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비즈니스 산책> 하수정 저자 책 소개 인터뷰 ('21.1.27)
한 월간지에 실린 ‘스웨덴 구두쇠 영감의 유언’이란 글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얼마 전 지인과 이케아 얘기를 해서였는지 이 회사 창업자 이야기가 흥미롭게 느껴지더라고요. 관련 글을 더 읽고 싶었는데 마침 글 마지막에 필자 소개가 있었습니다.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의 저자 그리고 이메일 주소까지.
도서관이어서 바로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북유럽의 다양한 기업들과 문화 이야기를 보는 것도 즐거웠지만 저자 특유의 유머와 표현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를 꼭 만나봐야겠더라고요. 그래서 다음날 책 소개 인터뷰 요청 메일을 보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여전히 북유럽 이야기로 책을 쓰고 언론사에 활발한 기고 활동하고 있는 자칭 ‘북유럽 덕후!’ 하수정 저자를 그렇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언제부터 북유럽에 관심을 가졌나요?
아주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해요.(웃음) 우리나라는 입시 스트레스가 엄청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때부터 책을 친구로 삼겠단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도서관 책을 다 읽겠단 욕구가 강했죠.
당시에 미국 역사 그리고 존 F. 케네디에 관심이 많았아요. 지금도 그런 면이 있지만, 미국은 살기 좋은 나라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이라 보는 사람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꼭 그런 게 아닌 것 같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눈이 유럽으로 향했어요. 특히 북유럽으로.
- 북유럽에는 언제 처음 가봤나요? 지금도 자주 가나요?
동계 올림픽 개최지로도 잘 알려진 노르웨이 릴리함메르에 1999년 처음 갔어요. 이곳 덴 레이센데혹스콜에서 커뮤니케이션 공부를 했고요. 한국으로 돌아와 신문사에서 일했는데 공부를 좀 더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스웨덴 여행 갔을 때 방문했던 학교가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그래서 2010년 다시 스웨덴 웁살라대학교로 가서 '지속 가능한 발전' 석사 학위를 받았어요. 지금도 2년에 한 번씩은 북유럽에 가고 있습니다.
- 공부하며 여행하며 가장 부러웠던 건 무엇인가요?
자연이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압도적 자연이 가장 부러웠어요. 도시에 살아도 10분, 20분만 가면 숲이 있거든요. 산이 아니라 숲이에요.(웃음)
숲에 가서 버섯도 따고 블루베리도 따고요. 눈이 쌓여있으면 스키도 타고 그랬어요. 어느 사회에 있든 누구나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자연만큼 스트레스에 특효약이 없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죠.
북유럽 국가들 모두 그런 것 같은데 특히 노르웨이는 너무 아름다워요. 영화에서 볼 수 있던 자연들이 내 눈앞에 펼쳐졌을 때 그 황홀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죠.
- 학교 공부를 마치고도 계속 북유럽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이게 참 캐면 캘수록 그 사회에서 뭐가 많이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덕질이라 그러죠? 계속 궁금하고 알고 싶고 함께하고 싶은 그런 거요. 처음에는 공부가 목적이었죠. 정책이나 비즈니스, 가치관 부분에서요. 우리가 가야 할 길이란 생각도 들었고요.
잘 알려진 북유럽 복지 시스템이나 기본 소득 등 우리나라도 도입하려는 정책들이 있는데 먼저 시도한 나라들의 상황이 궁금했어요. 잘 안된 정책들도 있으니 반면교사 삼을 수도 있을 테고.
또 어느 나라나 그렇겠지만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것도 참 재미있고요. 뭐든 토론하고 사회 합의를 지향하는 북유럽 특유의 느림이 있거든요. 한국에 돌아와서 덴마크 기업과 일한 적도 있는데, 예를 들어 한국이면 두 달이면 끝날 일을 반년 넘게 붙잡고 있어야 했어요.(웃음) 그런데도 이 모든 요소들이 저에겐 여전히 매력적이고 흥미롭습니다.
-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에는 패션, 게임,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기업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 중 꼭 소개하고 싶은 곳이 있을까요?
기업은 아니지만 정부 기관인 ‘스웨덴 음악 수출 기구(Export Music Sweden)’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음악 제작과 유통을 돕는 복합지원센터라 할 수 있어요. 재능있는 음악인들과 제작사, 유통업체, 교육 기관 등을 스톡홀름으로 불러 모아 클러스터를 구축한거죠. 1만 5천여 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대부분 1인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에요.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어요. 인구 천 만 명 밖에 안되는 스웨덴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 3대 음악 수출국이라는 것. 1인당 수익을 계산하면 미국보다 두 배 가량 높은 1위에 위치해 있고요.
우선 스웨덴 예술교육이 한몫했다고 봐요. 특히 초등학교 예술교육은 그 비중이 영어와 같거든요. 유명한 댄싱퀸의 아바도 있고 이런 환경에서 팝 음악 히트 제조기로 알려진 프로듀서 막스 마틴도 나왔죠. 마룬 파이브, 백스트리트 보이즈,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프로듀서한 사람이에요. 우리나라 그룹 소녀시대, 레드벨벳의 곡들도 스웨덴 프로듀서가 참여했고요.
이런 교육적 바탕 위에 스웨덴 음악 수출 기구가 재능있는 음악인의 일자리와 수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유튜브도 있고 기술이 좋아져서 누구나 쉽게 음악을 할 수 있다지만 해외에 판로를 만든다든지 저작권 보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같은 복잡한 문제들은 잘 모를 수 있잖아요. 이것들을 국가에서 해결해주는 거죠.
- 우리나라에도 꼭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티스트에게 개인 공간을 지원해주니 대형 기획사가 만든 음악과는 다른 새로운 시도도 많이 이루어지고요. 무엇보다 최고의 복지가 '일자리'라 생각하는데 예술로 일하고 싶은 분들이 돈도 벌 수 있고 소속감도 느낄 수 있으니 참 좋은거죠.
한류가 뜨겁고 BTS, 블랙핑크 등 전 세계적 아티스트의 활약도 눈부시지만 유행이라는 게 언제 꺼질지 모르는 거잖아요. 스웨덴도 아바가 있었지만 이런 조직과 기구를 만들면서 음악 산업에서 확실한 모멘텀을 잡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도 좀 더 건강한 선순환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면 좋겠고 스웨덴처럼 국가가 예술가를 지원하는 방식도 좋다고 봐요.
어쨌든 경제는 계속 발전하고 돌아가야 하잖아요. 자원을 사용해 물건을 생산하는 산업은 환경에 부담을 주는데 음악이나 예술 영역은 자원을 쓰지 않고도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힘이 있고요. 제가 공부한 지속 가능한 발전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 봐요.
-북유럽 하면 떠오르는 복지와 세금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네요. 세금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북유럽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우선 북유럽은 중산층이 두터운 곳이에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적고 중산층이 많은, 그림으로 보면 소득 계층 구조가 다이아몬드 형태일 거고요.
일반적으로 소득에 35% 이상 세금으로 낸다고 해요. 이 사람들도 밑지는 장사를 하고 싶지 않을 텐데 내는 것 보다 받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하니 저항감이 별로 없어요. 아이들 보육비부터 교육비, 학비, 병원비를 지원하고 도서관이든 체육시설이든 마음껏 쓸 수 있죠.
무엇보다 북유럽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자랑스러움’이 느껴져요. 지금의 사회와 시스템을 우리가 만들었다 하는. 북유럽은 오랜 시간 동안 주류 정당이 사회민주당이었어요. 이 당은 노동조합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사람이 스스로 노동자라 생각하고, 노동자인 우리가 이 사회를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는 거죠. 옛날에 왕정도, 신분제도, 빈부격차도, 귀족도 있었지만 우리 노동자가, 대중이 지금의 사회 시스템을 만들었어 라는 자부심. 그래서 정권이 우파든 좌파든 복지 정책을 흔들지 못하고요.
- 큰 소득을 얻는 사람들은 불만이 많을 것 같아요.
당연히 있겠지만 일단 사회 분위기상 밖으로 불만을 표출할 순 없겠죠?(웃음) 그래서 부자라도 티 내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다양성이 있지만, 부자는 자기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어떤 사람은 북유럽을 부자가 차별당하는 사회라 말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보면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토양과 똑똑하고 근면한 사람들을 길러낸 사회/교육 시스템을 언제나 칭찬해요. 이것을 바탕으로 내가 성공한 것이니 우리 사회에 감사하고 어떻게 다시 기여할 수 있는지 고민한다는 모범 답안이 항상 나옵니다.
대표적으로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 있죠. 우리나라로 비유하면 삼성만큼 스웨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가문인데 재미있는 건 스웨덴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나 미국과 분위기가 참 다르죠. 가문의 모토가 ‘Esse non Videri’라는 라틴어 문구인데 ‘존재하기 위해서는 눈에 띄지 말라’(To be, not to be seen)는 뜻이라고 해요.
- 사회적 합의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대화하며 우리나라에 비해 부자들에 대해서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교육 환경의 영향도 있겠죠?
사실 스웨덴에서는 한국 교육을 배워야 한다는 얘기도 많이 해요. 너무 평등주의로 가니까 학업의 하향 평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예를 들어 수업 시간에 공부 잘하고 똑똑한 친구들이 피해 볼 수도 있는 환경이거든요. 모르는 학생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교사는 그 학생들이 이해할 때까지 설명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교육 재정이 국가에서 나오지만 부유한 지역의 부모들은 더 좋은 사립학교를 보내고 싶어하는 상황들도 만들어지고요. 이런 상황 속에서 ‘교육에 왜 시장 자본주의 논리가 들어와야 하느냐’가 이 나라 사람들의 중요 토론 거리가 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남녀차별, 인종차별 등의 문제에 대해선 학교에서부터 금기시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런 것들이 참 중요하다고 봐요. 제가 보기에 학문적 우수함은 둘째치고 어릴 때부터 차별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니 사람들 사고방식이나 자존감 같은 게 우리보다 높은 것 같아요. 작은 모임에 가봐도 좋은 직업이나 화려한 스펙, 고소득자가 아니어도 누구나 자기 이야기하는 걸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요.
-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를 북유럽이라 말합니다. 깊게 파고들면 다른 점도 많겠지만 북유럽이란 커다란 개념 속에서 비슷한 이미지가 그려지기도 하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지리적으로 가까워서 일 수 있겠고요. 핀란드를 제외하면 인종도 말도 비슷해요. 우리나라로 치면 사투리 정도로 언어가 비슷해 소통에 문제가 없어요.
근대 역사로 보면 북유럽도 19세기까지만 해도 가난한 동네였고 노르웨이도 석유 발견 전까진 무척 가난했어요. 지금과 많이 달랐죠. 도저히 못 살겠다 해서 미국 이민을 많이 가던 시절도 있었대요.(웃음)
그런데 산업들이 조금씩 커지면서 노동자들도 조직을 만들고 정치에 진출하기 시작했어요.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온 거죠. 무엇보다 경쟁하면서 다투거나 숙청하는 문화가 있지 않았다고 해요. 분쟁을 두려워하는 민족이라 하더라고요.
우리 편이 이겨도 진 사람들도 도와주는 사회 분위기가 있었던 거죠. 중요한 정책적 결정을 위해 충분히 논의하면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온 거예요. 세금도 조금씩 조금씩 지속해서 올려온 것이고요.
그리고 집권당이 사민당 또는 노동당이어서 국가 간 정책 교류도 서로 많이 하고요. 복지 정책 시행도 단계가 있을 텐데 이 단계까지 왔으면 옆에 나라 정책을 참고해서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거죠.
-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가 한 사회, 국가의 미래에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네요.
그렇죠. 스웨덴 정치인 올로프 팔메를 소개하고 싶네요. 사회민주노동당 소속이었고 총리로 집권한 시기는 1969년부터 1986년까지예요. 1976년부터 1979년까진 총선 패배로 야당 대표로 지냈고요. 스웨덴 정치인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물이에요. 이곳은 정치인들도 합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팔메는 자기주장도 강하고 남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어요.
팔메의 집권 당시 미국은 레이건, 영국은 대처가 들어선 시기였어요. 신자유주의가 대세로 자리 잡아 가던 때였죠. 그럼에도 올로프 팔메는 전 세계 흐름과는 다른, 반대 노선을 택해요. 대세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하고 노동조합의 힘도 약화시키고 기업 세금도 낮추고 해야 하는데 팔메는 반대 노선으로 계속 갔던 거죠. 복지, 산업 안전, 노동조합의 방파제 역할을 해줬어요. 이 사람이 없었으면 지금의 스웨덴이 있을까 싶어요.
- 스웨덴 사람들에게 영웅 같은 존재겠어요.
맞아요. 국내 뿐 아니라 국제 정치에서의 영향력도 컸고요. 1970년대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했을 때 대놓고 미국을 나치와 같다고 말했어요. 이에 스웨덴과 미국의 외교 단절이 1년 넘게 갔고요.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 났을 상황일 텐데 스웨덴 사람들은 자랑스러워했죠.
이후 인구나 경제 규모와 비교해 국제 외교에서 스웨덴이 차지하는 힘이 세졌어요. 남북미 정상회담 사전조율을 스웨덴 가서 하는 것도 그 이유일겁니다.
정치인으로 봐도 인간적으로도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그런데 안타깝게 1986년 암살을 당하죠. 작년에 34년 만에 용의자를 찾았고요. 그래서 스웨덴 추리소설을 보면 열에 여덟은 팔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아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이라는 ‘밀레니엄’에도 팔메가 나오고.
- <북유럽 비즈니스 산책>을 쓰며 독자에게 무엇을 가장 주고 싶었나요?
다양한 북유럽 기업들을 소개했고 이들을 만든 문화와 가치를 담으려 노력했어요. 우리와는 '다른 가치'로 만들어진 사회 모습은 어떤지, 그 사회가 만들어낸 비즈니스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느껴보길 바랬죠.
우리 사회가 너무 궁지에 몰려있다는 느낌이 커요. 항상 주위 사람들과 비교하며 살아야 하잖아요. 어떤 학교를 나왔고 월급은 얼마고 자녀들은 어떻고 투자 수익률은 얼마인지 이런 이야기를 항상 하고 있죠.
북유럽 사회 시스템과 비즈니스, 그 기저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가 익숙한 방식으로 꼭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사회 다수의 가치관이 변하고 그 생각이 모이면 사회 시스템과 비즈니스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것도. 북유럽 사회도 그렇게 진화해온 것이니까요.
- 마지막으로 책 3권이 있다면 누구에게 선물하고 싶나요?
가장 먼저 미래 세대인 저의 조카에게 주고 싶어요. 자기 신념의 소중함을 알면 좋겠고 북유럽 사회의 연대 의식도 배울 수 있길 바라고요.
두 번째는 새로운 시작점에 있는 분들께 선물하고 싶어요. 학교에 진학하거나 회사에 입사하거나 이민을 가거나 인생이 새로운 시작점에 서있는 분들께. 중요한 방향 설정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텐데 이 책이 참고가 되면 좋겠어요.
마지막은 정치인과 기업가 등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진 분들께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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