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서른여덟
안녕하세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XXXX를 떠나게 되어 퇴직 인사드립니다
한 분 한 분 직접 찾아뵙는 것이 예의인 줄 알면서도, 여건상 이메일로 마지막 인사를 드리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후략)
이번 달에만 벌써 3번째 퇴직 인사 메일이다. 올 초부터 받은 퇴직 메일을 세어보니 20통이 훌쩍 넘어간다.
퇴사 메일도 이제는 어느 정도 형식이 만들어져서, 퇴사 메일 내용도 모두 천편일률이다. 물론 퇴사자 중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은 전체 메일을 보내기 전에 미리 연락을 해 오기도 하고, 따로 찾아오기도 한다.
"XX님. 잠깐 시간 괜찮으세요?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좋은 일이니? 안 좋은 일이니?"
(멋쩍은 웃음)
예전 같으면 갑작스러운 면담 요청 중 십중팔구는 결혼 소식을 알리며 청첩장을 건네주는 일이었지만, 요즘은 퇴직 인사가 훨씬 많다. 처음에는 코로나로 인해 회사가 어려운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퇴사와 이직이 젊은 세대들에게는 과거와 달리 좀 편하게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퇴사를 알려오는 후배에게 어떤 반응을 보이는 것이 좋을까?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크게 "부러움", "격려", "조언", "걱정", "무반응", "분노" 정도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작별 인사를 하러 온 후배에게 "분노"의 반응을 보일 필요까지는 없지만, 배신감을 참지 못해 종종 공개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나의 경우는 "부러움"과 "격려"를 표현하는 편이다. 아직 젊으니까, 공부를 하던 다른 직종을 선택하던, 충분히 잘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격려"와,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실제의 "부러움"도 표현한다.
몇 달 전, 새로운 부서를 맡게 된 이후 처음으로 퇴사를 결정했던 후배가 있다. 다른 회사로의 이직은 아니었고, 육아를 하면서 이커머스에서 유아용품 관련 스타트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주 허무맹랑한 것도 아니었고, 시장성도 충분히 있어 보였다.
네이버 쇼핑, 쿠팡 등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커머스의 기본적인 운영방식을 설명해 주었고, 지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매장도 소개해 주었다. 앞으로 준비과정에서, 또 운영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어려움도 충분히 설명해 주었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을 하라는 인사말도 빼놓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그 후배에게 새로운 퇴사 축하(?) 파티를 마련해 주었다. 사실은 그 후배를 위한 것도 있었지만, 새로운 부서의 직원들에게 "퇴사"라는 조금은 무겁고 어려운 주제에 대해, 조금은 소프트하게, 조직을 떠나는 사람들과 남아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동안 함께 했던 순간을 추억하고, 새로운 출발을 격려해 줄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후배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입사에서 서른여덟에 퇴사를 결심했다. 어찌 보면 인생의 가장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와 30대를 우리 회사에서 치열하게 보낸 것이다. 13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는 결정이 얼마나 어려웠을까. 나는 영상 촬영과 편집을 잘하는 후배에게 퇴사를 예정하고 있는 후배와 친하게 지냈던 동료들의 인터뷰 촬영과, 13년간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여러 사진들을 영상으로 편집해 달라고 부탁했다.
매월 전 부서원이 모이는 경영현황 설명회 날. 나는 마지막 순서로 직원들의 인터뷰가 담긴 깜짝 동영상을 상영했고, "졸업"이라는 표현으로 회사를 떠나는 후배와 남아있는 직원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했다.
13년간 몸담았던 정든 조직을 떠나는 동료에게 설령 아쉬움과 배신감이 들 수는 있겠지만,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겪었던 소중한 추억까지 잊지는 말자. 그리고, 이제 회사를 졸업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동료에게 아낌없는 격려를 해 주자.
다행히 아직 제2의 퇴사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난 언제든 그들의 선택을 응원할 것이고, 부러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