 느껴주라
: 잘 안되면? 심플하게 다음 기회로 넘기기


자, 이제 진짜 단계로 들어왔다.

그래서 상대방이 느끼고 있는 걸 같이 느껴주라고?

하지만 어떻게?


위에서도 말했지만, 본인의 느낌, 생각, 판단, 이해 등은 그대로 가지고 있으라. 바꾸거나 없앨 필요 없다. 그냥 그대로 다 가진 채로, 이제 그냥 상대방이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그것을 함께 느껴주는 것이다.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도 할 수 있지만, 그건 차후로 놓아두고 우선은 그냥 느끼는 것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 부담 없고 쉽다.     


이것은 본인이 느껴지는 것으로 그대로 해도 되고, 혹은 상대방에게 물어도 된다. "지금 어떤 기분이야?"는 식으로 간단하게 말이다. 이렇게 질문만 해도 엄청나게 달라진다. 그 전에는 상대의 기분을 전혀 모르거나 혹은 내가 짐작하긴 하지만 틀린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이렇게 질문해서 상대방의 기분을 직접 들으면 아주 손쉽게 알게 되는 것이다. 무슨 복잡하거나 어려운 과정이 전혀 필요 없다. 그냥 물으면 된다. 그리고 묻지 않아도 어느 정도 같이 느껴지면 또 그 느껴지는 것을 잘 느껴보면 된다.      


그런데 종종 이렇게 한다 해도 여전히 상대방의 느낌, 기분,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거나 짐작하지 못할 수 있다. 내가 느껴주는 게 잘 안되거나 혹은 질문을 해도 상대방이 대답을 잘 하지 않는 경우 등이다.      


그럴 땐 상상력을  발휘하면 된다. 만약 내가 상대의 입장에 있다면, 그래서 억울하거나 분하거나 슬프거나 우울한 그 상황에 있다면 느끼게 될 그 감정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냥 간단하게 '아, 내가 저 입장이라면 지금 어떤 기분일까?'고 해 보는 것이다. 내가 과거에 당했던 입장이나 처했던 상황과  그때의 감정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그 느낌, 감정,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방도 지금 이런 비슷한 느낌, 감정, 기분이겠구나 하고 알아채는 것이다.     


이런 상상의 힘은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래의 능력이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을 보면서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능력 때문이다. 그러니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냥 집중을 아직 잘 안 하고 있을 뿐이다. 아끼거나 친하거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하지 말라 해도 저절로 하게 되는 게 ‘같이 느껴주기’이다.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기본 기능이다.   

   

그래도 잘 안 된다구? 물론 그럴 수 있다. 이 부분도 어느 정도는 집중과 반복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단계대로 찬찬히 실행해 보면 그러면 어느 순간(어떤 경우는 처음부터) '아, 지금 너는 이렇게 느끼겠구나~!'하는 느낌이 오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사실 우리 인간이 느끼는 것은 정말 서로 비슷하기 때문이다.     


주의할 것은, 이것은 짐작이나 추측이라기보다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대로 영화, 드라마 등의 인물들의 감정, 느낌 등을 그냥 자연스럽게 느낄 때의 그것이다. 왜냐하면 짐작이나 추측으로 가면 제대로 느끼게 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통 나름대로 공감에 노력하는 이들 중에 '아, 왜 나는 공감하려고 애쓰는데 매번 틀리거나 잘못 짚지?'라고 자문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는 대부분 '실제 느낌' 보다는 섣부르게 생각으로 짐작하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기분과 감정, 느낌을 말이다.      


생각으로 하면 당연히 안 된다. 물론 어느 정도는 짐작, 추측이 있을 수 있다. 완전히 없어야 한다기 보다는 어느 정도는 생각으로 추측하더라도 핵심은 '느낌을 느끼는' 쪽으로 좀 더 집중 하라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큰 요령이다. 처음엔 '같이 느껴주기'로 하는 본인의 느낌과 상대의 실제 느낌이 좀 차이가 있더라도 실제 계속 연습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점점 잘 느껴진다. 그러므로 너무 걱정하지 말고 계속 해 보면 된다.      





“어, 해 봤는데 안 통해요!”


나름대로 공감 훈련을 한다고 하면서 책도 사서 보고, 프로그램도 참가하고, 대화법도 배우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처음엔 좀 되는 듯 싶다가 곧 벽에 부딪히는 경험을 하곤 한다. 이론대로라면 분명 뭔가 진전이 일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않는 것이다. 공감을 하는 나도 느낌이 별로이고 그리고 공감 받는 상대방도 반응이 별로 없거나 혹은 처음엔 반응이 있는 듯하다가 얼마못가 시큰둥해 진다.      


예로, 어느 남편이 회사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공감법'을 하나 배운 경우를 들어 보자. 그 기법이 말하는 즉슨, '상대방의 말을 따라해 보라'는 것이다. 보통 백트레킹(backtracking)이라 하거나 혹은 따라 하기, 추임새 혹은 맞장구 기법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집에 와서 아내와의 대화에 사용해 보니 와, 정말 뭔가 되는 듯 하다. 내가 자신의 말을 따라해 주기만 하는데도 아내는 뭔가 자신이 공감을 받는 듯 느껴지는 지 막 신나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계속 그 방법으로 여러 날 대화를 하는 중에 점점 아내의 반응이 떨어지는 게 보인다. 급기야 어느 날 아내가 열심히 호응해주는 남편에게 이런다. "말로만?"     


물론 가벼운 하나의 예이지만 이것은 실제 어느 분의 경험담이기도 했다. 자, 나는 기법대로 잘 했는데 뭐가 문제일까?     


이럴 때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 가슴에서 상대방의 지금 느낌이 실제로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나도 별 감흥이 없고, 상대방도 그런 것이다. 그러면서 그냥 기계적으로 기법만 사용한 것이다. 물론 이 정도로도 충분히 훌륭하다. 기법만 사용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훌륭하고 유용하고 장하다. 그러므로 할 수 있다면 열심히 해 보자.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가 건성으로 혹은 전략적으로 공감 기술 등을 사용할 때, 상대방은 잘 모르고 잘 못 느낄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은 의외로 예민하고 민감하고 또 지혜롭다. 어느 정도는 다 파악한다. 정확히 어떻게 파악하는 지를 이야기하는 건 현재로서는 힘들지만 여하튼 모종의 감각 기제는 있는 듯하다. 너의 심장이 진짜 나의 심장(느낌)을 같이 느끼고 있는 지 아닌 지에 대해서 말이다. 




회심의 한 방, ‘같이 느껴주기’


그런데 이럴 때 회심의 한 방이 바로 또 우리가 하려는 '같이 기'이기도 하다.


그냥 그가 느끼고 있을 듯한 그 감정, 기분을 같이 느껴줘 버리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처음에는 내가 느끼는 이것이 맞는 지 혹은 틀린 지 잘 모를 수도 있다. 느낌이 약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나의 생각만일 수도 있다. 처음의 짐작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 보면 마치 저쪽 자석의 움직임에 의한 자기장의 변화를 내가 느끼듯이 혹은 저쪽 진동자의 진동이 내게 느껴지듯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공명(共鳴)'이라고 표현할 만한 현상이기도 하다.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다. 인간이면 다 타고나는 것이다.     


혹은 이것은 마치 '같이 느껴주기 게임이나 놀이'와도 같다. 어떤 의무나 책임 그리고 공감 훈련 같은 게 아니라, 우리 인간은 서로가 서로의 가슴(느낌)을 본래 느낄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그리고 본래도 항상 느끼고 있고 설정하고 실제 해 보는 것이다. 너무 진지하거나 무겁게 말고 가벼운 놀이와 게임처럼 재미나게.     


보통 잘 못 느끼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느끼고 있는 그것에 주의하지 않고 집중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그의 생각, 느낌, 의견에 동의하거나 그가 맞다고 하거나 그의 기분을 무조건 받아 주거나 할 필요 없이, 그냥 내가 느끼는 그의 느낌에 내 주의를 조금 더 주는 것이다. 그러면 본래 느끼고 있는 그것을 다시 느낄 수 있다.




'마음의 풀어짐'


그러다가 어느 순간(혹은 처음에 바로) '아, 이 느낌, 이 기분, 이 감정이구나~!'하고 제대로 느껴지는 때가 올 수 있다. 물론 그런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그냥 계속 그렇게 같이 느껴주기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만으로도 모종의 보이지 않는 긍정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진짜 느껴지는 때가 오면 뭔가 묘한 감동을  맛보게 될 것이다. 체험자로서 이건 장담할 수 있다. 이미 그런 체험을 한 이들도 많다. 그러면 그 후부터는 훨씬 더 쉬워지고 자연스러워진다. 그리고 하지 말래도 상대방을 느끼고 싶어 지기도 한다. 물론 항상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가 원할 때 만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가 혹시 있을 수 있다. 나는 나름대로 상대방의 느낌 느껴주기를 맘속으로 하고 있는데, 상대방은 여전히 나에게 불만을 표시하거나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는다고 투정을 할 수도 있다. 그럴 땐 아마 우리는 '아, 지금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데 왜 저러지?'하면서 실망을 할 수도 있고 의욕이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 다시 보아야 할 것은, '같이 느껴주기'의 애초의 목적이 상대방의 이해나 감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게 결과로서 올 여지는 점점 많아지지만 일단은 그런 것와 상관없이 그냥 내가 느껴보는 것이 목적이자 결과다. 이런 마음을 확실히 하면 상대의 반응에 대한 나의 바램이 다스려지며 상대방의 반응이나 변화 등에 별로 영향 받지 않고 계속 느껴보기를 행할 수 있다. 그게 목표니까.      


그리고 이렇게 제대로, 같이 느끼게 되면  그다음 일어나는 신기한 일이 바로 '마음의 풀어짐'이다.     


내가 제대로 느끼면 상대방의 마음도 이상하게 자연스럽게 풀어진다. 이 경험도 정말 감동적인 경험이다. 심지어 그럴 때는 내가 미리 짐작되기도 한다. '아, 지금 내가 이것을 표현하면 저 사람 마음이 풀어지겠다'라고 말이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보이지 않는 공감이 실제 이루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과학적으로 이것이 어떻게 설명될 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내가 진심으로 상대의 기분과 감정, 느낌을 느껴줄 때 상대의 마음이 저절로 풀리는 현상이 말이다.      


물론 꼭 이 결과를 목표로 할 필요는 없다. 또 어떤 경우엔 '나는 정말 제대로 느끼는 것 같은데 왜 저 사람 마음은 안 풀어지는 거지?'라고 느낄 때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다만 ‘아직 좀 더 무르익어야 하나보다’라고 여유롭게 생각하면 된다. 그 결과에 개의치 않고 계속 본래 하던 '같이 느껴주기'를  계속하면 그러면 갈등이나 충돌, 다툼, 싸움의 상황들이 점점 더 부드럽게 풀려져 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같이 느끼기'는 그 자체가 목표이자 결과이므로 이를 통해 뭔가 인위적으로 바꾸려 하거나 하려고 하면 그건 또 하나의 장애물이 된다. 그러므로 지혜롭게, 가볍고 유연한 마음으로 하자.

 



'표현하기' 
: 이왕이면 내가 느낀 것을 직접 표현하자


내가 상대의 기분, 감정을 느끼는 것은 좋은데, 그러면 그냥 느끼기만 해야 하나?


아니다. 물론 우선은 느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얼마든지 내가 직접 말로 혹은 행동으로 외적인 표현을 적절히 해 주면 그 효과는 수 배가 된다. 그러므로 잘 표현하는 것도 필요하다.


가령,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도 그의 느낌, 기분, 감정을 느끼면서,


"그래. 지금 너 기분이 ~하겠네."

"지금 너 ~한 기분이지?"

"정말 미안해. 지금 너 기분 ~건데 내가 잘 몰랐네." 

“이제는 네 기분이 ~한 거 알겠어.” 등이다.


이 때 정말 제대로 상대의 느낌을 내가 느껴주고 또 상대방도 나의 그런 모종의 느껴줌을 알아챌 때 오는 신비한 결과란.


그리고 만약 행동으로 보여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해도 좋다. 공감의 표정, 말투, 어조, 문장 그리고 여러 제스처도 좋다. 이것은 어떤  테크닉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느껴진 대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것을 말한다.


물론 실제 어떤 경우엔 내가 느낀 것이라고 해서 상대방에게 말해 줬는데 상대방이 "나 지금 그런 기분 아니거든?"는 식으로 말해 올 때도 있다. 그럴 땐 아직 나의 느껴주기가 좀 약하다고 스스로 알면 된다. 그런 반응에 실망하거나 위축될 필요 없다. 그리고 좀 더 잘 느껴볼 수 있도록 계속 하면 된다. 다만 '같이 느껴주기'에서는 막연한 짐작, 추론, 예상은 기본적으로 하지 않는 것으로 하면 좋다. 글자 그대로 '그냥 같이 느끼기'만 하자. 그렇게 느끼는 것 자체가 목표이자 결과임을 계속 유념하자. 




자, 이제 우리 모두

'그냥 같이 느껴주기'를 잘 마스터해서
(잘 안 될 때는, 심플하게 다음 기회로 넘기면서)


진정으로 삶을 지배하고

조화로운 관계를 즐기는

공감의 달인들이 되어 보자!




<사례> 아래는, 이렇게 ‘같이 느껴주기’와 관련된 실제 한 사례이다.      


"나, 일찍 죽을 것 같아“     


가끔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과 전화 통화를 할 때가 있다. 몇 년 전에, 50대 후반 여성이 전화를 준 적이 있다. 남편과 사소한 것에서 계속 부딪치고, 대화를 해봐도 금방 틀어져 결국 싸우게 되는 일상을 말하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자신이 참아 넘겼지만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도 없다고 했다. 당연하다. 어떻게 사람이 계속 참을 수 있겠는가. 


엊그제도 싸우다가 홧김에 ‘이혼’이라는 말을 꺼냈는데, 남편이 갑자기 진지해지며 아이가 대학 졸업할 때까지 1년만 참아달라고 했단다. 1년 후에는 자기가 사라져주겠다고. 이분은 남편의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다. 남편은 심근경색 등의 지병이 있어서 평소에도 자기는 일찍 죽을 거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이다. 


물론 지금 헤어진다 해서 서로에게 좋을 것은 전혀 없다는 것을 잘 안다고 했다. 그러나 계속되는 다툼과 충돌 때문에 서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어떻게든 잘 풀어보려 해도 안 되고. 다음 날이면 남편 생일인데, 마음 같아서는 미역국도 끓여주기 싫다고 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전화라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통화 중에 마음이 급했는지 우선 당장에라도 조언을 줄 수 없냐고 하셨다. 그래서 일단 하나가 있다고. 그런데 말씀드리면 그대로 한번 해보시겠냐고 먼저 여쭈었다. 방법을 알려줘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해보시겠다고 했다. 


우선 남편이 “나 일찍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할 때 어떻게 반응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그런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말이 씨가 된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이제는 남편이 그렇게 말하면 본인의 생각이나 느낌은 잠시 내려놓고 우선 남편의 마음을 같이 한번 느껴주라고. 달리 무엇을 하려고 하지 말고 ‘저런 말을 하는 남편의 지금 마음은, 지금 감정은 이런 것이겠구나…’ 하며 그냥 느껴주기만 하시라고.


그리고 그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시라고 했다. (이런 경우 상대방의 마음을 같이 느껴주는 것이 핵심이지만, 이것을 직접 말로 표현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당신, 그 정도로 많이 불안한 거지? 건강 걱정도 많이 되고… 내가 그 마음을 잘 몰랐네. 이제는 좀 알 것 같아….”     


그리고 잠시 후, 수화기 너머로 흐느낌이 들려왔다. 자신이 무엇을 잘 몰랐던 건지 이제 알 것 같다고 하셨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나도 함께 마음이 숙연해졌다.       


사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다만 그 구체적인 방법을 잘 모를 뿐이다. 혹은 알지만 익숙지 않아서 못하는 경우도 많다. 관계 나눔에 있어 서로 받고 주어야 할 것들을 말이다. 그런데 조금만 힌트를 얻거나 혹은 체험을 하게 되면 금방 눈치챌 수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론 알게 된 후에도 성숙한 나눔이 익숙하게 될 때까지, 일상이 될 때까지는 여전히 힘들 수 있고 또 중간중간 넘어야 할 작은 고개들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러한 '과정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하나씩 넘으며 앞으로 나가면 된다. 그렇게 고개를 하나씩 넘을 때마다 나는 더 성숙해지고, 행복의 순간들은 더 많아지고,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출간 공지] 책 '자기 미움'의 출간 소식을 전해 드립니다!(종이책 & 전자책)

- 가장 가깝기에 가장 버거운, 나를 이해하기 위하여


독자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책 '자기 미움'이 출간되었습니다. 좋은 출판사 '북스톤'에서 종이책과 전자책 모두로 정성 들여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동안 브런치에 연재해 온 '자기 미움' 심리와 일상의 여러 부정적 감정들로부터 자유로게 되는 방법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습니다. 이 책이 많은 분들에게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책에는 또한 정체성 문제, 감정 다루기, 상처 넘어서기, 관계 문제 해결하기에 실제 도움이 되는 내용들과 구체적인 실천법들이 담겨 있습니다. 

- 이경희 작가 드림

# <자기 미움> 종이책 링크: 네이버 책 / 교보문고 / 예스 24 / 알라딘 

# <자기 미움> 전자책 링크: 리디북스 e-book / 교보문고 e-book


축하해 주세요! 책 <자기 미움>이 2016년 문공부 주최 '세종 문고'에 선정되었습니다. '인문/철학/심리' 영역에서 입니다. 선정 후 정부 지원으로 전국 2700여 도서관, 학교, 기관 등에 배포되었으며 전자책 출간 지원도 받았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라 생각되어 깊이 감사드립니다. 



<관심 작가 브런치>

이시스 작가의 브런치: 흥미로운 신화 이야기(신화 속에 있는 연인과 부부 유형), 힐링 동화, 시, 자기 치유, 따돌림에 대한 좋은 글들이 있는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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