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째 장기 연애, 8년째 동거 중인 커플의 이야기
사실 처음은 아니다.
2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 가끔 보이던 흰머리는 내 눈에 띄기만 하면 족집게로 냅다 뽑아버리곤 했다.
“뭐야, 여보도 이제 나이 먹었구나?”
장난스럽게 놀려도, 남자친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장난을 받아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독, 그 흰머리에 마음이 오래 머물렀다.
토요일은 늘 남자친구가 농구를 하는 날이다.
그날도 어김없이 농구를 하러 나갔는데, 저녁쯤 갑자기 연락이 왔다.
깜짝 놀라 집에 가보니, 현관에서 ‘다녀왔어~’라고 인사하는 내게 남자친구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여보, 나 다리가 안 움직여!"
달려가 보니, 왼쪽 다리를 제대로 못 쓰고 있었다.
늦은 오후 시간이라 일단 참기로 하고, 다음 날 병원에 갔다.
진료실엔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이 있었는데, 모든 사람이 보기에도 남자친구의 상태가 가장 안 좋아 보였다.
다른 분들은 그래도 걸을 수라도 있는데, 남자친구는 혼자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게 아닌가.
의사 소견으로는 무릎에 염증이 생긴 것이었고, 결국 주사 두 방과 약 처방을 받아 나왔다.
엑스레이 촬영을 기다리면서 남자친구를 바라봤다.
그 순간, 유독 선명하게 보이는 흰머리 하나.
왜인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하면서 고생하는 모습이 떠오르고,
20살 초반에 만나 흰머리라곤 상상도 못 했던 우리의 시간이 스쳐 지나가고,
우리가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혼자 절뚝거리며 주사실로 향하는 남자친구를 보는데,
어디선가 서글픈 감정이 밀려왔다.
집에 돌아와 아까 본 흰머리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리고 조심스레 뽑으며 말했다.
"오늘따라 이 흰머리가 왜 이렇게 짠하냐."
남자친구는 “흰머리 뽑으면 다시 안 난대~” 하고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문득, 우리가 함께 늙어가는 모습이 떠올랐다.
언젠가 주름이 하나둘 늘고, 흰머리가 더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가겠지.
나는 아마도 여전히 남자친구의 흰머리를 발견하고는 장난스레 뽑으려 할 것이고,
어느 순간 한두 개가 아닌, 수없이 많은 흰머리를 보고는 뽑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문득 거울을 보면, 내 머리카락도 어느새 하얗게 변해 있겠지.
우리의 미래가 어떤 모습이든,
흰머리가 많아지고 주름이 늘어도,
지금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흰머리가 많아져도 상관없으니,
우리의 미래는 건강하고 따뜻한 노부부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함께, 천천히, 오래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