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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 심리, 사회, 문화]의 진화론

케빈 랠런드와 길리언 브라운의 『센스 앤 넌센스』를 읽고

제목이 심히 심심한 『센스 앤 넌센스』는 진화론에 대한 책이다. 특히 인간의 행동, 심리, 사회, 문화를 다루는 진화론의 여러 분파들을 다룬다. 많은 사람들은 진화론이 곤충과 공룡과 포유류(와 식물과 곰팡이와 박테리아 등등)를 다룰 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또한 인간(과 침팬지와 유인원과 원숭이)의 진화도 다룰 수 있다고 알고 있지만, 인간의 행동, 심리, 사회, 문화까지 다룰 수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아니라고? 진화심리학에 대해 알고 있다고? 그렇다면 좋은 출발이다. 진화심리학은 (많은 편견과 오해를 품은 채) 이미 대중에게 알려져 있으므로, 이 책 또한 진화심리학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할 것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진화심리학은 진화론의 다섯 분파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진화심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읽게 된 사람들은, 진화심리학의 방법론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진화론에 입각해 인간의 "행(동)·심(리)·사(회)·문(화)"을 다룰 수 있다는 데 놀랄 것이다. 진화심리학이 킹왕짱이 아니란 말씀.


물론 애초에 '인간은 진화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면 이 책을 읽을 자격이 없다. (분명 교회에서 주장하는 이야기들을 늘어놓으면서 합의가 안될테니) 의외로 '문화는 진화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진화심리학에서도 종종 이런 주장들이 나왔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유전자는 느리게 진화하고 문화는 빠르게 변화하기 때문에 진화론을 적용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진화심리학에는 '밈(meme)'이라는 문화전달자를 통해 빠르게 진화한다는 주장도 있고, 또 이 주장에서 또 안티테제로 '밈은 수평적 유전자 전달이나 라마르크식 전달로 진화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윈식' 진화가 아니라고 주장도 있다. 이 모든 "행·심·사·문"에 대한 진화론은 진화심리학 밖에서도 다양하고 복잡하며 얽혀 있다.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이런 '사소'하고 '대중적'이지 않은 모든 학파 간 논의를 교통정리해 주는 매우 의미있는 책이다.


이제부터 이 책에 따라서 인간의 '행·심·사·문'를 다루는 진화론의 다섯 분파를 소개한다. 진화심리학에 대해 말을 제일 먼저 꺼냈으므로, 책의 순서와는 상관없이 진화심리학 먼저.



진화심리학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이 진화했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발전된 학문이다. '심리가 진화했다'는 가설은 지금까지 '형태'나 '행동'의 진화를 다뤘던 진화생물학에서는 크게 다뤄지지 않았던 주장인데, 오직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분파에서만 원시적인 형태로 '심리가 진화했다'는 기본 가정을 수용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니까 진화심리학은 사회생물학의 후계자인 셈이다.) 사회생물학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또 말해 보고, 진화심리학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큼직한 가정을 공리로 가지고 있다.


1. 심리적 메커니즘은 진화적 적응(adaptation)이다.

2. 인간이 주로 직면했던 진화적 환경은 석기시대(신생대 제4기 플라이스토세)이며, 우리의 심리는 이 때의 적응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

3. 인간이 진화할 당시에 우리 조상들은 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심리적 메커니즘을 잡다하게 진화시켰다. (즉, 만능 튜링 머신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탕의 단맛에 미친 듯이 탐닉하는 심리가 설탕이 풍부한 현대사회에도 작동하여 때로 비만이 되어버리는, 석기시대에 진화한 생물이다.


진화심리학이 너무나 성공적이었던 나머지, 진화심리학에 대해 몇 권 읽어보고 아는체 하는 교양과학책-리더들이 양산된 것은 진화심리학의 어두운 면이다. 이들은 때로는 진화심리학에서 심도 깊에 연구된 주제인 듯이 '인간의 심리적 기원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럴 듯하게 꾸며낸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여러 사람들에게 들려준다.  "인간이 이런저런 심리를 가진 이유는?"이라는 질문에 대해, 일반인들도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이런저런 진화심리학적 '가설'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가설 검증은 어렵고 복잡하고 귀찮은 문제다. 진화심리학이 학계에서 인정받는 방식은 심리통계 방법론을 이용해 정밀한 가설검증을 통과하는 방식이지만, 복잡한 방법론은 이들에게 그리 흥미가 없다. 『센스 앤 넌센스』의 저자들은 진화심리학에 대한 비판이 사실은 진화심리학 논문보다는 이 교양과학책-리더들이 인터넷에서 제기하는 뇌피셜 가설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말하며, 이런 비판에 대해 진화심리학을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한다.


사회생물학

사회생물학은 진화심리학의 프로토타입 같은 분파이다. 개미의 사회성을 연구하던 에드워드 윌슨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바탕에는 조지 윌리엄스, 로버트 트리버스, 존 메이나드 스미스의 '유전자 관점 진화론', 그리고 이들 이론을 집대성해 자신만의 '이기적 유전자' 해석으로 녹여낸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가 포함된다.


위에서 언급한 진화심리학의 불행은 사회생물학도 포함된다. 애초에 그 불행의 씨앗이 여기에서부터 잉태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진화심리학의 엄밀한 심리통계학적 방법론을 적용하지 못했던 사회생물학 연구자들, 특히 에드워드 윌슨은 그의 저서 『사회생물학』에서, 인간의 심리에 대한 '상상력 풍부한 그럴 듯한 진화론 가설'을 남발해 사람들의 반감을 샀던 것이다. 그 당시 비판적이었던 사람들은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사회생물학 연구자들이 마치 인종차별을 옹호하고 있으며, 인간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합리화한다고 비판했다. 솔직히 이 비판은 과도한 감이 있다. 사회생물학(과 진화심리학)은 인간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절반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그게 그거 아니냐고? 나머지 절반의 주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어쨌든 유전자가 우리에 큰 영향을 준다는 건 당연한 사실 아닌가?)


인간행동생태학

사회생물학-진화심리학으로 이어진 연구 패러다임과는 다른 방법론으로, 진화론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인류학에서 진화론 방법론이 결합되어 인간행동생태학이 탄생했다. 단어에도 드러나듯이 진화심리학의 '심리'는 이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들은 인간의 행동이 더 중요하므로 연구 목적 자체가 다르다.


예를 들어 티베트인들이 왜 일처다부제를 가지고 있는지를 연구한 논문이 있다. 이들은 여러 명의 형제들이 한 여성과 결혼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결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 좀 힘들지만, 말하자면 인간의 결혼이라는 관습이 인간이 처한 특별한 환경(티베트인들에게 처한 특별한 환경은, 농토가 작을 경우 형제들의 가족 구성과 재산 분배 방식이다.)에 의해서 변형된다는 것이다. 티베트인은 모두가 공평하게 아버지가 될 기회를 가짐으로서 동생에게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진화심리학과 인간행동생태학의 차이점은 이들의 진화론은 사실상 '유전자의 진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진화심리학의 진화는 우리 안의 유전자의 코드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진화였다. 그러나 인간행동생태학에서 무엇이 진화한다고 할 때, 이 '무엇'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티베트인들이 일처다부제를 채택한 이유는 유전적 본성 때문이 아니다. 다만 특수한 문화적 환경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진화심리학 연구자들은 '진화'를 연구하지 않는 진화론 학문이 가치있는지를 묻지만, 인간행동생태학자들은 단지 이런 걸 연구하고 싶다면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진화론

사실 문화진화론 자체도 사회심리학-진화심리학의 대부 격인 리처드 도킨스로부터 출발하였다. 그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밈(Meme)이라는 이름을 붙인 문화전달자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로부터 많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이 밈 가설을 바탕으로 '문화도 진화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를 가진 새로운 학문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 미메틱스(memetics)라고 이름붙은 이 학문은 불과 몇년 후, 연구의 가치가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불행히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세기의 교양과학서가 된 『이기적 유전자』만을 열심히 본 대중들에게는, 밈 개념은 아직 활발히 연구되고 가치 있는 과학 주제가 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밈이란 급속도로 퍼지는 인터넷 짤방이다)


미메틱스의 종말 이후, 실제로 문화에 대한 진화 연구를 발전시킨 사람들은 인류학자 쪽이었다. 그들이 미메틱스에 영향을 아예 안 받았다는 것은 거짓말이겠으나, 실제로 그들이 더 큰 영향을 받은 것은 1970년대 발달한 문화변동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 방법론이었다. 또한 그들은 미메틱스보다는 단지 고전적인 진화론에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문화진화론이 탄생했다. 이들이 연구하는 주제인 '문화의 진화'에 대한 사례는 언어의 변화, 아기가 처음 태어날 때 붙이는 이름의 변화, 애완견의 품종 변화 등이다.


어떤 이들에게 (특히 통합적 관점으로 '문화'를 다루던 인문학 문화 전문가들에게) 문화진화론이 다루는 문화는 너무 단일하고 협소해 문화 같지도 않게 느껴진다고 한다. 또한 미메틱스의 망령이 아직도 남아 있는 진화심리학자들에게도 문화진화론은 마치 수평적 유전자 전달처럼 느껴진다. 문화는 진화의 계통이 엉망으로 뒤섞여 버리고, 또 밈이 진화론에서 상정하는 것보다 더 빨리 변화해서 밈을 추적하기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하고 싶은 말은, 또다시 '이것은 진화라고 할 수 없다'가 될려나?)


유전자-문화 공진화론

문화가 진화한다면, 유전자와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진화심리학자들도 이런 생각을 안해본 건 아니지만, 그들은 유전자는 너무 느리게 진화하고, 문화는 너무 빨리 진화하기 때문에 둘이 영향력을 주고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이 가설을 조기에 기각해 버렸다. 그러나 최근 유전자가 빨리 진화할 수도 있고, 문화도 생각보다 오래 변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유전자-문화 공진화란 인간의 문화에 맞게 유전자의 진화가 촉발된다는 주장이다. 대표적인 연구는 낙농 문화의 발달에 따라 인간이 젖산을 소화시키는 유전자를 간직하게 되었다는 카발리-스포르차의 논문이다. 언뜻 듣기엔 간단하게 느껴지지만, 실제로 유전자-문화 공진화 연구자들은 복잡한 수학적 모델링을 주요 연구 방법론으로 사용한다. 진화심리학과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바로 이 복잡한 수학적 모델링을 주요 연구 방법론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한다면, 진화심리학은 앞으로도 더 복잡한 수학적 모델링 연구 방법론을 이용해 더 좋은 연구결과를 뽑아낼 가능성이 있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유난히 반대했던 과거의 역사적 발언들과는 반대로, 『센스 앤 넌센스』의 저자들은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야말로 '아직 탐구되지 않은 위대한 과학 영역 중의 하나임을 확신하며, 앞으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시대가 오리라는 것을 한순간도 의심치 않는다'고 말한다.




진화론의 다섯 자식은 결국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방법론이 절대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것이 없으며 연구 성과들도 상호보완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심·사·문에 대한 진화론은 앞으로 이 다섯 분야의 통합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인식을 살펴볼 때, 진화심리학이 대중적으로 성공했던 나머지 나머지 네 분야 (사회생물학이 진화심리학과 사실상 동류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세 분야)의 교양과학 출판/번역이 약간은 덜한 경향이 있기는 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대로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은 넌센스라고 생각했으니까. 학계의 논문을 읽을 시간도 지식도 없는 교양과학-리더에게 이 책과 같은 '균형 잡힌 관점'이 정말로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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