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고 잘하고 세상이 원하는 것의 교차점
돌고 돌아 다시 출발선에 섰다. 이젠 좀 지겹다는 생각도 든다. 진득하게, 꾸준하게, 묵묵하게 뭔가를 해나가는 게 나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인가 보다. 사실 다 핑계이고 합리화겠지만.. 그동안 정말 많은 실패가 있었고 가깝게 지내는 사람 여럿도 이해 못하는 포기의 과정도 있었다. 그렇게 모든 것의 원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대학 졸업 후 4년의 시간을 보내며 나는 무엇을 느끼고 배우고 달라졌을까. 치기 어린 패기와 열정만 가지고 결심한 일에 겁 없이 부딪혀 보는 용기는 많이 없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아는 게 없을 때가 가장 행복하고 과감할 수 있나 보다. 대신 힘을 많이 빼고 가장 나답게, 내가 바라는 모습의 삶이 뭔지 정말 오랜 시간 고민해 보게 되었다.
1년 정도를 고민하니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눈으로 나와 마주하는 진지한 시간을 가져 볼 수 있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안타깝게도 나는 매우 비겁하고 무책임한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찌질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처음엔 물론 당황했다. 스스로도 찌질하단걸 느낄 정도면 지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느껴왔겠는가?! 그러면서 과거의 치욕스러운 실수와 쪽팔린 순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글로 설명하기는 애매하고 창피한 순간들이다. 좀 고쳐야 될까를 고민해 봤는데 사람이 변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어서 일단 인정하고 좀 더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입장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혼자는 찌질하니까 좋은 사람을 옆에 많이 두기 위해서이다. 그럼 이제 다시, 어디를 향해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될까.
나의 첫 번째 사회경험이 된 교육회사를 창업하는 과정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한 편의 짧은 글이 있다. 현재 경희사이버 대학교 정지훈 교수님이 아래의 필리핀 사회적기업가 올리버 세고비아(Oliver Segovia)의 멋진 말을 인용하여 쓴 칼럼이다. *참고 글
행복은 내가 사랑하고, 잘하고, 세상이 원하는 것의 교차점에 있다. (Happiness comes from the intersection of what you love, what you're good at, and what the world needs.)
세상이 원하고 있으며 해결이 필요한 무수하게 많은 일 중에 내가 사랑하고 잘 하는 일은 도대체 뭘까. 그 교차점을 어떻게 찾아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을까. 매일에 보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일단 내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정말 사랑에 빠져 행복한 순간 혹은 일이 뭔지를 몇 개월간 고민해 봤다. 스스로 생각해도 좀 안 어울려 보이기는 하는데, 나는 책을 정말 좋아한다. 여윳돈이 생겼을 때면 항상 책을 잔뜩 사 왔고,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셀프 선물로 책을 샀다. 돌아보니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선생님의 질문에 처음으로 단독 대답을 외쳤을 때 정답도 '책'이었다!(이것은 운명인가?) 몇 개월 전 회사를 퇴사하고 나서도 지역의 여러 공공도서관을 다녔다. 도서관을 가는 길이 좋았고 어마어마하게 많은 책을 보는 것 자체로 마음이 벅찼다.(읽었다는 게 아니고 그냥 눈으로 서가에 꽂힌 책을 봤다는 말)
그러면 내가 좋아하는 책과 세상이 원하는 것의 교차점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책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앞으로의 '미래'에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특별한 소수, 그중에서도 우리가 바라는 영웅의 등장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평범하지만 지혜로운 다수의 시민이 사회를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고 작은 일에라도 참여할 의지를 가질 때 좀 더 괜찮은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는 것, 즉 독서가 사회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깊이 사고할 수 있는 힘을 심어주는 가장 강력한 힘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최근 이세돌 9단과 알파고 대결 이후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한 관심,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사회 곳곳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특히 현재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자리 대부분을 이들이 대체할 걸로 예상하기에 파장이 더 커보인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문제, 위협 혹은 기회 앞에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 나가야 할지 막연한 걱정이 들기도 한다. 미지의 세계를 더 긍정적으로 만들어 가는 새로운 상상과 창조의 힘이 책을 통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 어쨌든 나는 책이 참 좋다!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만나 이야기하고 책이 있는 도서관, 서점, 북카페가 특히 어린아이들로 더 북적북적했으면 한다.
그래서 소셜벤처 형태의 스타트업이 될 수도 있고 비영리 사회단체가 될 수도 있고 지금처럼 그냥 개인일 수도 있겠지만 '놀이북 noribook' 이란 걸 시작해보려고 한다. '책이랑 놀이를 한다'는 아주 단순한 이름이다. 책이 전달하는 기쁨, 슬픔, 깨달음, 배움, 공감, 통찰, 상상 등을 더 많은 사람이 재미있게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생각나는 것, 듣는 것, 가서 보는 것을 앞으로 이곳에 편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페이스북 그룹을 통해 놀이북noribook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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