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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다은 Mar 01. 2024

인공지능과 결핍

영화 '그녀'를 보고나서

 영화 '그녀'는 오래 전부터 주변 선생님들께 추천을 받았던 영화다. 내가 보면 좋을거 같다나. 이제야 보게되었다. 운영체제 서맨서와 연애를 하는 한 남자 테오도르의 이야기인데.. 나는 이 이야기에서 인공지능의 발전이나 미래세계에 우리가 대비해야하는 것 이런건 별로 보이지 않았고, 사랑과 인간관계에 대한 정말 생각이 많아졌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모두 갖고 있는 것 같다. 같이 있을때 즐겁고 감정적 정서적 교류가 잘 되는 상대 말이다. 나 역시 그런 상대를 꿈꿨던 것 같다. 그래서 주인공 테오도르가 왜 인공지능 서맨서에게 빠져들었는지 너무 이해가 되었다. 서맨서는 인공지능이기에 그의 모든 정보에 접근한다. 예컨대 그가 받은 이메일을 확인해주며 그 이메일로 인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이 있을지 자기가 이러저러하게 예측해주고 나름의 의견도 주고, 그의 기분도 헤아린다. 공감을 보여준다. 만약 사람인 여자친구에게 '나 이런 이메일 받았다?' 하면서 열심히 얘기해도 여자친구가 별 관심없거나 자신과 다른 해석으로 공감보다는 판단을 하는 애인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서맨서는 자기 입장이 아닌 완전히 그의 입장에서의 판단과 해석, 공감을 해준다. 또 감정 변화를 예민하게 캐치해준다. 이런 공감의 대화를 계속 하다보면 그 대상이 인간이든 기계이든 신뢰와 친애의 감정이 생길 것 같다. 영화는 관객에게 테오도르의 사랑이 이해가 될만큼 설득력있게 서맨서를 묘사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내 삶을 공유하고 싶고, 그 과정에서 늘 나의 감정을 헤아려주고 함께 고민해주고 공감해주는 그런 상대를 찾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런 상대가 인공지능이어도 좋다고 생각을 할만큼 인간은 외롭고, 또 그런 인공지능을 개발해야 가능할 만큼 인간끼리의 돈독한 애정의 관계, 감정의 대화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지점이 있다. 또한 테오도르가 생각하는 사랑의 방식, 전 부인인 캐서린이 지적한 것처럼, '너는 언제나 순종적인 여자를 원했다'는 대사처럼 우리가 원하는 건 갈수록 내말만 들어주고 나와 다른 상대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가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 손안에서 뭐든 할 수 있는 디지털세상이다. 그러니 자꾸만 내 안의 욕구와 욕망에 집중하게 된다. 핸드폰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많이 쓰는 어플, 기능, 소비하는 컨텐츠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욕망을 가진 사람인지 보인다. 스마트폰이 더이상 도구가 아니라 내 세계가 되었다는 말이다. 내 안에서 내가 가진 것들과 소통하기에도 바쁘고 할일이 많은데 거기에 타인의 감정과 타인의 세계를 받아들일 여유가 있을까.맘에 안들면 '나가기'를 누르면 될 뿐이다. 그러면 인간관계를 그렇게 애써서 맞추고 공감하려 노력할 이유도 없다. 그냥 나랑 비슷한 사람과 어울릴 뿐이고, 나는 더 좁은 세계를 만들것이다. 그러니 연애 상대 찾기는 더 힘들것 같다. 내 스마트폰, 스마트기기처럼 내 룰과 내 욕망에 따라 함께 움직여주고 작동해주는.. 그런 상대에게 편안함을 느낄텐데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 그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정말 테오도르처럼 운영체제를 만나지 않는 이상 어렵다. 그러니 기업들도 인공지능 개발에 있어 그런 니즈를 반영해서 '반려로봇'이라던지 '가상인간'을 개발하게 되는 것 아닐까.

 필요는 욕구를 보여주고 욕구는 대개 결핍을 보여준다. 인간사회에서 무엇이 결핍되어있고 채우려 하는지 인공지능 개발을 보면 알 수 있다. 결핍의 근본원인을 찾고 해결하지 않으면 정말 사람과 사람 사이는 멀어지고 인공지능이 우리의 친구이자 애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 애인은 동시에 수천명과 대화하고 있을것이고 수백명과 나와 같은 강도로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사랑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사랑이 뭔지, 우리 사회 또는 개인은 그 사랑의 어떤 면이 결핍되었는지, 그 결핍은 어떻게 해소하면 좋을지, 그게 우리의 고민지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인공지능 기술개발과 4차산업혁명의 문제 등등은 그닥 우리의 논의 지점이 아닌 것 같다. 주인공을 인간으로 바르게 세우면 문제와 답이 보이는데 ... 주인공을 기술개발과 발전으로 놓고 보면 노동시장이 어쩌니, 일자리가 어쩌니 이런 부차적인 문제가 당면과제로 더 크게 보이는게 아닐까 싶다. 기술 개발의 주도권도 인간에게 있고 모든 사회 변화의 중심에 인간이 주인이어야 한다. 인간이 아니라 욕망 그 자체, 부, 권력이 주인공이라면 당연히 인간은 인공지능 발전을 두려워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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