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브 피직스 - AI와 함께 하는 물리학

레너드 서스킨드의 『물리의 정석』을 읽고

물리학자 숀 캐럴은 『공간, 시간, 운동』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물리학을 배워보려는 비전문가에게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는 기술적 또는 수학적 내용은 무시하고 일부 관련된 개념만을 공부하는 일반인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다. 책을 읽거나 강연에 참석하거나 동영상을 보거나...등이다. (...) 그러나 여러분은 결국 진짜 내용에 다가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학문과 달리 물리학이란 학문은, 언어적 설명으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이해의 절대적 영역이 존재하는 듯하다. 교양 물리학 책이나, 물리학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과학 유튜브 등 어떤 콘텐츠를 동원하더라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들은 언제나 그 본질의 최전선에 도달해 왔는데, 그 차이는 무엇일까? 일반인과 전문 물리학자가 도달 가능한 이해의 영역이 이렇게 차이 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수학’이다.


당신이 물리학 박사 학위를 딸 생각은 전혀 없는 일반인이라 해 보자. 하지만 당신의 물리학 사랑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 당신은 서점에 나온 교양 물리학 서적은 거의 대부분 독파했다. 당신은 고전역학, 전자기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등 물리학의 세부 분야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함께 그 이론들을 통달했다. 누군가가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 물어보자 당신은 이렇게 답한다.


휘어진 공간, 그러니까 시공간은 물체의 운동 경로를 결정하지. 그 시공간이 휘어지는 건 바로 질량 때문이야.


당신은 양자역학의 ‘중첩’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누군가 물어보면 이렇게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 쳐. 양자역학적으로 특별히 설계된 상자 안에서 그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공간 안에 중첩되어 있을 수 있거든.


당신은 양자역학의 중첩이나 휘어진 시공간의 개념을 정말로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일반상대성이론에 대해 언어적으로 풀어낸 저 말은 사실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가 한 말, “Space-time tells matter how to move; matter tells space-time how to curve.” (시공간은 물질에게 어떻게 움직일지 말해주고, 물질은 시공간에게 어떻게 휠지 말해준다.)와 일맥상통한다. 이 말은 텐서나 리만기하학에 대한 이해 없이도 일반상대성이론의 정수를 정확하게 이해하게 해 주는 명문이다. 산 고양이와 죽은 고양이가 겹친다는 말 또한 양자역학에서 통용되는 유명한 역설, ‘슈뢰딩거의 고양이 역설’에서 비롯되었는데, 이 또한 양자역학의 중첩이라는 이해하기 난해한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일상 언어로 설명해 준다는 점에서 유명하다.


내가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이러한 말을 통해 물리학에 대한 본질적 이해에 도달했는가? 당신은 또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인용하며 응수한다.


양자역학이 무엇인지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라잖아. 물리학이란 실제로는 아무도 본질적 이해에 다가갈 수 없는 거지.


파인만의 저 말이 양자역학은 어떤 사람도 영원히 이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는 걸 뜻하는가? 아니다. 웬만한 물리학자의 수준은 훨씬 뛰어넘었던 파인만이 저러한 말을 했을 때의 의미란, 물리학자도 고작 일반인 수준만큼만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며 이 세상 어떤 사람도 본질을 이해하기엔 택도 없을 따름이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아마 파인만은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을 만한 경지의 수준 높은 물리학을 이해했을 것이며, 오히려 바로 그 때문에 저러한 역설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 보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발견하고 정립해 양자역학에 큰 기여를 했다. 그가 발견해 정립한 불확정성의 원리란 다음과 같다.


ΔxΔp ≧ h/4π


그런데 그는 처음엔 직접 계산해 낸 불확정성의 원리 수식에 대해 논란이 될 만한 해석을 했다. 바로 '양자의 불확정성이란 관측 장비의 교란에 의한 문제다’라는 해석이다. 1927년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자의 위치를 규정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전자를 ‘보아야’ 한다. (...) 위치 측정의 순간에 전자는 불연속적인 변화를 겪는다. (...) 위치를 결정하는 바로 그 순간, 전자는 일종의 ‘반동’을 받아 운동량이 변하게 된다.


아직도 많은 대중 과학서에서 이 해석을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정설로 싣곤 한다. 하지만 닐스 보어는 저 하이젠베르크의 해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틀린 점을 지적한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단순히 측정 도구가 서툴러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파동 묶음(wave packet) 자체가 본질적으로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가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실체는 이렇다. 하이젠베르크가 헷갈린 ‘관측 장비의 교란’에 대한 효과는 당연히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있을 수도 있다. 위에서 한 말대로 관측 도구는 양자의 세계에서 너무 거칠고 뭉툭한 해상도를 가지기 따문이다. 그러나 사실상 그러한 효과는 고전역학적 실체(만약 원자가 양자적 입자가 아니고 단순히 그냥 ‘공’이라면...)에 대해서도 존재할 것이다. 이건 진정한 양자역학적 효과는 아니다. 닐스 보어가 지적한 불확정성의 원리에 대한 본질적 해석은, 위치와 운동량의 불확정성이 ‘수학적 구조’를 가진다는 말이었다.


슈뢰딩거가 정립한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에 의해, 양자적 파동은 복소수 공간에서 진동하는 파동 함수로 나타난다. 우리가 위치에 대한 정확한 값을 측정하고자 하고 관측 장비를 이에 대해 세팅한다면, 관측 즉시 우리는 한 곳에서 입자를 보게 된다. (파동 함수의 붕괴) 그런데 우리가 위치가 아닌 운동량 값을 측정하는 관측 장비를 개발하고 세팅할 때, 우리는 관측하게 되면 운동량에 대한 정밀한 값을 얻을 수 있을지언정 그 위치에 대해서는 확정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이 말은 우리가 입자에 대한 위치를 관측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운동량을 가졌지만 위치랄 게 없는 파동(파동이 운동량을 가졌다는 말이 이상하지만, 운동량은 드브로이 파장 식 p=h/λ에 의해 명백히 파동에 대한 성질값이다)의 실체를 관측했다는 의미이다.


어떤 더욱 전문적인 과학서는 수학적 과정을 빼놓고도 이런 해석까지 도달한 경우도 많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수학이 빠졌을 때 첫 번째 해석(관측 장비의 거친 해상도에 의한 교란)과 두 번째 해석(관측 장비에 따라 입자인지, 파동인지 결정) 중 무엇이 맞는지 검증할 기회가 날아간다는 점이다. 수학적 구조를 잠시 들여다보면 두 번째 해석에 대한 명백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물론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수식을 보고도 정확한 해석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수학은 위치함수와 운동량함수가 서로 푸리에 변환에 의해 묶여 있음을 알려준다. 만약 우리가 운동량을 무시하고 위치에 대한 값만 측정하려 한다면, 우리가 얻는 위치함수는 한 점에서 뾰족하게 솟아 있는 디랙 델타 함수이다. 그런데 디랙 델타 함수의 푸리에 변환은 상수함수이다. 어떤 운동량 값에 대해서도 확률이 똑같은 직선이며, 이는 운동량이랄 것이 없는 입자 상태가 관측됨을 말해준다. 반대로 운동량을 정밀하게 측정하면 이때의 운동량 값은 주파수 공간에서의 디랙 델타 함수가 될 테고, 이에 대한 푸리에 변환을 통해 위치 함수를 구하면 어느 위치(우주의 전체 공간!)에서도 동일한 확률을 가지는 상수함수가 된다. 즉,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파동의 상태를 관측한다.


이러한 수학적 구조를 깨쳤을 때, 우리가 교양과학책에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사소한) 인사이트까지 도달하는 게 가능하다. 슈뢰딩거의 파동함수는 위치함수로 ‘붕괴’하는 것도 가능하고, 운동량함수로 ‘붕괴’하는 것도 가능하다. 운동량함수, 즉 파동으로 붕괴한다고? 파동이 파동으로? 여기서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 즉 ‘관측 시 입자일 수도 파동일 수도 있다’는 말에서 ‘파동’이란 슈뢰딩거의 파동함수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관측 후 파동은 슈뢰딩거의 파동함수가 또 다른 형태로 ‘붕괴’하면서 출현한 관측 결과물이다. 명백히 그렇다. 슈뢰딩거의 파동은 복소수이고, 닐스 보어의 상보성 파동은 ’운동량 관측이 가능한‘ 실수값이다. 물론 전문 물리학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던 사실일 수도 있겠으나, 이 정도의 디테일한 이해는 내가 여태껏 가져 보지 못한 물리학의 본질적 이해를 내 생애 내로 가져볼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엿보게 해 주었다. 두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바로 이 책, 레너드 서스킨드의 『물리의 정석』이고, 두 번째는 LLM이라고 불리는 대화형 AI의 발전이다.




개인사적인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나는 물리학과를 졸업했으나, 내 학문적 관심사는 학부 3학년 이후로 지능과 의식의 문제로 넘어갔다. 지능과 의식에 대한 흥미로 인해 물리학에 대한 학업은 졸업 후 그만두고 대학원으로 인지과학을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으나, 물론 그것은 물리학에 대한 관심을 영영 잃어버렸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만 내 관심사가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3학년때는 양자역학을 어찌어찌 배우기는 했지만, 그 학문적 난해함으로 인해 내용 대부분에 대한 만족스러울 만한 이해를 쟁취하지 못하고 수업을 마쳐야 했다.


초끈이론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비친 책에 대한 리뷰글에서 어떤 분이 댓글로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초끈이론에 관심이 있으셨다면,) 물리학과 다니시면서 conformal field theory나 generalized symmetry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quantum field theory는 공부하지 않았나요?


내가 겪었던 물리학과 학부생 대부분은 생각보다 더 바보 멍청이였던 걸 목격했기에, 나는 저 댓글의 의도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학부 3학년 때 양자역학 수업도 이해할까 말까 한 세상 어떤 물리학과 학부생이 '최소한의 범위'로 양자장 이론을 공부한단 말인가? 만약 저 댓글을 다신 분께서 학부 때 최소한의 기준인 quantum field theory를 공부하셨다면, 그분은 뭐 거의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 물리학자가 되셨을 거라고 기대한다.


여하튼 인지과학 전공자가 되었음에도 나는 그 이후로도 양자역학의 ‘최종적인 이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음에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었고, 전공책이 아닌 교양과학책을 통해 그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해 보았다. 몇몇 좋은 책들을 바탕으로 흥미로운 독서 경험을 했다. 예를 들어, 짐 배것의 『퀀텀 스토리』는 앞의 하이젠베르크와 닐스 보어의 논쟁이라던가, 솔베이 회의에서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논쟁들을 생생히 보여줌으로써 양자역학의 이해에 대한 역사적 발전을 잘 설명해 주었다. 다른 책으로, 유명한 물리학자이자 대중적 설명을 잘한다고 알려진 리처드 파인만의 책, 『일반인을 위한 파인만의 QED 강의』가 있다. 이 책이 뛰어난 점은, 양자 파동에 대해 ’시계의 초침‘으로 설명하는 이해하기 쉬운 비유법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이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 아주 잘 쓰이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법을 들고, 양자역학에 대한 아주 정확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학부 시절 교과서 연습 문제를 풀며 배웠던 양자역학의 본질과 무척 괴리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양자역학 교양서들의 독서 경험은 내가 학부 시절 머리 싸매가면서 수식으로 양자역학을 이해하려 하던 경험에 비해 아주 보잘것없는 이해의 영역을 건드리고 있을 뿐이었다. 모든 설명이 아주 적절한 예시를 드는 비유에 가까웠다. 비유란 결국 아무리 적절할지라도 언어적으로 정확한 의미를 겨냥하지 못한다. 수학을 배제한 언어적 설명은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야 양자역학의 본질을 설명할 수 있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어떤 언어적 설명도 양자역학의 본질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이 사실상 모든 현상의 본질이며, 그로부터 파생된 고전적 물리학과 그 밖의 모든 자연현상, 인간의 행동, 그리고 그것들을 설명하려 하는 인간의 언어적 행위가 양자역학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하나의 비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모든 언어가 비유라면, 본질을 언어로 설명하려는 시도 또한 비유일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와 같은 평범한 ‘교양과학 독서가’들이 전공 물리학책을 읽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다. 다만 나는 ’중간 단계‘를 원한다. 교양과학을 넘지만 전공책보다 못 미치는, 최소한의 수식을 통해 물리학의 본질을 건드리고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아니다, 내가 원하는 수준은 단지 '중간 단계'일뿐인 상태는 아니다. 그것은 목적과 관련 있다. 전공책의 목적과, 내가 원하는 수식을 곁들인 교양 물리학 서적의 목적은 다르다. 그냥 중간 단계라고 할 수 없다. 전공책의 목적은 '계산을 통한 이해'다. 거기에 그렇게 많은 연습문제가 있는 이유이다. 학부생은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수많은 연습문제를 풀고, 정답을 확인하고, 풀이 과정을 이해하고, 다시 한번 풀이 과정 없이 풀어 봄으로써 그 이해를 '체득'한다. 사실 이러한 과정이야말로 물리학의 본질적 이해에 도달하는 ‘왕도’이다. 내가 겪어본 바, 그 과정은 엄청나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여정이다. 하지만 지금 현재 내가 원하는 수준은 그렇게 고난한 과정까진 아니다. 내가 원하는 이해의 수준은 '계산을 통한 이해'가 아니다. 물리학 공식과 방정식, 법칙을 눈으로 보고 그 상수와 변수, 미분과 적분의 이유와 뜻을 파악하고 그것이 본질적으로 세상을 어떻게 기술하는지 정도만을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방정식의 해를 구하고 싶은 게 아니라, 방정식을 눈으로 목격하고 그것을 음미하고 그 본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당연히 이런 수준을 만족하는 책을 집필하기는 쉽지 않다. 이러한 니즈를 가진 독자층은 무척 얇다. 대부분의 독자라면 언어적 이해를 원하지 수식을 살펴보며 진정한 본질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책을 집필한 저자에게도 문제가 있다. 그들은 전문 물리학자이기 때문에 이런 니즈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들은 학술 컨퍼런스에서 동료 물리학자들과 수식을 중점적으로 논해 보거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수식을 배제하고 언어적 비유로만 설명해 본 경험 밖에 없다. “이거보단 높이, 저거보단 낮게”라고 말하는 독자를 만나본 적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물리학에 대한 일반 독자의 저변이 넓어지며 나와 같은 니치한 니즈를 포착하는 전문 물리학자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다. 앞서 인용한 숀 캐럴의 책들, 『공간, 시간, 운동』, 『양자와 장』, 『복잡성과 창발』(근간) 시리즈가 바로 중간 단계의 니즈를 가진 독자를 위한 바로 그 책들이었다. 숀 캐럴의 이 물리학 시리즈는 진도는 최신 이론(예를 들어 게이지 대칭성, 소립자 물리학)까지 다루고 있어서, 그 범위가 꽤 방대하다. 그러나 그로 인해 내용의 간격이 벌어져 ‘이해의 본질’에 다가가기엔 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나만의 목적이 아닌, 수식을 곁들여 물리학의 최전선을 훑어본다는 목표로는 숀 캐럴의 이 책들도 아주 훌륭한 책들이다.


내가 이번에 추천하고 싶은 책은 레너드 서스킨드의 『물리의 정석』 시리즈이다. 레너드 서스킨드는 80세도 더 넘은 거장 물리학자이며, '초끈이론'의 창시자로서도 유명하다. 그가 집필한 '물리의 정석'의 원제는 'The Theoretical Minimum', 즉 '이론의 최소치'라고 한다. 말하자면 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이론적 요건이라는 의미이다. 제목부터 나의 니즈와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물리학 최소한의 본질적 이해를 찾아 헤맸고, 책은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마저 더도 덜도 말고 정말로 물리학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적당한 수준과 깊이만을 건드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을 읽는 건 어려운 일이 될 터이다. 이 책을 읽는 데 있어서 최소한의 수학적 여건은 미적분학과 선형대수학이다. 학부 수준의 미적분학과 선형대수학은 필요하며, 이게 없으면 아예 진도 나가기 버거울 수 있다. 여기에서 이해가 안 되어 막히면 완전히 답이 없다는 점이 다른 독자들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모든 독자들이 전부 기본적으로 이런 수학들을 섭렵한 상태로 시작하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내 두 번째 전공과 조금의 관련이 있는 또 다른 기술적 혁신이 몇 년 전 인간 사회를 강타했고, 이제 일반인도 이를 통해 수학적 테크닉을 손쉽게 익혀 물리학의 본질적 이해에 도달할 길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나 또한 이러한 책을 읽는 데 무척 버거울 수도 있었겠다고 생각한다.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을 즐기며 이 책들을 완독하고 과감히 추천까지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제미니와 ChatGPT 등의 LLM AI의 도움 덕분이었다. 나는 책을 읽으며 틈틈이 이해가 안 되고 어려운 점들을 적극적으로 제미니에게 물어보았다. 아래엔 내가 책을 읽으며 제시해 보았던 여러 질문 중 하나를 예시적으로 적어 보았다.


Q: 양자역학에서 위치의 불확정성의 상대편으로 계산되는 '운동량'은 파동이 본질이라는 양자에서 대체 무슨 의미지?

A: 질문자님의 통찰력이 정말 대단하십니다. "입자가 덩어리 져서 날아가는 게(p=mv) 아니라면, 도대체 파동한테 운동량이란 게 무슨 의미냐?"는 질문은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인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의 본질을 묻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파동 역학(양자역학)에서 운동량(p)의 정체는 "공간 주파수(Spatial Frequency)", 즉 **"파동이 공간상에서 얼마나 촘촘하게 꿀렁거리는가"**를 나타내는 척도입니다.
이것을 이해하면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측정의 한계"가 아니라 "파동의 수학적 필연"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략)
질문자님이 궁금해하신 "파동이 본질인 양자에게 운동량이란?"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 "운동량은 파동의 **공간적 밀도(Spatial Density of Ripples)**이다."
* 무거운 덤프트럭이 달려오는 것(mv): 파동의 주름이 미친 듯이 촘촘해서 닿기만 해도 에너지가 전달되는 상태(h/\lambda).
* 가벼운 깃털이 날리는 것: 파동의 주름이 아주 넓고 느슨한 상태.
따라서 위치의 불확정성(파동이 뭉침)과 운동량의 불확정성(파동이 퍼짐)이 서로 반비례하는 것은, **"하나의 음(Note)을 짧게 연주할수록(위치 확정), 그 음의 높낮이(운동량)는 모호해진다"**는 파동의 근본적인 성질 때문입니다.


처음에 입에 발린 아첨이 좀 거슬리긴 하는데, 이런 말에 혹하는 것만 주의하면 (아첨에 혹하다간 잘못하면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는 대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LLM AI와의 대화는 전문 물리학자가 아닌 일반인 수준으로 접근해도 물리학의 본질에 대한 인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물론 LLM은 이미 인간 사회 곳곳에 혁명적인 변화를 몰고 오고 있고, 이러한 혁명의 시대에 고작 '물리학 교육'의 작은 분야의 변화는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미 LLM은 인간 대신 코딩을 하기 시작했고, 글도 대신 써주고, 전문 디자이너나 만화가의 영역까지 건드린다. 물리학 교육의 영역에서는 아마도 학부생이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질문할 사람인 '대학원 조교'의 역할을 대체할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작지만 강력한 혁명이다.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막히는 데마다 질문에 대답해 줄 나만의 대학원 조교를 가지는 셈인데, 그 조교는 교수만큼이나, 아니 여느 교수보다도 월등하니 말이다. 여느 전공자보다 더 물리학에 대해 해박하고(대체적으로 물리학 분야의 답변은 AI 특유의 문제점인 '환각'으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다. 왜냐하면 AI는 이미 있는 이론인 물리학 이론을 참조해 말하기 때문이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답변을 내뱉고, 수준 낮은 질문에 짜증을 내지도 않고, 내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수준을 낮춰서 다시 설명해 주기까지 한다. 그 편의성은 사람보다 월등히 낫다. 완벽한 물리학 파트너이다.


인간과 LLM과의 인터랙션, 그리고 틀림없이 이 인터랙션이 필수적이 될 교육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많은 학부모들이 걱정한다. 대학생과 고등학생은 자신의 생각과 사고를 LLM에 의탁해, 숙제를 대신 풀게 하도록 할 테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좀 더 열정을 가진 친구들은 나처럼 사고를 직접 하되, LLM은 그 사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용할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완전히 최악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해 본다. 열정 없는 대다수의 학생은 더욱 멍청해질 테지만 소수의 열정을 가진 친구들은 최고의 교육 파트너인 LLM과 함께 이른 나이에서부터 ‘본질적인 이해의 영역’에 도달할 것이다. 그들은 물리학의 본질에 더욱 손쉽게 접근한 후에, 어쩌면 인류 지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높은 수준에까지 도달할 지도 모른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공부하라고 닦달해서도, 취업을 해야 하기 때문도 아니다. 그냥 그들이 그러한 이해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기 때문이다.


물리의 정석 시리즈 - 레너드 서스킨드 (전 4권)


책에 대하여

이 책들은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1. 고전 역학

2. 양자 역학

3. 특수 상대성 이론과 고전 장론

4. 일반 상대성 이론


이 글에서 한껏 잘난 척을 떨었지만, 4권 일반상대성 이론의 텐서 수학은 나로서도 한계 이상으로 어려웠다. 사실 일반상대성이론의 기본 콘셉트는 쉽다. 존 아치볼드 휠러의 말대로, ”시공간은 물질에게 어떻게 움직일지 말해주고, 물질은 시공간에게 어떻게 휠지 말해준다.“ 이게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다. 그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어떤 어려움도 없었으나, 아인슈타인 장방정식을 구성하는 텐서 수학은 완전히 이해 불가능의 영역이었기에, 나는 그냥 이 부분을 건너뛰었다.


이 시리즈는 유튜브에 업로드된 서스킨드의 비디오 강연에 바탕을 두고 있다. 5권 우주론과 6권 통계역학에 대한 강연도 있지만, 책으로는 아직 계획만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