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에서

다툼의 현장

by 워타보이 phil

대부분의 사람이 연말에는 한 해를 돌아보고 연초에는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고 준비한다. 조금 식상하고 뻔한 반복일 수 있지만 마무리와 시작만큼 중요한 일도 없는 것 같다. 나의 한 해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좋을 일이라 할 것 까진 없었던 것 같고 특별히 안 좋은 일도 없었다. 무난하다고 할 수 있는데 많이 심심했던 2019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심심한 가운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게 하는 일들도 있었다.


가장 기억나는건 '다툼의 현장'이다. 말려야 할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만 수 차례 그런 현장을 지켜보면서 피로하기도 했고 고단한 우리 일상의 한 모습인 것 같아 슬프기도 했다. 세 장면 정도 떠올려봤다.


가장 먼저는 버스 안이었다. 거의 밤 12시가 다 된 시간 붉은 광역버스를 타고 비몽사몽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 시간 쯤 달려 거의 집에 다 왔을 때 쯤이었다. 버스 기사님과 한 아저씨가 다툼 일보직전인 느낌이 왔다. 뭔 일이지 하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술에 취한 아저씨가 어느 정거장이 오면 좀 알려달라고 했는데 기사 아저씨가 무시하고 지나갔나 보다..


술취한 아저씨는 2번이나 말했는데 그거 하나 말 못해주냐며 내가 봤을 땐 화까지는 아니고 서운한? 마음을 토로했고 기사 아저씨는 내가 당신 개인 기사냐며 화를냈다. 거기서 부터 고성이 오갔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린 술취한 아저씨는 내리면서 인신 공격을 했다. 그에 열받은 기사 아저씨는 버스에서 내려 달려갔다. 밖에 나가서는 소리 지를 뿐 아니라 서로의 욕이 오고갔다. 다행히 주먹다짐은 일어나지 않았다. 멱살은 잡았던 것 같다.


두 번째 장면은 도서관에서다. 친구가 정독도서관이라 해서, 예전부터 한 번 가보고 싶은 곳이어서 저녁 시간 쯤에 갔다. 나는 지루해서 간행물실에 가려 했는데 문 앞에서 20대 남자와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다투고 있었다. 역시 큰 소리가 오갔고 도서관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중간에서 난처해 했다. 나는 어색한 모습으로 그들을 지나쳐 간행물실에 들어갔다. 20~30분은 있었는데 나올 때도 씩씩 거리는 두 분을 볼 수 있었다.


젊은 남성은 '이런 제가 이해가 안되시겠지만 예의는 좀 지켜주라'는 말을 했고, 나이가 훨씬 많은 남성은 '그럴수도 있는데 뭘 그렇게 까지 지적질 하면서 민감해 하냐'고 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동네 도서관을 자주 가는 입장에서 예상을 해보자면 나이 많은 아저씨께서 편한 행동?을 계속 했던 것 같다.


세 번째 장면은 엄청난 폭염이 내리던 여름 날의 지하철에서다. 할머니 한 분이 옆에 있는 할머니에게 이야기 했다. '부채질 좀 반대쪽으로 해주세요. 바람이 자꾸 내쪽으로 오네.'


이 한마디에 부채질 하던 할머니가 폭발하셨다. 더워서 내 손으로 부채질 하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는 것이었다. 부채든 할머니는 온갖 욕을 하며 소리를 질렀고, 부채질 반대로 하라고 말한 할머니는 조용하게 한 번씩 말을 했다. 서로의 옆자리에서 말이다. 그렇게 4정거장, 약 10분쯤 더 갔고 먼저 말한 할머니가 내렸다.


이밖에도 다툼의 현장이 참 많았다. 내 일상이 지루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당일에도 며칠 뒤에도 누가 잘못한걸까를 한참 한참 생각했던 것 같다. 결론은 매번 달랐다. 이건 이 사람이 좀 더 잘못한거 아니야? 이런식으로 말이다. 이런 생각을 계속 하는 내가 이해 안갈때도 많았지만 고민을 해볼수록 이런저런 문제의 원인이 생각나기도 했다. 아는 사람과 그 현장들에 같이 있었다면 어떻게 봤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최후의 결론은 그 모든 상황이.


'과연 싸울 정도의 일이었나..'


였다.


분명 누군가가 좀 더 배려하고 타인의 입장도 생각했으면 좋았을 거고, 누군가는 좀 더 유머있게 받아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안타깝기도 했고 나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 현장의 당사자들이 공통적으로는 나이가 대부분 50~60대 셨는데.. 세월의 무게, 인상의 고달픔 같은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제 두 번 더 잠자리에 들면 2020년이 시작한다. 좋은 일도 기대하고 즐거운 일도 많았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내 일상이, 내가 존재해 있는 시.공간이, 우리 사회가 좀 더 넉넉하고 유머와 여유로 가득차있으면 좋겠다. 다툼보다 평화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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