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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하루 May 21. 2024

[처음엔 실수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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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실수로 시작되었다]  우체국 / 찰스 부코스키


처음엔 실수로 시작되었다. 원래는 색칠과 거리가 먼 녀석에게 색의 아름다움, 색칠의 즐거움을 알려주려는 생각이었다.


물감을 색색이 파렛트에 짜놓고, 붓, 물통, 도화지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 두었다.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그렇듯, 듣는 둥 마는 둥 딴짓을 하며 물감 튜브만 만지작거렸다. 말랑말랑한 튜브의 느낌이 좋았는지 계속 만지작거리던 그 순간! 만지는 내내 조금씩 헐거워졌던 뚜껑이 열리면서 물감이 튀어나왔다.


‘찌 – 익’


물감은 바닥에 깔아둔 4절 도화지 위로 쏟아졌고 신이 난 아이는 손으로 물감을 문질러 댔다. 미끌미끌한 촉감, 색이 번져가는 모습에 신이나 깔깔대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혼을 낼 수도 없었다. 얌전히 붓에 물감을 묻혀 색을 칠할 거라고 생각한 내가 잘못 한거지. 애한테 무슨 잘못이 있겠어. 


기왕 이렇게 된 거 방법을 바꿨다. 아예 사이즈가 큰 전지로 바꿔 바닥에 깔았다. 군데 군데 물감을 색깔별로 짜두고 마음껏 문지르게 했다. 그렇게 신나게 문지르다 색이 섞이는 부분에서는 잠깐씩 호기심도 드러내며 색을 가지고 놀았다. 옷은 이미 알록달록, 얼굴도 팔다리도 알록달록. 색 하나하나의 느낌이나 정보는 몰라도 색이라는 것이 예쁘고 즐겁다는 것은 온몸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말은 '놀이'라고 하지만 자꾸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했다. 내가 생각해둔 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났고, 따라오지 않는 아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내가 어른이고, 더 많은 경험을 했으니, 내방식이 옳다고 믿었다. 내가 지금 싫어하는 어른들의 모습, 그게 나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이는 고집도 자기주관도 센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가르치려 드는 엄마, 본인이 원하지 않는것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아이. 창과 방패의 대결. 어떤 날은 아주 수월하고 즐겁게 놀다가 마무리되지만 어떤 날은 놀이로 시작했으나 고성과 눈물로 끝났다. 이런 대치구도는 아이가 성인이 되어서야 끝났다. 엄마의 패배.


지금도 한 번씩 입 밖으로 잔소리가 튀어나온다. 

'이건 이렇게 해야지’ '이게 맞아' '일단 해보고 말해' '왜 그렇게 해?' 

내 기준에서 벗어나면 자꾸 지적을 하려고 한다. 물론 여전히 녀석은 고집불통에 마이웨이다. 그냥 나 혼자 떠들고 화내고 포기하는 중. 나 하나 제대로 건사 못하면서 왜 자꾸 가르치려 하는 걸까.


내가 싫어하던 어른들의 모습이 나에게 보일때마다 '흠칫' 놀란다. 다시 한번 되새겨본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그저, 아이가 도움을 청할 때 , 도움이나 조언을 원할 때 도와주는 역할 뿐이라는 것을. 어렵다.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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