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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떻게 물리적으로 몸을 조종하는가?

김재권의 『심리철학』 제 3판을 읽고

심리철학이라는 분야는 철학 문외한인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가 있고, 또 그 명칭을 보건대 비교적 신생 학문인 심리학의 탄생 이후에 생긴 철학의 분과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심리철학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전 그리스 형이상학에서 다루어진 적 있을 정도로 오래된 철학 분야다. 누구나 다 알만한 이 분야의 유명인은 르네 데카르트인데, 그는 마음이 몸을 움직이도록 만든다는 '심신이원론'을 언급하여 심리철학의 근대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데카르트의 이 언명에 대해 별다른 생각 없이 살아왔을 수 있으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철학에 문외한인 당신이라도 이상한 점 한두 가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세계가 물리학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비물리적인 마음은 물리적인 몸을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 (물리적 영역의 인과적 폐쇄성 원리) 그렇잖은가? 어떤 물체의 움직임은, 아주 작은 물체부터 천체의 움직임까지, 다른 물체나 빛, 장(field)만을 원인으로 가진다. 바로 뉴턴의 운동 3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이다. 뉴턴의 법칙이 설명하지 못하는 간단한 화학반응(예를 들어 소금이 물에 녹는 현상)과, 심지어 그보다 훨씬 복잡한 유기물의 화학반응도 맥스웰의 전자기학 법칙이 설명할 수 있다. 그걸로조차 설명되지 않는 원자 내외부의 현상은 양자역학이 다 채워준다. 생물의 몸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하고 어려운 생물학적 반응들, 아버지가 크면 자식도 크다는 등의 유전 법칙, 그리고 진화론은 환원적으로 내려가다 보면 결국 분자생물학이 거의 대부분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또한 물리학적 설명이 모두 마련되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 몸의 움직임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왜 유독 다른 물체와는 달리 우리의 몸만은 '마음'이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가?


대체 마음에 대한 이해에 왜 철학, 그것도 형이상학이라는 고리타분한 분야가 필요한가? 과학은 이미 '신경'이라는 존재를 밝혀 냈고, 바로 이 '신경'이라는 물리적 실체야말로 바로 마음이 몸을 작동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 아니던가. (어떤 이는 과학이 이런 식의 문제를 전부 해결하였고 또 앞으로도 해결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철학이란 학문은 더 이상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선언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학이 '신경'을 밝혀 냈다고 할지라도 그게 심신인과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어떠한 진전도 이루어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신경이 몸 움직임의 원인이라면, 신경과 마음의 관계는 또 어떤가? 누가 누구의 원인인가? 마음은 이제는 신경을 움직이는 것인가? 마음이 몸을 움직인다는 설명이 불만족스러웠다면, 마음이 신경을 움직인다는 설명에 만족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결국 끊임없이 생성되는 무한한 굴레의 심신이원론일수밖에 없다.


철학이 여기서 더 무엇을 더 해줄 수 있단 말인가? 포스트모더니즘, 거울 단계, 시뮬라시옹, 젠더 권력 등을 논하는 현대 철학이 대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구조주의니 포스트해체주의니 하는 걸 논하는 '대륙철학'과는 역사적으로도, 다루는 주제나 방법론으로도 별 관련이 없다. 이 책『심리철학』에서 말하는 철학, 즉 '분석철학'은 대륙철학과 달리 반과학적인 성향이 아니다. 실제로 과학에서 밝혀 낸 뇌와 신경의 물리주의적 이해는 이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바라보는 데 탁월한 진전을 이루게 했다. 하지만 그들의 학문적 분석 틀은 과학적 방법론이 아니라 말 그대로 '철학'이라고밖에 불러줄 수 없다. 철학이 과학에 통합되거나 사라지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분석철학이 이 어려운 심신인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게 또... 그렇진 않다. 난제는 난제다. 하지만 그 철학적 분석 틀로 정의하는 문제들과 그 해결 방식들을 차근차근 읽어 본다면, 적어도 이 문제의 어떤 점이 그렇게 문제를 어렵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다. 사실 그게...분석철학의 문장들이라 읽기는 좀 어렵다. 조금...어렵다.


심신수반: 시점 t에 x가 심적 속성 M을 예화한다면, 그것은 x가 t에 어떤 물리적 속성 P를 예화한다는 사실에 기인하는데, 무엇이든 어떤 시점에 P를 가지는 것은 필연적으로 그 시점에 M을 가진다.


이건 전적으로 분석철학이라는 분야에서 통용되는 문장들이다. 어쩔 수 없다. 철학에서의 정의는 엄밀해야 하며, 분석철학이 도달한 영역은 수학이나 논리학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흡사하다. 이 책 『심리철학』은 이런 스타일의 문장들을 일단은 선제시한 후, 철학 멍청이들이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 그 함의에 대해 가까스로 이해 가능한 정도로 잘 설명해 준다. 이 책은 현대 심리철학의 제반 문제와 그 사조의 역사들에 대한 설명과, 그 이론의 문제점, 그리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다음 사조에 대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간단하게 그 내용에 대해 요약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행동주의: 실제로 마음은 '행동'이다. 즉, 마음을 따로 정의하거나, 행동과 연관지을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행동이야말로 마음이기 때문이다.

2. 심리-신경 동일론: 마음과 '신경'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신경이 몸을 움직이는 원인이었다면, 즉 마음이 몸을 움직인 원인이다.

3. 기능주의: 마음을 그 물리적 구성보다는 그 기능적 역할로 정의한다. 다르게 말하면, 마음은 '튜링 머신'이다.

4. 부수현상론: 마음은 몸을 움직이는데 어떠한 인과적 영향력도 없다. 몸을 움직이는 건 단지 '신경'이며, 마음은 신경에 부수적으로 얹혀 있기만 하다.

5. 무법칙적 일원론: 마음과 몸과의 관계는 엄격하고 예측 가능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은 실질적으로 동일한 사건이다.

6. 심신수반론: 마음은 물리적 신경에 '수반'한다. 그러므로 마음 또한 몸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등등등...나 또한 이 분야의 멍청이로서 좀만 길게 설명했다가 틀릴 가능성이 높아지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 책은 이 이론들을 단순히 나열해 설명한 것이 아니라, 각각의 이론들이 나온 배경과, 그 반론과, 그로 인해 파생된 후속 이론들이 과거 이론의 난점을 어떻게 해결해 내었는지를 이해 가능한 정도로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좋다. 예를 들어, 심리-신경 동일론은 퍼트넘의 ’다수실현 논변‘에 의해 무너져 내렸는데, 말하자면 같은 마음 상태라도 신경 상태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나의 행복 상태와 남의 행복 상태는 신경 상태가 같을 리가 없다.) 그리하여 심리와 신경이 동일하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가 없다. 그로 인해 이후로는 기능주의 이론이 심리철학의 대세가 되기 시작했다.

심리철학 제 3판 - 김재권 (2023)


다른 예로, 부수현상론은 마음이 몸에 대한 인과가 전혀 없다는 지극히 절망적인 결론으로 수렴한다. 우리의 마음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이자 환상이라는 것이다. 부수현상론이 맞다면 철학은 어쩌면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 책에서도 언급하는 바, 심리철학자 제리 포더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내가 손을 뻗는 것에 인과적으로 책임이 있지 않다면, 내가 가려운 것이 내가 긁는 것에 인과적으로 책임이 있지 않다면, 내가 믿는 것이 내가 말하는 것에 인과적으로 책임이 있지 않다면, ... 만약 이 모든 것이 문자 그대로 참이 아니라면, 내가 믿는 모든 것은 사실상 거짓이며 이는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김재권은 이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부수현상론을 몰아내기 위한 철학적 대안으로 “심신수반론”을 전개한다. 마음과 몸은 독립적이지만 일치된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수반) 인과적 작용을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이다. 사실 이러한 논증에는 과학적 대발견도, 실험적 증거도 없다. 과학자들에게는 철학적, 언어적 해석으로써 어려운 문제를 회피한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말하자면 대니얼 데닛의 말처럼 “문제되는 건 원래부터 없었다”고 말하는 격이다. DNA를 발견했고 의식을 연구하는 프랜시스 크릭은 “철학자들은 질문은 잘 하는데 답을 얻는 법을 모른다”고 말했으며, 그의 제자 크리스토퍼 코흐는 “철학자들이 벌이는 지난한 말잔치에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까지 말한다. 대부분의 의식 연구 과학자들이 굳이 심신수반론을 자신의 실험적 해석으로 끼워넣지 않고, 단지 간편하게 부수현상론만으로, 즉 마음은 몸을 움직이는 능력이 없으며 심신인과는 환상이라는 관점만으로 만족한다.


과학자적 관점을 (그나마 더) 가지고 있는 나의 견해로는, 사실상 철학자들의 말이 일리도 있다. 이 문제가 이렇게까지 어려울 리가 없으며, 이 정도로 안 풀리는 문제는 애초에 처음부터 질문을 잘못 제기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나는 크릭이나 코흐처럼 철학자들에 그렇게까지 경멸을 느낄 필요가 없으며, 그들의 텍스트를 찬찬히 읽어 보며 우리가 잘못 제기한 질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처음부터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김재권은 심리철학 분야에서 여러 연구 성과, 특히 이 심신문제와 심신수반론을 정립해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철학자이다. 그는 『심리철학』 뿐만 아니라 심리철학과 관련한 여러 책을 썼는데, 한국어 번역본은 거의 다 절판되고 이제 쉽게 구매해 읽을 수 있는 책은 새로 번역된 이 책 『심리철학』 제3판 뿐이다. 심리철학의 이 골치아픈 문제들이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함에도, 이 책은 의외로 꽤 쉽게 쓰여져 있으니 철학 전공자가 아닌 일반 독서가들도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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