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by 박혜경



살다가 살아보다가 더는 못 살 것 같으면

아무도 없는 산비탈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누워 곡기를 끊겠다고 너는 말했지


나라도 곁에 없으면

당장 일어나 산으로 떠날 것처럼


두 손에 심장을 꺼내 쥔 사람처럼 취해 말했지

나는 너무 놀라 번개같이,

번개같이 사랑을 발명해야만 했네


<사랑의 발명> '나무는 간다'






사랑은 ‘발명하는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상대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누구든 괜찮았다. 우는 아이에게 젖을 주는 양 그의 불안을 힘껏 끌어안았다. 내 안의 이글거리는 모성애는 불행을 발견하는 나침반 같았다. 어디선가 부풀어 오르는 불안의 싹을 찾아내었으므로. 누군가에 필요한 존재가 되었음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본인을 사랑할 수 없음에 존재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는 불행한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말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고독 속에서 홀로서는 능력을 통해 상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준비되었을 때 가능하다“ 뒤통수가 얼얼했다. 본인의 분리불안을 어찌하지 못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 타인에게 마음을 떠먹이는 내가 보였다. 내 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기를 갈망하는 내 모습이. 진정한 사랑을 위해서는 나를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그의 말이 뇌리에 박혔다. 타인을 사랑한다는 이면에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 나였으므로. 고독이라는 감옥을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사랑을 이용했을 뿐이다.


세월의 무게를 더하며 차츰 깨닫는다. 타인을 사랑하기 이전에 나를 사랑함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도. 성숙한 사랑을 하기 위해 본인의 분리불안을 극복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나 자신으로 우뚝 서기 전까지는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


“사랑은 그냥 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할 수 있는 됨됨이를 갖추어 나가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에리히 프롬의 말을 떠올린다. 누군가는 사랑이 감정이며, 풍덩 빠지는 것이라 말할 테다.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유행가에도 콧방귀를 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방식이든 노력이 필요하다. 때때로 사랑은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된다. 내 안에 '사랑하는 능력'을 갈고 닦아 나와 타인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건강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는 것. 그것이 사랑을 노력하는 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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