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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고

탈출속도와 원자번호를 이해하고 읽는 외계인 신파극

앤디 위어의 『마션』은 "아무래도 좆됐다.(I'm pretty much fucked.)"라는 첫 문장으로 『1984』나 『뉴로맨서』와 함께 '첫 문장이 유명한 소설'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 게다가 명감독 리들리 스콧에 의해 영화화되기까지? 소설 하나 써서 대박도 나고, 영화화되어 판권도 쏠쏠하게 챙겼다고? 부럽다.


『마션』은 많은 장점을 가진 소설이다. 하드 SF인데 유쾌한 유머를 함유했고, 판타지스럽지 않고 현실적인데 그 현실적 기반이 집요할 정도로 고증을 지키며 이뤄졌으며, 과학 이론을 설명해야 하거나 계산해야 할 일이 생기면 등장인물들은 학교 선생님이나 된 것 마냥 열심히 그에 대해 설명한다. 읭? 설명하는 게...장점이라고? 그러한 '장점'으로, 엄청나게 많이 팔리고 영화화까지 된다고? 이 무슨 무시무시한 장점이란 말인가?


그 후로 앤디 위어는 두 권의 장편소설을 더 냈는데, 두 번째 소설 『아르테미스』는 유쾌한 유머가 빠져서 재미 없다는 얘기 들었다. 나는 읽어보지 않았다. 대신, 세 번째 책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읽었다. 마션 읽었을 때 그 감성 그대로였다. 헐리우드식 유머, 현실적인 세계관, 고증에의 집착. 등장인물의 열성적인 설명. 심지어 주인공이 아예 설명충 과학 선생님이다. 이론 설명하는 걸 매우 좋아한다. 기회만 있으면 탈출속도, 원자번호, 공기의 구성 성분을 설명하려고 한다.

Project Hail Mary - Andy Weir

앤디 위어의 이과적 감성은 왜 잘 팔리는가? 고증이 뛰어나서? 내 생각에는 아니다. 고증이 뛰어나지 않은 소설도 가끔은 잘 팔리니까. 아니, 사실 잘 팔리는 소설의 대부분은 이정도로 고증에 뛰어나지 않다. 물론 때로는 『마션』처럼 '고증이 뛰어나다'는 것을 마케팅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그럴 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사실 마션 만큼 철저한 고증에 바탕으로 했다기엔 좀 부족한 느낌이다. 아무래도 지능 있는 외계인과 함께 핵융합하는 외계 미생물을 처치하는 내용이니까.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비활성 기체인 '제논'을 이용해 만든다는 일종의 수지인 '제노나이트'어떻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 우주선의 공전 궤도는 그렇게 공들여 자세히 설명해 놨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외계의 기술이므로 설명할 필요 없다고 보기엔 빠져나간 구멍이 절묘하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소재인 '아스트로파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핵분열도 핵융합도 아닌, 질량 모두를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미생물이 생화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무리 읽어 봐도 알 수가 없다. 일종의 '그런 것이 있다고 가정하자'인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해 불만은 없다. 어찌 보면 『마션』도 그런 면모가 있다. 우리는 화성에 유인우주선을 보내는 방법을 모르지만, 작품 내에서는 그냥 '그럴 수 있다고 하자'라고 말한다.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작품 내에 가장 중요한 '아스트로파지'와 '제노나이트'가 너무나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있다고 '치기'에는 밸런스가 붕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션』은 '화성에 갈 수 있다고 치자'는 주장에 대해 별 불만이 없다. 그건 몇 년이나 몇십 년 후에 일어날 만할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질량을 상대론적 에너지로 모두 뽑아 쓰는 미생물은 솔직히 말해서, 언젠가 이 세상에 진화해 나타날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완벽한 강도에 쉬운 제조법으로 소개된 '비활성 기체'로 만드는 제노나이트도 마찬가지이다. 왜 비활성 기체로 만드는 것으로 작가가 설정했을까? 왜냐하면 인간이 애초에 안된다고 생각해 건드려보지도 않은 비활성 기체가 구멍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과학적 고증에 대한 나의 평가는 『마션』보다 한 수 아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고증이 작품의 재미와 판매량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설명충이라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쓴 습작들 중 대부분이 '설명적이라서 소설적 재미가 부족'하다는 평을 많이 받는다. 내가 쓴 글은 설명이 한바닥이라 안팔리고 앤디 위어의 글은 등장인물들이 이론을 설명하려고 안달났는데 잘팔린다? 진짜로 설명적 요소가 재미의 요소가 된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내 설명하는 문장과 앤디 위어의 설명하는 문장의 질적 차이는 무엇일까?


솔직히 웬만한 설명충 SF가 나한테는 존잼이긴 하지만, 이 작품의 설명 요소는 나님이라도 지칠 만큼 과도하게 많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맨날 일 터지고, 그 일 해결할려고 고민하다가 실험을 세팅하는데(물론 실험은 대조군과 실험군을 꼭 분리해야 한다) 그 실험에 필요한 장비와 재료는 전부 다 있고, 가설은 수립하는 족족 다 맞고, 나중에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아 그래, 또 일이 터졌다고? 잘 해결하겠지 뭐." 그리고 설명 부분을 건너뛰고 읽다.


그러므로, 설명충 캐릭터 역시 재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스포일러 주의

그럼 역시 유머코드일까? 그럴 지도 모르지. 온종일 외계인과 시시덕거리면서 위험을 헤쳐 나가는 스토리엔 전반적으로 『어벤저스』에서 많이 보던 식의 헐리우드 유머 코드가 깔려 있다. 지구가 멸망에 처해 있지만, 주인공과 외계인 콤비는 언제나 신나게 노래를 하면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한다.


헐리우드 스타일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조연 외계인은 지구인에게 친근할 정도로 우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성취에 기뻐하고 헤어질 때 아쉬워한다. 그리고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길 마다하지 않는다. 외계인이 이렇게 지구인이 보기에 친근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너무 억까 같다고? 아니, 나는 까는 게 아니다. 단지 이 소설인 전형적인 헐리우드 식임을 얘기할 뿐이다. 『스타 워즈』에서 보듯이 지금까지의 헐리우드 외계인들은 인간과 같은 공기로 숨쉬고 비슷한 발성 체계와 문법을 공유하는 언어를 사용하기에, 이 작품에서 그린 외계인과는 전혀 달라 보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작품에서 드디어 하드SF의 장르적 특성의 테두리 내에서 헐리우드가 원할 만한 외계인 상의 경계점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스타 워즈』의 외계인과는 전혀 비슷하게 보이지 않지만, 이정도면 외계인과의 우정을 영화화해줄 만 하지 않나?


스토리 진행도 흥미진진하다. 주인공은 기억도 없이 우주선에서 깨어난다. 궁금증이 몰려온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기억을 일부러 잃게 하고 우주선에 탑승하도록 했기 때문에 이 설정은 좀 작위적이다.) 중학교 과학 선생의 짬밥으로 보이는 태양의 흑점과 자전 속도를 막 계산하더니,  우주선을 타고 태양계가 아닌 다른 항성계에 와 있음을 알아차린다. 작품 전반적으로 이런 위기 상황을 그려 내는 실력이 능수능란해, 나중엔 지칠 정도다. "아 그래, 또 일이 터졌다고? 잘 해결하겠지 뭐."


생각해 보면 『마션』도 그랬다.  "아무래도 좆됐다.(I'm pretty much fucked.)"라는 대사를 맨 처음 접한 독자는 이 화자가 왜 좆됐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 된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도 그렇다. 초반의 집중력은 최고다. 다만 후반부에 일부러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 같은 작위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고, 그걸 또 "나는 과학에 대해 졸라 잘 알아"라며서 또 설명설명해서 해결하는 게 너무 많이 나와서 좀 지루하긴 했다.


결말은 반반이다. 진짜 외계 행성에서 그렇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반신반의했지만, 어쨌든 외계행성을 방문해 외계인과의 그 눈물나는 우정을 지속하는 건 참신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 지구로 귀환해 위대한 영웅으로 등극한 후에 "이 년이 날 억지로 우주선에 태웠으니,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스트라트 썅년에게 복수하는 쾌감도 재미있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트라트는 썅년 아닙니까?) 그래도 신파극은 킹정이니까. 그들의 우정 영원히 지속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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