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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의 가치, 지구의 증명

리처드 포티의 『살아있는 지구의 역사』를 읽고

『브레이킹 배드』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한 등장인물은 다리를 다쳐 집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자, 취미로 돌 수집을 시작한다. 움직이지 못하는데 무슨 돌 수집이냐, 그건 돌아댕기면서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데, 요새 인터넷을 우습게 보고 하는 소리다. 그는 모든 돌 샘플을 아마존을 통해서 구입한다. 놀라운 수집의 시대가 열렸다. 물론, 돌 수집은 생각보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므로, 세계 곳곳의 자연사박물관에서 우리는 각종 돌멩이 수집품을 구경할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이 없던 시절, 돌수집가들은 직접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수집 목록을 만들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왜 돌이 관심을 가질까? 땅에 그냥 굴러 다니는 '흔해 빠진' 물건 아닌가. 우주를 사랑하면 별을 관측하고 생명의 신비에 빠진 사람이 곤충 수집이나 식물 표본 채집을 하기도 하며, 취미로 적분 문제를 퍼즐 풀듯이 푸는 사람도―사실 이것도 문과생들에게는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있다. 다들 나름의 적당한 이유가 있다. 신비로워서, 아름다워서, 비밀을 풀고 싶어서. 그런데 돌이라니, 고작 돌멩이에 어떤 신비가 있단 말인가?


만약 지구가 완벽하게 동일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 보자. 지구는 완벽하게 평탄하고, 물은 흐르지도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그 지루함의 연속체에서 우리는 아무런 신비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우주가 완벽하게 균일한 공간이라고 해 보자. (그렇다면 우리 인간도 남아있지는 못할 것이다) 확실히 이 우주는 재미없는 우주가 될 것이다. 역시 어떤 신비로움도 없는 지루한 과학교실이다. 중력이 있어서 물체가 뭉쳐 있고, 전자기력이 있어서 서로 끌어당기거나 밀쳐 내야 뭔가 할 맛이 생긴다. '땅'도 마찬가지다. 돌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애초에 땅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특별한 불균일성을 발견했다. 놀라운 관찰력이다. 그들에게 경외감이 생기는 순간이다.


장차 지질학자가 될 '돌멩이 수집가'의 노트엔 땅의 불균일성에 대한 목록이 쌓인다. 서로 다르게 생긴 돌이 발견된다. 땅엔 서로 다른 금속도 묻혀 있다. 땅 위엔 물이 흐르고 바다로 모인다. 땅의 높이는 서로 다르고 이것이 물이 흐르고 바다가 만들어지는 원동력이다. 화산이 갑자기 부풀어오른다. 높은 땅은 그냥 높은 것이 아닌, 일직선으로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 때론 지진이 일어나 땅이 솟아오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목록을 쌓아놓기만 하면 뭐할건가? 불균일성은 설명되어야 한다. 천문학도 별과 진공의 불균일성을 중력으로 설명했다. 지질학자는 여러 설명들을 시도한다만, 여러 다른 과학 분야에서 증명했듯이 단순하고 짧은 이유일 수록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목록들을 하나씩 하나씩 설명하는 수많은 조무래기 가설들은 아름답고 심플한, 모든 목록을 설명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론에 자리를 내 주었다. 판구조론이다.


Richard Fortey - The Earth: An Intimate History, 구판, 개정판

판구조론의 탄생은 돌멩이 수집같이 시시하게 보이는 지질학이 완벽하게 통합된 하나의 과학 분야로 발돋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 정도의 탄탄하고 정합적인 과학 분야-이론 쌍은 물리학-뉴턴역학, 물리학-상대성이론, 물리학-양자역학, 생물학-진화론, 우주학-빅뱅이론에서밖에 이루지 못했다. 지질학은 이 네 번째 과학 분야이다. 심리학은 아직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며, 여타 다른 사회과학들도 마찬가지다.(그렇다고 과학이 아니란 것은 아니다)


판구조론이 정말 지구 위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기도 하고,아니기도 하다. 돌멩이 모양이 다른 것은 유동 상태로 있던 암석들이 식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때때로 금속이 발견되는 것은 금속과 암석의 어는 온도가 다르고, 암석이 식을 때 틈이 생겨 액체 금속이 그 틈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땅의 높이가 다른 이유는 땅 아래 판이 계속 움직이고 위로 솟구치거나 아래로 꺼지기 때문이다. 산맥이 형성되는 이유는 대륙이 부딪치기 때문이다. 어떤 질문은 아직 설명하지 못했지만, 판구조론이 완벽하게 정합적이라면 이것들도 동일한 패러다임 내로 설명될 것이라고 믿어진다.


잠깐, 대륙이 부딪친다고? 그렇다. 판구조론은 이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역사성에 대한 과학이다. 허블은 빛의 스펙트럼 편향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반대로 생각하여 우주가 big bang했다는 이론을 만들었다. 다윈은 생물들의 다양성과 유사성으로부터 진화론을 이끌어냈는데, 이것을 거꾸로 거슬러 생각하면 생물의 뿌리가 같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빅뱅이론과 진화론은 역사성에 대한 과학이다. 판구조론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는 대륙이 움직인 경로를 역추적하여 질문 목록에도 없는 사실까지 밝혀낼 수 있다. 대륙은 원래 하나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시 한번 소박하게 돌을 모으는 수집가를 생각해 보자. 아마존이 인터넷 쇼핑몰이 아닌 남아메리카의 거대한 열대우림이었던 시절에, 수집가는 남아메리카의 돌을 살펴보기 위하여 직접 아마존 밀림을 갈 수밖에 없다. 리처드 포티의 책이 낭만적인 여행기로도 읽히는 까닭이며, 그의 책 『살아있는 지구의 역사』는 찰스 다윈의 항해기와 비슷한 세계 일주를 통한 과학적 성찰의 기록이기도 하다. 책에서 느껴지는 낭만적 필체는 과학적 냉철함만을 무기로 한 사이언티스트들에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곧 이 아름다운 여행기에서 사소한 돌 한조각의 무늬를 설명하려는 시도가 판구조론이라는 거대하고 경이적인 퍼즐을 풀기 위한 필사의 한 조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그는 이 책의 진가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15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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