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2.09 - 김하영 저자
18년을 기자로 일해온 <뭐든 다 배달합니다>의 저자 김하영. 2020년 1월 회사를 그만두고 2월부터 플랫폼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물류센터 일용직, 배달대행, 대리기사로 200여 일을 살며 그야말로 몸으로 책을 썼습니다.
김하영은 2003년 취재한 화물연대 소속 트럭 기사들의 파업 현장을 기억합니다. 특히 부산에서 만난 트럭 기사와 25톤 트럭을 타고 서울로 올라오며 나눴던 대화를.
"우리도 이렇게 머리띠 두르고 열 맞춰 가며 구호 외치는 일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이거라도 안 하면 누가 우리 같은 사람한테 관심이나 가졌겠냔 말이지. 그래도 모여서 집회도 하고 보도자료도 낼 수 있으면 힘 있는 사람들인 거잖아요.
오늘 우동값은 내가 낼 테니 앞으로 기자 생활 하면서 보도자료 한 장 내지 못하는 힘 없는 사람들 목소리도 꼭 들어주세요."
꼬마 기자 김하영이 발로 뛰는 기자로 살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2020년 겨울, 우리 시대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보도자료 <뭐든 다 배달합니다>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아래는 저자 김하영의 안내로 함께 읽는 <뭐든 다 배달합니다> 2주 프로그램을 마치고 2월 9일 진행한 참가자와 저자의 질의응답 정리 내용입니다.
작년 말 책 출간 후에도 배달 일을 계속했어요. 그러다 12월 19일 배달하다 팔이 부러졌고요. 되게 추운 날 자전거로 배달하는데 언덕길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졌거든요. 음식도 다 터지고 팔도 계속 아파와서 배민콜센터에 신고하고 자전거 끌고 겨우 집으로 갔죠.
이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배달 일을 계속 할수 있을지,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겁도 났고요. 그래서 많이 힘들었죠. 결론적으로 지금은 산재보험 받으면서 쉬고 있어요.
플랫폼 노동에서 보험 얘기도 좀 해드리고 싶네요. 배민커넥터 시작할 때 보험 가입을 해요. 운전자보험료랑 산재보험료 2가지를. 운전자 보험료가 2천 원대고 산재보험료가 일주일에 3200원입니다. 산재보험료도 한 달이면 거의 13,000원 돈이죠. 일 년으로 계산하면 꽤 큰 돈이고요.
배민이랑 커넥터가 반반씩 내요. 처음에는 이걸 왜 내야 하나 싶기도 했는데 막상 다치고 나니까 산재보험 가입을 안 했으면 일도 못 하고 수입도 없고 병원비만 수백만 원 나가는 우울한 상황에 빠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안 다쳤으면 좋았겠지만, 보험 가입해놓은 건 다행이었죠.
지금은 수술하고 철심도 여러 개 빅고 계속 치료 중에 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해보는 중입니다.
또 이 일을 하다 보니 관련 산업이나 업계 변화에 관심이 더 커지고 있어요. 계속 달라지고 있고 제가 뛰어들고 관찰하고 지켜봐야 할 것들도 많다고 보고요. 책 출간 후에도 새로운 소식이 많았고요.
몇 가지만 떠올려봐도 먼저 타다와 티맵 모빌리티 본사의 대리 사업 진출, 쿠팡이츠가 기본 수수료 낮춘 것도 있겠고요. 이건 기사 보면서 깜짝 놀랐는데 요기요가 라이더들한테 보험 적용을 시작한다고! 아직도 보험 적용을 안 했단 말이야 했어요. 코로나로 달라진 것도 정말 많아서 앞으로도 이 업계와 산업을 계속 지켜볼 생각입니다.
제가 좀 그런 성향이에요.(웃음) 원래 기자라는 직업을 택했던 것도 사무실 앉아서 일하는 것보다 돌아다니는 것 좋아하고 새로운 걸 해보는걸 좋아하기 때문에 한 거고요. 그런데 기자도 연차가 올라갈수록 밖에 안 나가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거든요. 그게 답답한 것도 있었고.
조금 부정적일 수 있지만 요즘 언론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나, 시민들의 궁금증을 잘 해결해주고 있나 등의 회의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 스스로 그런 기회 만들기도 쉽지 않았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그만둘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기자 생활할 때 힘든 것도 많았어요. 사람들 잘못한 것 들춰야 하고, 사건·사고 현장에 늘 가 있어야 하고. 그런데 배달이든, 대리운전이든 플랫폼 노동을 하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일을 해드리는 거잖아요.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을 직접 만나고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식당 사장님들은 라이더가 빨리 와주길 기다리고 있는데 저라도 가서 배달해드리면 보람 있고 뿌듯하고 그런 거죠.
그래도 불안함이 크긴 했어요. 5년, 10년 뒤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가 그려지진 않아서.
플랫폼 노동을 하며 많이 벌고 계신 분들도 있겠죠. 저도 그런 소식을 여러 차례 듣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꼭 따져봐야 할 것들은 있다고 봐요. 올해 최저시급이 8,720원이에요. 예를 들어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할 때 최저 시급에 주휴수당도 나오고 한 달 이상 일하면 연차 수당도 나오고 한 달 60시간 이상 일하면 4대 보험 제공도 됩니다. 식사도 나오고 셔틀버스도 탈 수 있고요.
그래서 쿠팡에서 임금 노동자로 일하면 8시간 동안 시키는 일은 다 해야 하지만 시급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대부분의 플랫폼 노동이나 프리랜서, 개인사업자 분들은 이런 보장을 받기가 어렵죠. 현재는 정규직 기반으로 제도가 만들어져 있으니.
그래서 주휴수당, 연차수당, 퇴직금, 4대 보험 이런 게 전혀 없으니 최저시급만 벌어서는 어려움이 있다고 봐요. 플랫폼 노동을 해도 시급이 11,000원은 나와야 회사 다니는 사람 기준으로 최저 시급 정도를 벌 수 있는 거죠.
가장 서러운 건 실업급여 못 받는 것이고요. 그리고 코로나 상황으로 특수고용노동자, 프리랜서를 위한 코로나19 지원금이 있잖아요. 최근 3차까지 있었는데 저는 한 번도 못 받았어요.
처음에는 작년에 회사를 다녔으니 못 받았고 최근 3차 지원금도 신청 자격이 안 되더라고요. 기준이 되는 두 시기의 소득을 비교해서 소득이 줄었으면 받을 수 있는 건데 참 희한한 상황들이 벌어져요.
예를 들어 겨울이 되면 배달음식이 주문이 많아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높아져도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 드시니 배달 일을 하면 그전보다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어요. 그러면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충족되지 않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거죠.
결론적으로 필요한 사람들이 지원금을 못 받는 상황이 와요. 물론 재정 한계와 행정 절차가 있으니 이해는 하지만, 회사 밖에서 플랫폼 노동이든 프리랜서든 지속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상황인가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플랫폼 노동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알리고 싶었어요. 책 쓰는 건 둘째치고 제가 답답했던 것이 언론에서 일일 체험하고서 돈 안된다, 반나절 일해보고 힘들다 이런 얘기들만 나오는 거였어요. 그렇게 일도 힘들고 돈 벌기도 힘든데 왜 산업은 점점 커지고 종사자도 늘어나는지 현장을 제대로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또 하나는 너무 우울한 이야기는 담지 않으려 했어요. 그건 이 업에 종사하는 분들께 예의가 아니니까. 직업적 보람도 당연히 있었고요. 기자 선·후배들은 더 고발성으로 쓰지 않았냐 말하기도 하는데 그럴 거면 기사를 썼겠죠.(웃음)
그리고 기술 변화와 사회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담았죠. 사실 플랫폼 노동을 해보기 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던 부분이기도 해요. 경제적·사회적 이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거든요. 막상 플랫폼 노동을 해보니 기술 발전과 이를 통한 사회 변화가 시급하게 다뤄야 할 주제겠더라고요.
시기가 문제지 완전 자율 주행차도 곧 나올 거잖아요. 그럴 때를 대비해 우리 사회는 잘 준비하고 대응하고 있는지 독자들이 스스로 질문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가 배민커넥트를 했잖아요. 배민은 배달회사가 아니라 광고 회사입니다. 그래서 ‘배민오더’라고 음식을 직접 가져오거나 음식점에서 먹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이걸 계속 광고하는데.. 사실 화가 날 때도 있어요.(웃음) 왜냐하면 배달을 시키셔야 라이더들도 먹고 사는 거잖아요.
이 산업은 계속 커질 거고 이미 우리 일상이 되었죠. 그래서 미안한 마음을 갖기 보다는 플랫폼 노동하는 분들이 좀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게 훨씬 중요한 지점으로 보여요. 지금은 과도기인 것 같고요.
예를 들어 쿠팡에서는 택배 기사들을 직접 고용해서 주5일 52시간 근무를 적용해요. 2년 수습 후 정규직 될 수 있고요. 그래서 하루 정해진 양이 있는데 다 못했으면 빨리 끝난 기사가 도와줄 수 있고 그분들은 인센티브 받는 구조이죠.
그런데 일반 택배들은 구역이 정해져 있고 이걸 혼자 다 책임져야 해요. 자정, 새벽에도 못 끝내면 집에 못 가죠. 옆 구역 동료가 도와주긴 하는데 시스템적으로 어려운 면이 있는 거죠.
음식배달을 봐도 한 건 당 수수료 3천 원, 4천 원 해서 한 시간에 4~5건 해야 기름값, 보험료 빠지고도 이익이 나거든요. 그리고 피크타임이라는 게 있어요. 식사 시간이죠. 이때 최대한 많이 배달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인 거에요. 돈을 벌 수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인도 주행하고 신호 째고 험하게 운전하는 거고요.
맥도날드나 피자헛 같은 곳은 고용된 라이더들이니까 한 번 보세요. 난폭운전하는 분들이 없어요. 수수료 구조의 태생적 한계가 있어서 사람들을 위험하게 하는 구조가 있다고 보는데 분명 문제이고 바꿔 나가야 하는 부분이라 보입니다.
그래서 주문 행위에 미안함을 느끼기 보다 구조적으로 이 문제를 알고 그런 걸 고치는 것에 의견 보태주시는 것이 플랫폼 노동자들께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플랫폼 노동이 21세기에 처음 생긴 일은 아니고요. 원래 알바라는 이름으로 해왔던 일이었는데 플랫폼 서비스가 생겨나며 이제 이 산업의 핵심 직종이 되었다고 봐요. 사실 로봇 시대,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없어질 수 있지만요.
하지만 없어질 때까지는 사람들이 소속감을 느끼고 이 일을 해도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고요. 슬펐던 순간이 있는데요. 어떤 대리 기사님과 얘기했을 때였어요. 아들이 아빠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는 게 제일 답답하고 힘들다 말씀하시더라고요. 배달하다 만난 라이더도 그렇고요.
코로나 시대에 특히 배달, 택배 시는 분들을 더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제도적으로는 직업적으로 인정 받지 못한 모습들이 있으니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마지막에 당부의 말을 남겼습니다.
책에 써놓았듯 기본 소득과 평생 교육 기반으로 사회 제도가 정비돼야 한다 보고요. 무엇보다 세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으니 완전히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겠죠. 옛날 농경 시대에는 가족 중심의 경제가, 산업화 시대에는 사회가 중심이었고 현재와 미래의 플랫폼 사회에서는 개인이 중심에 있다고 봐요. 그래서 사회도 회사도 개인 중심으로 변화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술 변화는 곳곳에서 느꼈는데 쿠팡 물류센터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이곳은 ‘랜덤 스토어’방식으로 운영해요.
일반 마트에 가면 물은 물끼리, 휴지는 휴지끼리 쌓여 있잖아요. 랜덤스토어는 물 옆에 기저귀, 세제 옆에 문구가 있어요. 사람이 보기에 규칙이 없죠. 사람이 물건 주문할 때를 생각해보세요. 하나만 사는 게 아니라 여러 물건을 한 번에 사잖아요. 그 데이터들을 쌓고 활용해 인공지능이 최적의 동선을 짜서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인간에게 지시하는 거예요.
물류센터 첫 출근 때 물건들 위치를 빨리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쓸데없는 생각이었던 거죠.
택시 운전 기사님들의 내비 이전과 이후 상황을 봐도 그렇고요. 사람들이 오랜 세월 일을 하면서 숙련 쌓아야 할 것들을 기계와 로봇, ai가 하는 있는 거죠.
예전에는 회사에 오래 다니면 일도 잘하고 아는 것도 많아지고, 그래서 월급도 오르고 그에 따른 혜택도 받았던 건데 이제 사람이 숙련 쌓을 기회가 없어지는 상황에 왔다고 봐요. 그래서 제도적 상상력이 더 필요하고 일반 시민의 의식도 중요하지만 제도를 만드는 관료나 정치인들의 역할이 너무나 중요한 때라고 보입니다. 플랫폼과 서비스를 만드는 기업과 엔지니어도 본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히 인식해야 하고요.
사실 어렵고 힘들고 위험한 일은 로봇이 하면 좋죠. 그렇게 가야 한다고 보고 지금까지도 그런 방향성으로 사회가 변화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땅 팔 때 열 사람이 삽질하는 것보다 포크레인이 한 번 땅 파주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이 벌어져요.(웃음)
그렇다고 당장 변화가 오지는 않을 것이고 변화해 가는 시기가 지금이라고 봐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도 충분히 많고요.
단지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가 그런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기업가나 엔지니어는 물론이고 정부 관료나 정치인들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기술 발전만 시키고 경제적 이익을 고려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을 위해 사회적으로도 함께 고민하고 준비할 때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책을 쓰면서 무엇보다 플랫폼 노동을 하고 계신 분들께 누가 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있는 기업가와 엔지니어, 정치인과 관료들도 읽었으면 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물론 현장 모니터링도 하겠지만 더 깊은 곳의 솔직한 이야기를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고 기술을 통한 세상 변화를 생각해보셨으면, 또 주변 분들과 나눠주셨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뭐든 다 배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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