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필의습작

습작 #1. 그녀의 하품

by 워타보이 phil

여자가 하품을 한다. 남자는 그녀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5년을 만나면서 하품하는 걸 한 번도 본 적 없기 때문이다. 요즘 많이 피곤한가 보네,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남자. 버스 안은 평소처럼 조용하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함께 했던 길인데 언제부터 둘 사이에 대화가 사라졌다. 평소처럼 여자가 먼저 말을 걸어온다.


"며칠 전에 아빠 회사에 임직원 가족 행사가 있었나 봐. 엄마가 갔다 오면 항상 좋아하셨잖아. 이번에는 시무룩해서 들어온 거 있지. 선물이 새로 지은 사옥 종이 블록이어서 좀 실망했나 봐. 오늘 그거 맞추다가 왔어."

"그랬어? 오늘 좀 피곤하네."


눈을 감는 남자. 여자는 그의 볼을 손가락으로 몇 번 쿡쿡 눌러보다가 한숨을 쉬며 창문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한 시간을 달려 남자의 동네에 도착했다. 3 정거장을 더 가면 여자의 집. 5년 동안 남자가 먼저 내린 적은 딱 한 번뿐이다. 남자는 이상하게 오늘은 먼저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언제나 남자를 배려해준 그녀이기에 피곤하다고 말한 후 내리려는 남자. 여자가 손목을 꽉 잡으며 얘기한다.

"많이 힘들어? 오늘 꼭 데려다주면 좋겠는데.."


며칠 전, 밤에 집 가는 길이 무섭다고 여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들어갈 때까지만 통화하자고. 남자는 그날도 건성건성 대답했다. 잠깐 그 날을 생각하며 미안함을 느끼는 남자. 곧 여자의 집 앞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추억의 장소다. 단 둘이 처음 만난 곳도, 처음 선물을 교환한 곳도, 시답잖은 농담에 낄낄거리며 걸었던 곳도 모두 여기였다. 익숙한 골목을 지난다. 분위기는 조금 전 버스 안과 다르지 않다. 그리 다르지 않은 오늘이지만 남자는 이상함을 느끼고 있다.


'얘가 오늘 왜 이렇게 나 같지. 말 한마디 없이..'


하늘엔 곧 사라질 것 같은 달이 뾰족둥글하게 살아있다. 남자는 달을 보며 몇 시간 씩 얘기하던 때를 떠올린다. 지금은 말없이 생각만 할 뿐이다. 여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다. 지난주에 웅얼웅얼거리다가 맺지 못한 말이 뭐였는지 물어보려 할 때 집 앞에 도착했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낸다.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그걸로 끝이었다. 5년의 시간도 추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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