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중고딩 적 물리학과에 진학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초끈이론 때문이었다. 이게 무슨 아인슈타인 어릴적 영재발굴단 같은 뚱딴지같은 얘긴가 하니, 당시의 아이들이 자동차나 공룡, 또는 디아블로2 조던 링 수집에나 관심을 가지듯 나는 원자를 쪼개서 나온다는 물질의 근본 입자에 대한 순수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수집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졌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내가 천재나 영재나 그런 것도 아니었기에, 난 그때 (당연히) 양자역학은커녕 중학 물리도 제대로 배우지도 않은 채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주워들은 ‘초끈이론’이라는 키워드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도 없던 시대에, 중학생의 귀에 들어온 입자물리학의 최전선, 물질을 설명하는 최선의 방식이 바로 초끈이론이었기 때문이다.
그 주워들은 출처를 기억을 되짚어 생각해 보니, 브라이언 그린의 『엘레건트 유니버스』라는 책이 떠오른다. 브라이언 그린은 가장 유명하고 또 꽤 잘 팔린 초끈이론 및 입자물리학 전문 대중과학 저술가가 아닐까 한다. 한국에서조차 책이 꽤 많이 팔리고 유명했으니까. 놀라운 사실이다. 한국의 척박한 대중과학서 시장에 ’초끈이론‘ 같은 키워드를 가진 브라이언 그린의 책들이 어째서 많이 팔릴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채널, ‘김필산의 사이언스비치’ 유튜브의 관련 키워드에서 항상 1위를 차지하는 단어가 바로 ‘양자역학‘인데, 내 채널이 물리학과 생물학, 심리학을 망라하는 종합 과학 콘텐츠 채널을 표방하고 있는데도 가장 인기있는 키워드가 심리학도 생물학도 아닌 물리학의 ’양자역학‘이라는 점은 시사점이 크다. 나의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의하면, 대중은 언제나 자기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에 더 관심을 가진다. (거기서 손해보는 분야가 바로 심리학이다. 사람들은 은근히 ’심리학 같은 분야는 배우지 않아도 대충 안다‘는 이상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릴 때에 어디서 주워 들은 ’초끈이론‘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흥미를 가졌던 이유도 그것이다.
그러나 초끈이론이 대중들에게 가장 어렵고도 또 우주의 근본적인 입자의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물리학의 끝판왕적인 존재, ’모든 것에 대한 이론‘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다르게, 실제 이론 입자물리학자 사회에서는 불만의 얘기가 나온지 좀 되었다.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터 보이트가 쓴 『초끈이론의 진실』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 2006년에 출판된 초끈이론의 가장 결정적인 비판서이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2023년 현재, 초끈이론은 여전히 어렵고, 난해하고, 우주의 근본적인 입자에 대한 비밀을 밝힐 ’수‘ 있는 최선의 이론이라는 자리에 있다.
여전히 아무 것도 입증한 적이 없는 가설 상태인 채로 말이다.
Not Even Wrong - Peter Woit
책의 구성은 두 파트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에 입자물리학의 태동기부터 저술 당시의 최신 이론이었던 초끈이론까지의 입자물리학 역사, 그리고 후반부로 초끈이론의 본격적인 비판을 할애하고 있다. 문제는 전반부 입자물리학 역사 개괄이 무지하게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라. 책이 어렵다는 건 세 가지 이유가 있다. 1. 독자가 멍청이다. 2. 책을 못썼다. 3. 내용이 원래 어려워 최고의 저술가라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책의 문제점은 3이다. 애초에 입자물리학은 어렵다. 나는 적어도 양자역학까지는 좀 안다고 자부하는 편인데, 입자물리학이라는 분야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한다. 게다가 초끈이론은? 그 너머의 무언가이다. 그러므로 책이 어려운 이유는 일정 부분 입자물리학이라는 분야의 어려움 탓이다.
그러나 2번 이유, 저자의 문제도 분명히 있다. 물리학자를 위시한 전문가들이 책을 쓸 때 난이도 조정에 실패하는 이유는, 대중이 어느 부분에서 쉬워하고 어려워하는지를 저자가 판단하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렇다. 자기가 '대중을 타겟으로 가장 쉬운 방식으로 설명하려 한' 입자물리학 개괄사 전반은 너무 어려워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못알아먹겠다. 그러나 '이제부터 너무나 전문적인 영역이라 독자들이 이해가 잘 안된다면 그냥 대강 넘어가라고' 신신당부한 후반부 초끈이론의 비판 부분에서부터 책이 오히려 이해가 잘 되고 재미있어지게 된다. 물론 '까는 재미'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전적으로 대중들이 무엇을 쉬워 하고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감을 못잡는 전문 물리학자 특유의 뒤틀린 난이도 판단력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후반부에서 저자가 "이제부터 어려워지니 단단히 각오하라"고 경고할 때까지 꾹 참고 어려운 부분을 잘 넘겨 보길 바란다.
보통 물리학에서 우주에 뭔가 궁금한 점이 생긴다면, 그 이론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하고 이해 안되던간에 인류는 30 년 안에는 무조건 정리를 한다. 예를 들어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이 그랬다. 마이컬슨 몰리 실험으로 우주에 빛이 이동하는 에테르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이를 맥스웰의 법칙에서 도출되는 빛의 속도와 모순되지 않게 우주의 법칙으로 설명하는 특수상대성이론이 출현하는 건 고작 18년,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완전한 이론이 정리된 건 28년 후였다. 양자역학도 비슷하다. 막스 플랑크가 흑체 복사의 자외선 파탄에 대한 ‘양자 가설’을 발표한 1900년 이후 26년이 지나 슈뢰딩거는 자신이 만든 방정식으로 양자역학이라는 분야를 창설했다.
초끈이론이 태동한 년도가 1984년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40년이 흘렀다. 아니 사실, '문제제기'의 시점(양자 중력의 모순점에 대한 문제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게 맞으니 사실은 그보다 더 오래 되었다. 하지만 그 지점은 거의 아인슈타인의 생전 시대까지 흐르니 거기까지 언급하지 말도록 하자. 초끈이론이 태동한 시기로부터 중간 지점에, 피터 보이트가 책을 냈고 또 20여 년이 지났다. 초끈이론은 비판점을 건실히 받아들여 숙고의 시간을 가질 기회조차 있었다. 초끈이론은 여전히 어렵고, 이해 안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 이유 때문에) 대중들에게 물리학의 최전선이라는 이미지로 적잖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도 초끈이론은 여전히 아무 것도 입증하지 못한 상태다. 초끈이론이 아닌 물리학에서는 여러 성과들이 있었다. 힉스 입자도 발견하고, 중력파도 발견했다. 그리고 심지어 이 어려운 분야의 성과들을 대중 매체 수준에서도 얼마든지 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초끈이론이 입증되었다거나 증거가 발견되었다는 얘기는 눈꼽만큼도 들을 수 없었다.
초끈이론 지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들을 한다. 아직 입자가속기의 출력이 초끈이론의 가설을 입증할 수 있는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또는 이렇게 말한다. 인류원리에 의해, 초끈이론은 가설을 검증할 필요가 없다. (무슨 소린가 하니, 물리학의 미세상수는 특별히 정해지지 않고 수억만 개의 여러 종류의 우주를 만들며,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만이 생명과 인류를 진화시키도록 하는 특정한 미세상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특별한 값의 미세상수를 관측할 수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가설 검증을 할 수 없으므로 굳이 궁금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를 물리학에서 '인류 원리'라고 한다.) 게다가 그들은 이런 얘기도 한다. 물리학은 대칭의 아름다움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며, 실험 결과는 필요 없다.
정말 그런가?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과학이란 원래 우선적으로 실험 결과와 관찰 결과를 가장 가치있는 본질로 취급해야 하는 것 아니던가? 과학 중에서 특별히도 실험을 배제하고 수학적 대칭성과 그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런 분야를 하나쯤은 인정해줄 수 있을까? 만약 어떤 분야가 그런 원칙을 내세우며 과학의 상아탑 내에 들어오려 할 때, 우리는 이를 허용하여야 할까? 아니면, 이런 분야는 과학이 아니라고 선언하고, 그들을 탑에서 추방해야 할까? 그렇다면 수학은 어떤가? 수학이야말로 실험이나 관찰 없이 거대한 지식의 체계를 구축한 위대한 인류 지식의 금자탑 아니던가? 초끈이론이란, 수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아니지만 자연의 본질을 탐구하는' 특별한 지식체계인가?
그렇지 않다. 과학은 여전히 변함이 없으며, 오직 수학만이 그 특별한 예외일 뿐이다. 과학이란 무엇보다도 첫 번째로 실험과 관찰이 병행되어야 하는 필수조건을 가진다. 그것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며, 그 조건이 없다면 과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수학은 원래 과학이 아니다.) 초끈이론이 수학적 진리가 아닌 자연의 실체를 탐구하고자 한다면, 초끈이론이 과학이고 싶다면 반드시 실험 결과를 참조해야 한다. 그러나 초끈이론은 스스로 과학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여러 핑계들--입자가속기의 출력 문제, 인류 원리, 대칭의 아름다움 등등--을 내세우며 과학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데, 우리는 이 사태를 복잡하게 볼 것 없이 초끈이론이 과학이 아니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과학 체계는 초끈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하루빨리 과학의 상아탑에서 내쫒아서 더이상 발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도저도 싫다면, 초끈이론은 그냥 입자니 에너지니 하는 물리학 개념을 전부 빼버리고 대칭성을 연구하는 수학이 되면 된다.
특히 초끈이론은 '에드워드 위튼'이라는 "길을 잘못 든 세기의 천재"의 영향력이 너무나 크다. 그의 영향력이 너무나 막강했던 나머지 젊은 물리학자들과 연구비가 물밀듯이 초끈이론 분야로 흘러들어갔다. 책에서는 저자가 평범한 찌끄레기 대학원생 시절에 에드워드 위튼이라는 천재의 탄생을 지켜봤던 경험을 이야기 한다. 아인슈타인과 폰 노이만도 능가할 수 있는 세기의 천재가 초끈이론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는 소문을 접했을 때, 저자의 느낌은 어땠을까? 천재와 한배를 타게 되어 두근거렸을까? 천재의 벽을 넘지 못해 절망적이었을까? 그러나 그 후에 초끈이론이라는 분야 전체가 서서히 거대한 사기로 밝혀지기 시작했을 때, 저자는 직접 선봉에 서서 그들의 추악한 실체를 벗겨내기로 결심한다. 한때 선망했던 세기의 천재를 자기가 직접 처단하기로 결심했을 때 피터 보이트는 에드워드 위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