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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기의 『판타 레이:혁명과 낭만의 유체과학사』를 읽고

잊혀진 물리학, 판타 레이 - 우주의 근원은 소용돌이다

당신(왜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치자. 물리학과에 진학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당신이 물리학과에 진학한 이유가 공학 분야 특유의 가볍고 실용적인 느낌을 좋아하지 않고 순수하고 빛나는 자연의 본질을 연구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뉴턴역학(고전역학), 전자기학, 양자역학을 배울 것이다. 선택과목으로 열역학이나 고체물리학도 배울 지 모른다. 어쩌면 당신은 유체역학이 고전역학과 동등한 순수하고 빛나는 본질을 취급하는 학문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런 이유로 당신이 유체역학을 배우고 싶어서 물리학과에 진학했을수도 있다. 그런데 아뿔싸, 당신은 잘못 왔다. 물리학과에선 유체역학을 가르치지 않는다. 현대 아카데미 커리큘럼에서, 유체역학을 가르치는 곳 물리학과가 아니라 기계공학과 등의 공대쪽이다. 당신은 이해할 수가 없다.


페미니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는 이렇게 말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비롯한 ‘남성 물리학’에서 단단한 고체의 역학이 특권을 누리고 유체역학 특권적 지위를 가지지 못하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유체를 여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 (남성=고체, 여성=유체의 비유,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철학자는 아마 유체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입자가 물리학에서 본질적이라면, 그에 반대되는 성질을 가진 유체 또한 본질적인 요소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유체역학이 뉴턴역학보다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건 이유가 분명치 않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체를 잘 연구하지 않았던 남성 물리학자들의 문제임이 분명하다.


물론 이 주장은 수많은 이공계 출신들에게 비웃음받아 왔다. 이에 대한 이공계 출신의 반박은 다음과 같다. 유체를 기술하는 방정식인 나비에-스톡스 방정식이 얼마나 어렵고 잘 풀리지 않는지 모르는가보군? 유체역학이 뉴턴역학에 비해 잘 다뤄지지 않는 이유는 이 난이도 문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도 잘못된 사실이 있다. 오히려 순수과학 아카데미(그러니까, 물리학과)에서는 유체역학이야말로 ‘더는 연구할 만할 가치가 없는 학문’ 취급을 하고 있 않은가? (그럼 저 철학자는 또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유체역학을 가치가 없는 학문 취급을 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을 특권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놀랍게도, 뉴턴 이전에 유체가 입자보다도 더 본질적인 취급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뉴턴이 자신의 책 『프린키피아』을 집필한 이유도 ‘자연의 본질은 유체’라는 테제를 반박하는 안티테제를 주장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다. 뉴턴 직전까지, 천체의 움직임은 우주에 가득 차 있는 유동의 상태인 ‘에테르’의 소용돌이 움직임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설이 대세였다. 즉, 태양은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으며, 그 외 행성들은 에테르의 영원한 소용돌이를 따라 돌고 있다는 관점이었다. 이 관점은 데카르트가 제시했다고는 하지만 (데카르트는 카테시안 좌표계 같은 유용한 수학적 업적을 제시하긴 했지만, 우리가 그를 철학자로만 인용하고 있는 건 바로 이 물리학적 주장이 완벽히 반려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에테르 우주설로부터 이어져온 것임이 틀림없다.


아리스토텔레스 하니까 굳이 또 말하자면,(지겹게도) 고대 그리스까지 돌아가서 얘기할 수가 있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언명인 “모든 것은 흐른다”, 또는 그리스어로 “판타 레이(panta rhei)”라는 관점은 바로 에테르 우주설의 원천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히려 데모크리토스의 “모든 것은 원자다” 관점보다도 더 메이저었다는 것이다. 자그마치 뉴턴이 프린키피아로 데카르트의 우주 소용돌이설을 반박할 때까지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4원소설+제5원소 에테르 설에 의해 우주는 흐르는 에테르로 가득 차 있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사실은 뉴턴을 넘어 아인슈타인 바로 직전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 속도란 원래 상대적이니까, 빛의 속도 또한 우주공간에 차 있는 에테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측정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 그리 하여 진행된 마이컬슨과 몰리의 빛의 속도 측정 실험 이후 빛이 우주의 어떤 곳에서도 절대적으로 정확히 같은 속도로 측정되는 것을 깨닫게 된 후에야 빛의 속도는 절대적이며 우주는 에테르가 아니라는 주장이 입증되었다. 그리하여 그때에서야 유체란 우주의 본질이라는, 판타 레이 관점이 전부 반박되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도 판타 레이 관점 물리학 주류 역사다시는 진입하지 못했지만, 역사 사이사이에 비유적인 관점으로서는 면밀히 이용되어 왔다. 예를 들어, 전자기학에서 전기의 흐름(전압, 전류, 저항)이나 역장(전기장, 자기장)에 대한 묘사, 열이 '흐른다'는 관점 모두 판타 레이 관점으로부터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이 물리학적 비유는 경제학에서도 발견된다. 케인즈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인 '현금유동성' 그렇다. 현금이 '흐른다'는 개념은 말 그대로 비유로, 판타 레이에 영향받은 용어다.


그러나 "만물이 흐름"이라는 거창한 판타 레이 관점이 아닌, 유체역학 그 자체에 대한 연구도 유유히 이어져 오긴 했다. 물리학과가 아닌 기계공학 등의 공대 분과로 흩어지긴 했지만. 웃기게도 역사적으로 물리학/철학/수학 분야의 거장들이 이 유체역학을 하다 도망간 일화가 있다. 하이젠베르크는 유체역학을 하다 어렵다고 도망가서 양자역학의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했고(뭐냐) 비트겐슈타인 또한 무슨 프로펠러 발명을 하느니 뭐니 하다 철학으로 도망가 현대철학의 위대하고 어려운 업적인 분석철학 분야를 세웠고 (진짜 뭐냐) 화이트헤드 또한 수학 분야로 도망가 1+1=2를 개 어렵게 증명하는 『수학 원리』라는 책을 썼다. (진짜 당황스럽다) 유체역학이 어렵다는 편견으로 인해 도망간 사람들이 개척한 분야 일반인은 법접하지 못하는 개 어려운 분야라는 점은, 당연히 유체역학이 그것들보다 어려운 분야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게 아니다. 그냥, 유체 역학이 어렵다는 편견을 강화시키는 웃긴 에피소드일 뿐이다. 그냥 그게 너무 웃기고 황당해서 문제다.


그리하여 유체에 대한 연구란 어렵고 까다롭고 풀리지 않는 문제라는 인식과 동시에, 이제는 더 이상 순수과학적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가 없는 분야라는 모순된 인식까지 얻게 된 것이다. 유체역학은 최종적으로 물리학의 잊혀진 가지가 되었다.




이 책 『판타 레이』는 국내의 저술가 민태기 박사가 지은 책이다. 이 책엔 단점도 있다. 하나의 소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너무 자주 역사를 왔다갔다하며, 책의 중심 주제에 벗어난 주제들 (예를 들어, 철학, 역사, 전쟁사 등)까지 다방면으로 다뤄서 집중하기 힘들고 난삽하다. 마치 작가가 자신은 너무 많은 것을 안다고 자랑하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위에서 떠들었더 구성은 책에 없는 관점 대폭 들어가 있다. 책의 플롯이 너무 정리되어 있지 않아서  좀 더 흥미로워질 수 있도록 양념을 과하게 쳤다는 걸 인정한다.


판타 레이 - 민태기


하지만 기획력만큼은 인정할 만한 책이다. 놀랍지도 않게 이 작가 또한 물리학자가 아닌 기계공학자이지만, 공학자 출신의 배경을 가진 작가 치고는 과학 역사에 대한 풍부한 사례와 인식을 바탕으로 물리학의 또 다른 역사적 흐름인 판타 레이 관점을 제시했다. 그게 진실이냐고? 그런 관점이 진짜 있는 거냐고? 글쎄, 이런 건 그런 식으로 증명될 성질이 아니긴 하다. 그러니까 이게 '기획력'이라는 것이다.


그 기획의 종말엔 우리를 충격적인 인식의 그림자로 이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게 무슨 의미냐면, 우리는 모두 이 뉴턴 이전에 우주를 해석하는 주류 관점인 “판타 레이” 관점에 대해 인류적으로 잊게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인 것이다. 물리학에 있어서 유체란 잊혀진 자식이다. 하지만 그 근원에는 오히려 물리학의 본질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숨겨진 그림자이지만, 저자는 그것에 조명을 쏘아 사실인양 당당히 제시했다. 물리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끌 만한 놀라운 기획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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