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일상을 빛나는 생각으로 바꾸는 10가지 비밀
'저자와 함께하는 랜선 책 모임' 세모람에서 지난 8월 17일 <기획자의 습관> 최장순 저자와 랜선 소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1. 저자의 미니 강연 : 책 소개 및 핵심 인사이트 정리
2. 참가자와 저자의 질의응답 시간
3. 저자의 클로징
안녕하세요. <기획자의 습관>을 쓴 최장순입니다. 브랜드 이름을 짓는 직업으로 브랜드 쪽에 들어왔습니다. 정작 제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20년 동안 원망하며 살았습니다. 순자 돌림이 웬 말이냐 싶었던 거죠.(웃음)
대학 3학년 때 도덕경을 필사하고 공부하면서 제 이름의 의미를 해석해 봤어요. 한문은 해석 순서가 없고, 수사에 따라서 문법이 애매하잖아요. ‘높을 최’에 ‘글 장’, ‘순박할 순’을 써요.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최고의 문장을 읽고 이해하며 쉬운 문장을 쓰자로 제 이름을 스토리텔링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름에 애착이 생겼고 이 스토리대로 살아갈 길을 찾아왔던 것 같아요.
첫 직업은 신문 기자였고요. 언어학 전공자를 모집한다는 한 브랜드 전략회사 공고를 보고 네이미스트로 지금의 일을 2007년부터 하게 됐습니다. 브랜드 디자인과 브랜드 전략, 공간 디자인 등을 디렉팅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책에 나온 실용적 툴이나 그것을 소개하는 내용보다는, 기획자의 습관을 쓰게 된 배경과 책에 담진 않았지만 제가 공부하며 정리한 나름의 개똥철학까지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1) 동굴의 비유와 의미 3부작
2) 쿵푸팬더와 앳지 오브 투모로우 - ‘나다움으로 진짜 내일을 향해’
3) 클리나멘(CLINAMEN) - ‘습관’
4) 마지막 이야기 -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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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굴의 비유와 인식의 3단계와 의미 3부작
제가 쓴 첫 번째 책은 2017년에 출간한 <본질의 발견>입니다. 이 책을 쓰며 기획한 것이 <의미의 발견>과 <기획자의 습관>이고요. 기획자의 습관은 바로 다음 해에 썼는데, 어떻게 보면 브랜드와 마케팅, 광고 쪽 계신 분들은 이미 다 하는 습관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선 <본질의 발견>에 담은 세계관을 말해볼게요. 제가 플라톤 주의자는 아니지만 플라톤 동굴의 비유를 인용했어요. 플라톤의 <폴리테이아, (Politeia)>에 나온, 정확한 번역은 정치인데요. 폴리스의 운영 방식을 담았고 우리나라에는 <국가>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입을 빌린 플라톤이 ‘인류는 쇠사슬에 묶인 채 동굴 벽을 향해 태어났다. 쇠사슬은 너무 꽉 묶여 있어서 내가 고개를 돌려 볼 수 없을 정도이고, 옆에 있는 사람을 쳐다볼 수도 없다’고 묘사해 놨어요.
그들 앞에는 그림자들이 돌고 있습니다. 평생을 이런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 거예요. 이들에게 그림자는 실제 세계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재밌는 가정을 해요. 누군가의 쇠사슬을 풀어준다는.
<정치>에서 언급하진 않지만, 대신 쇠사슬을 풀어주는 존재를 플라톤은 철학자의 역할로 본 거예요. 그 역할을 하는 누군가가 맨 앞 죄수의 목에 걸린 쇠사슬을 풀어줬습니다.
사진을 봐주세요. 좌측에 담벼락부터 그림자 벽까지 구간은 인식의 1단계예요. 보이는 대로 믿는단 소리죠.
죄수가 쇠사슬이 풀려서 밖으로 나왔어요. 담벼락 뒤에는 간수들이 우리와는 다른 오브제들을 들고 스펙터클을 누리고 모닥불이라고 하는 1차적인 지식의 근원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그림자를 프로젝션 했어요. 광고 용어로는 포지셔닝했다 하고, 심리학적 용어로는 프레이밍 했구나 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여기가 인식 2단계입니다.
그러고 나서 동굴 밖으로 가면 모든 게 모형이었단 걸 알고 이제 진짜 실제 세계를 보게 되죠. 인식의 3단계입니다.
인식의 1, 2, 3단계는 플라톤이나 저의 설명이 아니라, 하이데거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설명하는 형이상학적 인식의 단계예요. 그래서 인식의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통한 직관적 관조와 논리, 사회적 추론을 통해 인식의 1, 2, 3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것을 진리 탐구의 과정으로 봅니다.
동굴 밖에는 실제 세계가 있어요. 그것을 간수들은 1차적으로 모방하고요. 1차 모방물을 모방한 그림자, 2차 모방물은 원본의 모방의 모방이죠. 이런 것들을 철학에선 시뮬라크르라고 합니다.
물론 이 세계관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는 실제 세계에 작동한다고 믿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자본주의 소비시장으로 비유했을 때 묶여 있는 인류를 소비자로 생각해본다면 기획자가 처한 상황 역시 유사할 수 있다고 보입니다.
기획자들은 대부분 간수가 차지하는 이 인식 2단계 라인에서 인식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곳에 있으면서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있기도 한 거죠.
이 스탠스를 벗어날 수 없다면, 적어도 기획을 하는 입장에서는 동굴 밖에 실제 세계가 존재하고 그것과 차이가 크지 않은 무언가로 기획의 방향성을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 장난감 사줄 때를 보면요. TV광고에서 장난감이 움직이고 멋지게 나오죠. ‘본 장난감은 실제 연출과 관련이 없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작게 내보네요. 아이들은 화면을 보고 로봇을 사달라고 합니다.
배송을 받으면 어떨까요? 멈춰있는 장난감일 경우가 대부분이죠. 사실 소비자를 기만하는 광고 커뮤니케이션에 가깝습니다. 기획자라고 한다면, 경제적 수익만을 생각하는 그런 광고 커뮤니케이션은 지양해야 하지 않나라는 것이 <본질의 발견>에서 말한 문제의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속임들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일정하게 기획이라고 하는 산출물을 만들기 위한 기획자들의 사고 패턴과 습관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만 쇠사슬을 헐겁게 하고 풀어줄 때 그 쇠사슬 끊어주고, 진짜 세계를 보여줄게 라고 설득할 때 기꺼이 따라갈 수 있을 테니까요.
나가려고 하는 내적 동기가 없을 때 누군가 끌어준다고 해서 절대로 나가지 않거든요. 밖에서 깨 주면 안에서도 깨려는 에너지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 힘을 일반 시민들도 쉽게 파악하면 좋겠다 생각해서 쓴 게 <기획자의 습관>이었고요.
마지막 <의미의 발견>은 다시 기획자, 내부 실무자, 기획하는 사람들로 돌아와서 어떻게 <본질의 발견>에서 이야기했던 진정성 있는 의미를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주제로 집필한 책입니다.
동굴의 비유로부터 인식의 3단계와 소비자가 쳐한 상황, 기획의 세계관을 이야기해봤습니다. 사실 저에게 기획을 잘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는 답을 드릴 것 같아요. 제대로 된 기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되는 거죠.
기획은 ‘어떻게 하면 되지’라는 방법론의 차원과 ‘한다’라는 실행의 차원 그리고 ‘된다’라는 효과의 차원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대하는 효과가 반드시 있어야 하고 철두철미하게 실행할 수도 있어야 하죠. 동시에 변수라는 게 반드시 발생하니 궤적을 수정하면서 실행해 가야 하죠.
그러면서도 바깥 세계의 지식 담론을 습득하며 조율해야 하고, 내가 못하면 그것을 해줄 누군가를 알아야 하고요. 앞서 말한 기획의 삼박자에 대한 이해, 이것이 기획을 시작점이라 생각합니다.
2) 쿵푸팬더와 앳지 오브 투모로우 - ‘나다움으로 진짜 내일을 향해’
<쿵푸팬더> 재밌게 보셨죠?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용의 전사가 되면 용의 문서를 볼 자격을 얻게 되고, 거기에는 무림을 제패할 비법이 들어있다고.
마침내 쿵푸팬더와 싸워서 억지로 용의 문서를 뺏어본 타이롱의 표정이 나오는 한 장면인데요. 황당한 표정입니다. 비법을 드디어 찾았구나 싶었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표정이죠. 반짝이는 거울에 자기 얼굴만 보입니다.
그러면서 쿵푸팬더가 이런 대사를 날려요.
‘비법은 없어. 중요한 건 자신이야.'
‘비법이란 건 없고, 편하게 너답게 하는 방식이 최고의 비밀이야.’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요. 여러분이 잘하는 방식으로 내 생각과 내 언어를 서술할 수 있는 것이 기획의 가장 좋은 방법이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새롭고 화려한 도식과 프레임을 찾아다니지 마세요. 시간낭비일 수 있으니까요. 이미 우리는 일상에서 기획자로 살아가는 중입니다. 심지어 라면 살 때도 참치캔이나 소주를 같이 사거가 하잖아요. 대중교통은 뭘 탈지, 오늘은 어떤 옷을 입을지도 마찬가지고요. 비약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이런 것도 모두 기획인 거죠.
영화 이야기를 하나 더 해볼게요. 톰 크루즈 주연의 <앳지 오브 투마로우>입니다.
먼저 우리 일상을 돌아봅시다. 오늘을 벗어날 수 있나요? 오늘을 둘러싼 오늘을 벗어난다면 가능하겠지만, 사실상 삶의 조건은 특정한 박스 안에 있고 우리는 같은 오늘을 반복합니다. 내일은 유추할 수 있는 논리적 개념이고 늘 오늘을 사는 거죠.
경계를 넘어가면 내일인데 우리는 자꾸 그 가장자리에 있다는 거예요. 거기서 나가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영화의 문제의식이자 우리 일상의 문제의식이기도 합니다.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방위군의 정훈장교입니다. 인류와 외계인의 싸움이 벌어지는데 훈련이나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전쟁터로 떠나요. 가자마자 외계인에게 죽임을 당하고요.
그런데 불가능한 일이 벌어집니다. 영화 설정으로 죽고 나면 다시 참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렇게 전쟁터로 가서 다시 죽고 다시 돌아오고. 타임 루프에 갇히는 거예요. 인간의 무기력함을 보이는 이 과정이 영화 안에서 지루하게 흘러가죠. 우리 일상에도 이런 모습이 참 많습니다.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
Ewige Wiederkunft des Gleichen
오늘에서 오늘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다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내일이라는 개념을 요청합니다. 그런데 진짜 내일이 거저 오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쉬어도 되고 영화 봐도 되는데 이 늦은 시간에 여기 모여있기도 한 거죠. 누군가는 일을 하고, 학습을 하고, 우리처럼 대화를 나누고, 책을 보기도 하고, 식사하면서 에너지를 보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이 조금 더 나은 오늘을 맞이하기 위한 생명유지 활동이고요. 이러한 모든 것을 동양에선 공부라고 하죠. 문제는 힘들게 오늘을 사는데도 내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거죠. 내일이 아니라 그대로 오늘인 것 같은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실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모두가 똑같은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는 거예요. 똑같은 하향평준화나 원래 인생이 그렇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에요. (웃음)
이런 태생적 조건을 직시할 때 새로운 생각과 액션을 만들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니체식으로 표현하면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Ewige Wiederkunft des Gleichen)’입니다. 니체가 이 개념을 서술하진 않았지만, 개념을 생각해보면 계절도 다시 돌아오고요. 요일도 다시 돌아오죠.
이럴 때 사람들이 취하는 몇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차피 똑같이 돌아오니 적당하게 대처하고 안주하자. 또 하나는 원래의 오늘은 안주하고 남는 시간에 다른 일을 개척하기도 하고요. 원래의 일 조차도 새롭게 개척해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 관심사는 어떻게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은 오늘을 벗어날 수 있을까입니다. 이것이 기획이 필요한 이유라 생각합니다.
똑같이 냉장고 안에 반찬 가지고 아이들 밥 해줄 수 있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주먹밥 모양을 다르게 해 보고 그릇도 바꿔보고 밥 먹을 때 음악도 틀어보는 거죠. 이런 게 알음알음 모이고 쌓이면 변곡점이 생길 수 있습니다.
3) 클리나멘(CLINAMEN) - ‘습관’
오늘을 극복하기 위해 뭔가를 합니다. 하지만 잘 안돼요. 그럴 때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가 필요하죠. 동일한 반복의 오늘에서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여기에 인사이트를 주는 이야기가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입니다.
우리가 쾌락주의자라 알고 있는 에피쿠로스라는 철학자의 설명을 보면 원자가 이동을 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원자에 주관성을 부여해요. 휘어진다고 설명하죠. 이 현상을 라틴어로 클리나멘(CLINAMEN)이라 합니다. 일본식 번역으로는 편위라 하고요.
이 설명을 해드릴게요. 에피쿠로스 학파 루크레티우스의 <자연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 매우 미세한 변화를 말하고 있어요. 어느 날 밥 먹는 식탁에서 음악을 바꾼 것 같은, 운전하다 핸들을 1mm 꺾은 것 같은. 미세하지만 도로에서 보면 큰 변화일 거고요.
=> 여기가 핵심입니다. 갑자기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이 아니라 평소 그 습관 안에 있지 않다면 방향을 못 바꾼다는 거거든요.
별똥별 떨어질 때 소원을 빌라 하잖아요. 소원이 이뤄질 거라고. 그런 찰나에 빌 수 있는 소원이라면 평소에 얼마나 간절했겠어요. 이미 그런 간절함과 노력이 평소에 있었을 것이기에 이뤄질 수 있다는 전제가 있는 것 같아요. 같다는 전제가 있을 것 같아요.
습관인 거죠. 이것이 없다면 ‘허공이 깊은 곳까지 떨어질 것이다. 어떠한 충돌도 폭발도 없을 것이다.’ 이 경우 자연은 어떤 것도 생산해내지 않는 것이죠.
우리는 지금 대화하는 충돌의 장에 모여 있어요. 각자 삶 속에서 직선 운동으로 자거나 쉬면 되는데 방향을 틀어서 여기에 온 거죠. 우리의 삶 안에 의미 있는 충돌과 폭발을 일으키는 미세한 변화, 방향을 바꾸는 힘, 습관의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기획을 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작지만 일정한 습관들이 필요한 거죠. 각자 스타일대로 가꿔 나가야 할 것이고요. <기획자의 습관>은 이미 업계에서 많이 하고 있는 습관의 사례들과 제가 경험하며 얻은 인사이트가 담겨 있는 책이고요.
4) 마지막 이야기 - ‘사과’
‘사과’는 서양 지성사에서 독특한 포지션을 가진 상징입니다. 여러 이야기가 있습니다. 먼저 스피노자의 사과. ‘내일 지구가 멸망할 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죠.
뉴턴의 사과도 유명합니다. 나무 밑으로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깨달았다고 하잖아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게 얼마나 허황된 거짓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뉴턴은 이론물리학자예요. 서양 정신사는 크게 관념론과 경험론의 대립으로 이어져 왔고, 데카르트와 뉴턴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은 수학적 이성을 중시합니다. 경험적 관찰 대상으로 하는 건 믿지 않아요. 수학적 공리로 검증돼야만 믿는 사람들인 거죠.
그런데 사과가 떨어진 걸 보고 중력의 존재를 믿는다고? 이런 말들이 왜 만들어진 걸까요?
마지막은 앨런 튜링. 처음 컴퓨터 만든 과학자예요. 1950년대에 범죄로 취급되던 동성애 혐의로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를 받았고요. 여기에도 사과가 등장합니다. 화학적 거세를 받은 몇 년 뒤 사과에 청산가리를 주입해서 깨물어 먹고 자살했다는 설이 있죠.
이들은 모두 엄청난 지성의 소유자들이었어요. 왜 옥수수나 밤이 아니라 사과가 등장하는 걸까 생각해보고 싶어요. 하물며 백설공주에도 독사과가 등장하잖아요.
이 모든 배후에는 성경의 창세기가 있습니다. 창세기에 야훼라는 신이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각종 나무의 열매는 먹어도 되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만지지도 말라고 합니다.
물론 성경에선 사과라고 특정 짓진 않지만 서양에서는 사과로 인식하죠. 뱀은 아담과 이브를 유혹합니다. 그걸 먹으면 너희 눈이 밝아진다고. 이건 계몽의 수사적 표현이고요. 이성을 갖고 깨닫게 된다는 거죠.
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겁니다. 그래서 뱀은 종교인 눈에 사탄이죠. 일반 학자들에게는 인간에게 지성을 준 존재이고요. 그래서 사과는 지성을 의미하고, 특히 이브가 한 입 베어 먹은 사과는 상징적입니다.
서양 모든 지성의 시작, 그 신화적 맥락은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에서 나오고 이 스토리를 알지 못하면 절대로 이 로고를 그릴 수 없습니다.
광고를 하나 불게요. 1984년 애플 맥킨토시의 슈퍼볼 광고입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소재로 만들었죠. 소설에 담긴 전체주의적 시대상, 빅브라더를 당시 거대 기업인 IBM에 비유했던 위트 있고 철학적인 광고였습니다. 앞서 설명한 동굴의 비유 메타포를 그대로 쓴 거예요.
IBM의 빅브라더가 나았고 스크린을 깨버리는 유일한 컬러 옷 입은 여성이 함마를 들고 있습니다. 함마랑 해머는 달라요. 해머는 그냥 망치이고, 함마는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그것이죠. 니체를 함마의 철학이라고도 하는데요. 엄청난 함마를 들고 있는 이 여성이 철학자 니체이고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기획자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도 이 세계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니오'는 인공지능이 만든 인큐베이팅 안에 갇혀 가상현실을 살아가는 중입니다. '모피어스'라는 사람이 등장해 주인공 니오에게 제안을 한 가지 하는데요. 유명한 대사죠. 동굴의 비유에서 봤던 인식의 1, 2, 3단계를 생각해보세요.
"빨간약 먹을래 파란 약 먹을래?
파란 약을 먹으면 너는 인큐베이터에 그대로 남아서 네가 믿고 싶은 대로 살아가게 될 거야. 그런데 빨간약을 먹으면 내가 인큐베이터에서 너를 꺼내 줄게. 매트릭스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게. 진리는 설명할 수 없어. 네가 봐야 돼."
어찌 보면 우리의 오늘을 대변하는 직장 생활, 가정생활, 친구 관계 등은 우리가 사는 인식의 동굴들, 매트릭스 인지도 모릅니다.
영원히 우리가 인큐베이터 같은 오늘 안에 갇혀 살 것이냐 아니면 동일성 안에 작은 차이의 틈을 발견하고 동굴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할 것이냐, 이 선택 사이에 기획이 필요한 이유가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동굴 밖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을 할 때 우리는 내일의 가장자리를 넘어서 내일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각자의 삶 속에 기획들이 있겠지만 그것이 확장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요. 그렇게 더 나은 내가 되고 그렇게 우리가 된다면, 좀 더 나은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을까 라는 다소 비약적인 생각까지도 하게 됩니다.
동일성과 차이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그것들을 관찰하는 힘
생각하는 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법들
반복과 극복 사이의 줄다리기
이것이 기획이란 생각을 해보고요. 무엇보다 이미 여러분들의 생이 멋진 기획이다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Q. 항상 옆에 두고 읽는 연인 같은 책이 있나요?
A. 실력이 안돼서 다 이해는 못합니다만 니체를 계속 읽고 있어요. 국가 그리고 도덕경도 반복적으로 보고요.
지금은 먹고사는 일에 집중을 하다 보니 브랜드, 마케팅 분야 바이블들도 옆에 두고 자주 읽습니다. 바이블의 조건은 단기간에 패러다임에 영향을 주었거나 50년 이상 사랑받은 책들이라 볼 수 있죠.
마케팅과 브랜드 분야는 워낙 속도가 빨라서 각개격파식으로 이론을 조금씩 극복하기도 하지만, 한 번 고전이 나오면 이를 극복하는 게 어렵기도 해요.
예를 들어 브랜드 하는 사람들은 데이비드 아커를 쉽게들 얘기하는데요. 그 사람처럼 이론을 구성하기는 정말 힘들죠. 그 분야의 바이블을 쓴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인 겁니다. 아무튼 저 역시 이런 책들을 반복적으로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책 뒷부분에 움베르트 에코의 ‘해석의 층위 3가지’를 얘기해주셨습니다. 그중 ‘단어들이 가진 의미를 파악하며 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A. 텍스트 자체에서 발생하는 의미가 있어요. 저자가 의도한 것도 아니고 독자도 비평가 수준이 아니면 못 읽어내는 의미가 있거든요. 저자의 무의식이다 라고 분석되는.
예를 들어 제가 공황장애를 겪었을 때 지하철 이용을 묘사하는 글을 썼다고 생각해볼게요.
지하철을 탈 때면 폐쇄 공포증이 와서 불안하고 과호흡이 와요. 한 정거장 지나면 극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눈앞에 사람, 기둥, 광고판, 의자, 중년의 남성이 흐릿하게 지나갑니다.
글을 읽으며 독자도 저자의 불안한 상태를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여기서 텍스트 자체에서 읽을 수 있는 의미를 뽑아볼 수도 있습니다. 손잡이와 의자, 기둥은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지지대 역할을 해주잖아요. 마주 보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글 안에 등장한 여러 오브제들이 ‘안정’이란 코드를 가진다고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들을 새롭게 축출할 수 있어요.
이런 것이 텍스트 자체가 담고 있는 의미의 상동성을 가져가면서 글을 구조적으로 읽을 수 있는 독법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기획은 어떤 것인가요?
A. 좋은 기획은 결국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일이 표면적으로는 대기업의 영리 활동을 위한 일들인데요. 이 안에서도 진실성 있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기업은 24시간 우리 일상의 모든 서비스와 제품, 유통망까지 장악하고 있잖아요. 이 일들을 선하게 만들 수 있다면 우리 공동체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요.
또 비영리 단체 활동도 10년쯤 한 것 같아요. 이제 직접 단체 운영은 못하지만 프로보노 활동을 1년에 1~2개씩 하는 중이거든요.
이전에 싱글맘들을 돕는 활동도 했었는데요. 관련해서 제가 쓴 짧은 글이 네이버 메인에 올라가서 방송 3사에 연락도 받고 후원금이 마련되어 이분들을 도울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익적인 기획들과 그 일을 했던 시간들이 많이 기억에 남습니다.
Q. 코로나 시기에 유심히 봐야 할 것, 여러 습관을 언급해주셨는데요. 이 시기에도 필요한 좋은 습관을 추천한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책에도 써놓았지만 앞으로도 정보를 얻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움직이지 않고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습관을 가지려고 저 역시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것은 ‘키워드 검색’을 정확하게 해 보는 연습이 필요한데요. 정확한 검색을 할 ‘단어’를 얻지 못하면 넓은 정보를 다 다룰 수 없고요. 많은 아티클을 읽는 것이 이 키워드를 얻기 위함이란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전문가를 찾아야 할 때도 있고요. 제 사회생활의 처음이 기자였는데 좋았던 게 거의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거였어요. 국방이나 비밀로 분류된 것들을 뺀다면.
이제는 인터넷이 잘 되어 있고 스마트폰만 사용해도 수준 높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잖아요. 문제는 ‘키워드’의 퀄리티인 거죠. 그래서 평소에 글을 많이 읽는 게 계속 필요하고 여전히 중요한 습관이라 생각합니다.
가끔 서점에 가서 책 제목과 목차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지성이 올라갈 수 있어요. 거짓말 같죠? 몇 년 전에 미국에서 했던 관련한 실험 결과도 있고요. (웃음)
정리해보면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높은 질의 키워드를 찾는 것, 이것을 위해 평소 많은 글을 읽고 기억에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Q. 저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니체 이야기도 많이 해주셨는데 어떤 사람들에게 영향받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A. 우선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그 사람을 깊이 이해했다는 것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요. 사실 많은 영향을 받은 건 칼 막스였어요. 특히 박사 학위 논문인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책에서요. 고병권 씨가 번역을 했고요.
23살의 청년 막스가 원자의 움직임을 통해 공동체의 삶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단계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거든요. 책을 따라 읽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단어가 작동하는 원리가 퍼즐이나 함수 관계처럼 맺혀 있거든요. 암기하면서 이해해야 하는 책이기도 해요. 그래서 독서를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웃음)
대학 4년 내내 인문고전 강독반이란 걸 했는데요. 그게 유일한 학교 생활의 낙이기도 했어요. 번역 안된 책 위주로 구해서 읽고 새벽까지 뒤풀이 하면서 토론하는 모임이었습니다. 형들과 얘기하면서 어려운 철학 책들을 읽고, 거기에 어려운 용어도 많이 등장하거든요.
그러면서 철학자들의 사고를 나름 이해할 수 있을 때 세계를 더욱 정교하게 바라볼 수 있구나, 보통의 사람들도 이런 시각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그렇지만 정말 그렇게 하려면 몇 년을 읽고 학습해야 하니 먹고사는 생활인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에 가깝고요.
그래서 쉽게 해설하고 제 언어로 쓰고 또 비즈니스에 적용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대학 4학년 때부터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브랜드와 관련한 일들도 그런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철학적이고 인문학적인 것들을 공유하면서 그것을 비즈니스적으로 해석해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질문에서 언급해주신 니체는 일단 재미있어서 좋아해요. 사고방식이 발칙하잖아요. 니체는 19세기를 살았던 사람인데 ‘신은 죽었다’는 선언 자체가 당시에 얼마나 쇼킹했을까를 생각해보는 거죠.
그 시대와 그가 살았던 공간에서 생각하기 힘든, 과학과 수학적 이성을 해석의 준거 기준으로 신의 지위를 박탈시킨 거죠. 그렇게 당대 지식인들에게 쇼킹을 줬던 철학자여서 좋아하고요. 19세기 지성인들 가운데 소쉬르,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유머와 위트가 있었고 조울증을 반복하면서 좋아했던 여자한테도 차이고 사창가를 왔다 갔다 하면서 매독으로 죽는 비극적인 모습도 있었고요. 그런 불안한 자연인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던 사람이고요. 실존인으로서의 니체를 사랑하고 많이 읽으려 하죠. 그런데 책을 읽으려면 내공이 있어야 하고 만만치가 않아요. 그래서 다 이해는 못하고 전집에서 몇 권 정도를 읽고 나름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삶을 긍정하고 기본적으로 자기 애착이 있는 우리이면 좋겠습니다. 부정하고 싶은 나의 모습, 긍정하고 싶은 나의 모습, 무언가 노력하지만 안 되는 내 모습도 결국 나 이니까요.
기획이라는 것의 방향과 중심 역시 거기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의 기획물을 설득하고 타협해 가는 과정에 결국 나다움들이 들어갈 테니까요. 기획의 실질적 효과 그리고 실존적 삶의 주체적 구성을 위해서라도 자기 삶을 긍정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네요.
저에게도 삶을 부정하는 시간들이 있었어요. 공황장애도 왔었고요. 새로운 출발점에 서기가 너무 힘든 시간이었어요. 삶을 긍정하기 위해 정비하는 시간이 몇 달이나 걸렸거든요. 그때 저에게 인사이트를 줬던 건 책이나 선배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세 얼간이>라는 영화 한 편이었어요. 많이 눈물을 쏟으며 스스로를 긍정하는 생각과 그런 연습들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려운 시간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들이 각자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를 긍정하는 그 지점에서 자기 다운 기획으로 살아가시길 응원하고 기대하겠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엘레멘트(LMNT) 대표
-Take Hotel CMO
-전 플러스엑스(PlusX) 전략총괄이사
-고려대학교 언어학 전공
-기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지난 10여 년간 GUCCI, 인천공항, 태영건설, CJ, 삼성, LG, 현대자동차, CU, 롯데시네마, 마켓컬리 등 국내외 유수 기업의 브랜드 전략 및 철학, 브랜드 경험 디자인, 인테리어,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브랜드 매니지먼트 연간 자문 등 기업에 필요한 브랜드 솔루션을 제공해 왔다.
플러스엑스 전략 총괄 이사를 역임하면서 텐센트비디오, 왕이카올라, 알리페이의 BX 전략을 설계했으며, 뱅크샐러드, 스푼라디오 같은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의 리브랜딩 전략을 수립했다.
브랜드는 공동체에 기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본질의 발견》(2017), 《의미의 발견》(2020)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