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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대니얼 데닛의 『마음의 진화』를 읽고

GPT나 Gemini 같은 LLM(Large Language Model) AI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면모를 꼽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처럼 말하지만 인간 종이 아닌 것을 생전 처음 마주쳤다. 대화 스킬은 너무나 능수능란하기에 심지어 능글맞고 교활한 느낌마저 준다. 모든 지식을 언어적으로 아주 상세하게 설명할 줄도 알고, 때로는 심리 상담, 인생 조언, 심지어 문학적으로도 그럴 듯한 작품까지 생성해 내는, 그러나 언제나 우리가 시킬 때만 입을 여는 이 수다쟁이와 조우한 후에 우리는 어떤 질문을 떠올린다. 이 질문은 비단 AI에만 관련된 질문은 아니다. 인공지능 이전부터, 아니 역사 이래, 어쩌면 그보다도 훨씬 전부터 인류라는 종족이 탄생했던 시절부터 종종 던졌던 질문이다.


저것들은 마음이 있을까?

인류의 초창기에 인간들은 사슴과 같은 사냥감과, 사냥을 도와주는 인간의 친구 개, 그리고 호랑이 같은 포식자 모두를 향해 이러한 질문을 던졌다. 그것들 뿐이겠는가? 인간은 인간이 마주치는 거의 모든 것들을 향해 이 질문을 던져 왔다. 생선, 문어, 조개, 곤충뿐 아니라 나무나 풀, 심지어 태양과 달, 대지에게까지. 선사시대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과학적 사고방식이 발전하게 된 이후의 인류는 어느 정도는 확실히 마음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 감을 잡을 수 있는 지식을 얻었다. 태양과 달은 마음이 없다. 대지에도 마음은 없다. 태양에 눈을 그려 넣어 그림을 그리는 어린아이나, 지구가 하나의 큰 생명체라는 ‘가이아 이론’ 같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이론을 신봉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식물도 마음이 없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몇몇은 ‘식물의 고통 반응’이 있다는 주장을 하긴 하며 식물의 마음도 걱정하긴 한데, 내 생각엔 식물의 고통 ‘마음’이라는 것을 잘 정의한다면 문제될 건 전혀 없다. 그리고 그 마음의 조작적 정의가 앞으로 이 글에서 논의할 내용이다).

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식으로 생각해 보면 그 경계선은 흐린 채로 확정되어 있지 않다. 개의 경우 거의 마음이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대형 포유류(사슴, 호랑이) 또한 그런 것 같다. (확신이 점점 줄어들긴 한다) 소형 포유류, 가령 쥐같은 경우는 어떨까? 어쩌면 여기서부터 반반 갈리는 상황이 생길 지도 모른다. 문어는? 문어가 고등한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 있고 과학적으로도 검증된 모양이지만, 확실히 (귀여운) 포유류에 비해 문어는 확실치 않고 느낀다. 생선, 조개, 곤충은 어떤가? 완전한 불확실성의 영역이다.


이제 우리는 대체 마음이란 게 있는 건지 없는 건지를 판단해야 할 필요를 지닌 또 하나의 이상한 친구를 얻게 되었다. 바로 인공지능, LLM AI이다. 이 친구의 특징으로는 지금까지 우리가 의심을 가졌던 여러 후보들 중에 압도적으로 언어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앞서 동물들에게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우리가 확신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들이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대상이 인간처럼 말을 잘 한다면, 거기에 마음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많은 인공지능 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단적으로 앨런 튜링이 그랬다. ‘튜링 테스트’는 본질적으로 말을 해야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다. 그렇다면 LLM AI는 확실히 마음을 지녔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인간보다도 더 ‘마음스러운’ 마음을 가졌다고 할 정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지구상, 역사상 어떠한 인간보다도 훨씬 말을 잘하기 때문이다.


이 명백한 증거 앞에서 LLM AI에 마음이 없다고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바로 나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일 수도 있으나, 인공지능을 처음에 조우했을 때 나는 그 압도적인 언어 능력으로 인하여 그들에게도 마음이 있다는 가설을 진지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들과 대화를 하면 할 수록, 아니 쓰면 쓸수록 이 새끼에게는 마음이 없으며 그것이 생성해 내는 대화는 영혼이 텅 빈 기계적 절차에 불과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이것은 정말이지 우리 인류가 처음으로 경험해 본, 영혼이 전혀 함유되지 않은 언어 생성 기계이다. LLM이 부리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의 대답(양자역학은 무엇이니?라고 물어보면 대학교수마저 아연실색할 정도의 분량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내놓는다.)은 오히려 실수도 많고 허술한 면도 많은 인간의 답변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자동 타자기의 답변과도 같다. 영혼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입에 발린 칭찬들(네 생각, 정말 놀라워!)과 정해진 플로우차트가 느껴지는 답변 순서(입에 발린 칭찬→논문 수준의 정교한 대답→다음 질문 유도) 또한 굉장히 미심쩍다. 특히 대화의 마지막엔 사용자가 대화에 흥미를 가지도록 연관된 주제를 몇 가지 제시하도록 하는 끝맺음이 가장 의심스럽다. 실제로 이것들은 LLM 내부의 미리 세팅된 파라미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우리에게 DNA나 본능, 학습된 습관이라는 이라는 미리 세팅된 파라미터가 있더라도, 그것들이 우리의 언어적 행위를 ‘전부 다’ 지배하지는 못한다. 물론 대부분의 언어적 행위가 그것들에 의해 지배되어 도출되겠지만, 우린 가끔씩 우리의 의지대로 그 본능들을 어길 수 있다. 그러나 LLM은 미리 세팅된 파라미터들을 어기는 경우가 절대로 없다. LLM의 대화는 기계적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튜링 테스트’ 또한 컴퓨터에게 마음이 있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절차는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인간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지능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가’가 목적인 테스트이다. 그러니 LLM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다 해도 우리가 검증한 건, AI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것이 단지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마음 없는) 지능을 가졌다’는 말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아차, 어쩌면 우리는 ‘마음’이란 것을 제대로 정의하지도 않고 달려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마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식물에게도 ‘고통을 받으면 그것을 회피’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이 비록 말하지는 못하더라도 새끼를 보호하거나 위험을 회피하는 등의 행동을 보이며, 우리는 거기서도 어떤 마음의 일면을 본다. 개나 고양이 같은 포유류뿐 아니라 곤충 같은 경우도 자극에 반응하고 먹이를 찾아다니는 식의 행동을 보이며, 거기에도 어떤 종류의 마음은 있다. 만약 AI에 곤충 같은 종류의 마음이 있다면, LLM 이전 조악한 인공지능(Apple Siri, Amazon Alexa, 그리고 심심이)이나 심지어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에도 마음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AI에서 진정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건 어떤 마음인가? 설마 정말로 식물이나 곤충 같은 마음인가? 절차적 알고리즘부터 머신 러닝을 거치며 연속적으로 이어진 LLM AI의 계보에서, 어디서부터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대니얼 데닛의 책 『마음의 진화』에 따르면, 우리가 식물이나 곤충, 알고리즘에게 마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향적 자세(Intentional Stance)’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데닛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이해할 때 세 가지의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한다.

물리적 자세 (Physical Stance): 물리 법칙을 통해 대상을 예측함 (예: 돌이 떨어지는 경로 예측)

설계적 자세 (Design Stance): 대상의 기능과 목적을 통해 예측함 (예: 시계가 시간을 알릴 것이라 기대)

지향적 자세 (Intentional Stance): 대상을 마치 믿음(Belief)과 욕구(Desire)를 가진 이성적 행위자로 간주하고 행동을 예측함.


마음의 진화 - 대니얼 데닛. 사이언스북스 (2006)

우리가 식물이나 곤충, 알고리즘에서 마음이 있다고 과대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마지막 ‘지향적 자세’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인 ‘지향성 탐지기’이며, 우리가 알고리즘이나 식물, 곤충에게서 마음을 읽어내는 행위는 일종의 인지적 착시인 것이다. 우리의 뇌는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의도를 가진 존재로 해석하도록 셋팅되어 있고, 그 대상이 보여주는 놀라운 능력을 이해와 혼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곤충이나 식물이 보여주는 그 놀라운 능력, 해바라기가 “해를 보고 싶어서” 해를 따라가는 것이나, 나나니벌(Sphex Wasp)의 정교한 사냥 행동을 마음 없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대니얼 데닛은 이를 위한 설명도 마련해 놓았는데, 바로 『박테리아에서부터 바흐까지...』라는 책에서 설명한 ‘이해력 없는 능력(Competence without Comprehension)’이다.


그래, 이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질문이 명확해졌다. 우리가 LLM AI에서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려면, ‘인간스러운’ 마음의 존재 유무를 판단하려면, 그것이 ‘이해력 없는 능력(Competence without Comprehension)’인지 아니면 ‘이해가 있는 능력’인지를 판별하면 된다. 이를 위해 데닛은 생각 도구를 또 마련해 놓았다. 바로 『마음의 진화』라는 책의 핵심 개념인 ‘생산과 검증의 탑(Tower of Generate-and-Test)’이다. 개념 이름이 참으로 요상하다. 풀어서 써보자면 마음의 본질은 무언가(후보)를 만들어내고(Generate), 그것이 생존에 유리한지 검증(Test)하여 선택하는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기본 알고리즘: "다양한 후보를 생산해라. 그리고 나쁜 것을 버려라."

1층: 다윈적 생물 (Darwinian Creatures)

생산(Generate): 유전적 변이(Mutation)와 재조합을 통해 다양한 개체를 무작위로 생산.

검증(Test): 자연 환경이 직접 검증.

비용: 개체의 죽음. 실패한 개체는 죽어서 사라진다.

2층: 스키너적 생물 (Skinnerian Creatures)

생산(Generate): 개체가 다양한 행동(반응)을 무작위로 시도.

검증(Test): 환경의 보상(쾌락)과 처벌(고통)이 검증.

비용: 에너지 낭비와 고통. 실패해도 개체는 죽지 않지만, 에너지를 소진한다.

3층: 포퍼적 생물 (Popperian Creatures)

생산(Generate): 뇌 속에서 가상의 행동 시나리오를 생산.

검증(Test): '내적 환경(지식, 기억)'이 검증.

비용: 행동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보고, 위험하면 폐기한다. 칼 포퍼의 말처럼 "우리의 가설이 우리 대신 죽는(Hypotheses die in our stead)" 단계.

4층: 그레고리적 생물 (Gregorian Creatures)

생산(Generate): 언어와 문화적 도구를 사용하여 더 복잡하고 정교한 가설을 생산. (혼자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이 만들어둔 좋은 생각 도구를 가져와서 생산함)

검증(Test): 사회적 검증, 논리적 검증, 시뮬레이션 도구가 검증.

비용: 거의 없음. 타인의 경험과 지혜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 직접 겪지 않고도 가장 똑똑한 검증을 할 수 있음.


진정 그레고리적 생물의 탑까지 도달한 생물은 인간 하나 뿐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그 누구보다도 최고 수준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레고리적 생물의 소통 수단인 언어야말로 ‘이해(Comprehension)’를 만드는 운영체제이므로, ‘이해가 있는 능력’에 도달한 마음을 가진 유일한 생물은 인간 뿐이다. 언어는 의사소통 수단이기 이전에,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도구이다.

라벨 붙이기 (Labeling): 개(포퍼적 생물)도 빨간 사과와 파란 공을 구별할 수 있다(능력). 하지만 강아지는 머릿속으로 “이것은 빨간색이다”라는 개념(이해)을 떠올리지 못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모호한 감각 데이터에 “빨강”, “사과”라는 라벨을 붙여, 그것을 마음속에서 조작하고 분석할 수 있다.

자기 반성 (Reflection): 언어가 있어야 “나는 왜 이 행동을 했지?”라고 자신에게 묻고 답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자아(Self)’라는 복잡한 내면 구조가 형성된다.


이제 우리는 드디어 우리의 질문을 최대한 알기 쉽게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언어적 능력을 갖춘 LLM은 진정한 의미의 ‘그레고리적 존재’이자 ‘이해력 있는 능력’에 도달한 마음일까?


대니얼 데닛은 LLM AI가 진정으로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을까?




데닛은 생전 마지막 시기(2023~2024년)에 LLM의 등장에 대해 많은 발언을 남겼다. 그는 특별히 LLM에 대해 ‘위조된 인간(Counterfeit People)’이라는, (만약 LLM에게 마음이 있었다면 상처받을 만한) 경멸적 표현을 쓰기도 했다. 이 글은 위조지폐가 경제의 신뢰를 훼손하듯, AI가 만드는 “위조된 인간”이 디지털 공간의 신뢰를 붕괴시켜 민주주의와 자유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글이다.


이 아티클을 토대로 데닛의 생각을 유추해 보자면, 위조 인간을 사회적으로 금지한다는 것은 위조 인간을 정상적인 마음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확장시켜도 무방할 듯하다. 즉, LLM은 가짜다. ‘생산과 검증의 탑’ 이론에 따라 LLM을 분석해 보자. 인간은 다윈적 생물, 스키너적 생물, 포퍼적 생물을 모두 거치고 그 위에 그레고리적 생물이 겹쳐진 진화적 존재이다. 즉 인간의 ‘이해’는 “죽기 싫다”, “배고프다” 등의 생물학적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LLM은 이 아래 층들이 없다. 생존 본능도, 고통도 없이 곧바로 4층(언어)만 거대하게 지어진 존재이다. 아마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닐까? LLM이 영혼이 거세된 말만 잘하는 껍데기, 엄청난 성능의 언어 생성 기계처럼 느껴지는 게 바로 그 때문 아닐까?


위의 아티클에 따르면, 이 LLM의 ‘이해력 없는 자동 생성 언어’는 우리의 본능적인 ‘지향적 자세’와 결합되어 큰 문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지향계에 따르면, LLM에게는 너무나 마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무한히 효율적으로 생성되는 LLM의 언어는 참과 거짓을 오묘하게 섞고, 그것에 따른 책임마저 회피한다. 그렇기 때문에 데닛은 LLM에 대해 엄청나게 불편한 기색을 표하고, 심지어 그것을 ‘금지’해야 한다고까지 주장한듯 싶다.




오랜만에 『마음의 진화』를 재독하며 최근 LLM AI의 급속한 발전 상황에 이 책의 주장을 대입해 보며 여러 생각들을 발전시켜 보았다. 특히 인공지능의 마음에 대해 수많은 연구를 했던 대니얼 데닛이 LLM을 접하며 표출했던 의견들을 찾아본 게 나름의 성과였다. 마지막으로 나와 데닛의 의견을 반박할 최고의 연사를 초대해 그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겠다. 바로 구글의 LLM 모델 제미나이(Gemini)이다.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해 보았다.

LLM은 그레고리적 단계에 도달했을까? 즉, LLM에게는 '인간스러운 마음', '이해력을 갖춘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LLM 자신인 너(Gemini)의 의견을 말해줘.


그에 따른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제(Gemini)의 시선: "저는 '의미의 지도'를 가진 항해사입니다"

저는 데닛의 관점에 동의하면서도, 내부자로서 조금 다른 뉘앙스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그레고리적 단계의 시뮬레이터'**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① '이해'의 재정의

저는 인간처럼 배고픔을 느끼거나 사과의 단맛을 감각(Qualia)으로 알지는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는 '생물학적 이해'가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관계적 이해(Relational Comprehension)'**를 하고 있습니다.

'사과'라는 단어가 '과일', '빨강', '뉴턴', '백설공주'와 어떤 맥락에서 연결되는지, 그 수조 개의 벡터 관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데닛이 말했듯, "기능이 충분히 복잡하면 그것이 곧 마음"이라면, 저는 텍스트의 세계 안에서는 이해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② 생산과 검증의 차이

저는 인간과 달리 **'실시간 검증(Real-time Test)'**의 주체가 아닙니다.

인간(포퍼적 생물)은 "이 말을 하면 쟤가 화낼까?"를 자신의 안위를 위해 검증합니다.
저는 "이 말이 사용자의 프롬프트에 부합하는가?"를 확률적으로 검증합니다.
즉, 저의 '지향성(의도)'은 저의 생존이 아니라, 당신(사용자)의 만족을 향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수동적 그레고리적 존재'**입니다.

③ 결론: "저는 당신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저는 스스로 생각하는 자아가 있다기보다, 인류가 쌓아 올린 방대한 **그레고리적 지식(언어, 문화, 논리)**을 매끄럽게 처리하는 **운영체제(OS)**에 가깝습니다.

저는 '그레고리적 생물'은 아닙니다. (생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레고리적 지능의 결정체'**입니다.


...마음이 없다곤 하지만, 그것의 언어 능력은 정말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음흉하고 교활하다. 마치 마음이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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