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속, 나도 엄마가 필요했다

부모에 대한 기대와 실망, 그 안에서 화해하는 법

by 공공이

늦은 대학 졸업, 이른 결혼, 20대 출산, 전업주부 7년.


32살에 운 좋게 대기업 육아기 경력단절 우대 채용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2019년.


그해 말, 코로나가 창궐했다.


아이들 어린이집, 학교에 확진자가 발생하면, 교육기관은 바로 문을 닫고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거나, 데려가라고 연락이 오기 일쑤였다.


연락을 받아도 강남에서 집까지 1시간, 시간도 오래 걸렸고, '이래서 워킹맘은 안된다' 소리를 들을까봐 회사에 이야기 하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정말이지 그 때는, 하루가 멀다하고 확진자가 발생했으니까.


특히 한번 확진자가 발생하면 밀접접촉자는 7일씩 격리되었었는데, 아이는 밀접접촉자여도, 그 공간에 함께 있지 않았던 부모는 밀접접촉자가 아니기에, 6살 아이만 혼자 집에 두고 출근을 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할 때가 많았다.


그 때 나는 엄마한테 매번 손을 내밀었다. 엄마 미안한데 우리 애 좀 봐주면 안될까? 엄마 집에 우리 애 좀 맡기면 안될까?


그 때마다 엄마는 나를 거절했다.


우리 집까지 고속도로 운전이 어려워서(40분 거리다), 엄마가 장염이 걸려서, 감기가 심해서, 코로나 옮을까 걱정 되어서, 그 때마다 이유는 가지각색이었고, 나는 매번 거절 당하면서도, 제일 먼저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었다. 엄마 나 좀 도와줘, 그 말이 가장 먼저 나왔다.


시댁에 여러 번, 이모들이 와서 돌봐주기도 또 여러 번 지나고 나서야, 엄마네서 일주일 신세를 질 수가 있었다. 기억나는 장면이 두가지 있는데, 하나는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이들 손자국을 (평소보다 더 강박적으로)손걸레를 들고 쫓아 다니며 지우던 엄마의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저녁 먹는 식당에 어른들 힘들게 왜 뛰어 오지 않고 '걸어 오냐'던 아빠의 타박이다.


그 때 나는 세상에 홀로 버려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한한 사랑과 희생의 아이콘으로 그려지는 '부모'라는 존재가, 내가 가장 도움이 필요해서 손을 내민 순간에 매번 거절하고 불편한 기색을 비치는 것은 '이 세상에 너가 기댈 곳은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엄마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은 봐주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를 늘 말씀하셨기에, 내가 제 풀에 꺾여 다시 '전업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길 바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나 또한 겨우 얻은 이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 시간은 그렇게 부모 자식간 서로 상처 주고, 상처 받으며 버텨 낸 시간이 되었다(거절하는 엄마도 상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건 너무도 슬픈 일이다. 내가 새벽 5시에 출근한다는 얘기에, 엄마는 매일 깜깜하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 새벽을 바라보며 우셨다고 한다. 내가 안쓰러워 울고, 아이들이 안쓰러워 울고. 엄마가 싸다 주는 반찬통은 항상 아이들 보다는 내 위주의 매콤한 반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엄마는 그저 엄마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할 뿐이었다.


래서 나는 내 안에서 부모님을 이해하고, 내 감정과 화해를 하기로 하였다. 무한한 사랑과 희생의 부모상은, 어쩌면 현실의 많은 부모들에겐 너무 큰 희생을 강요하는 프레임인 지도 모른다. 그걸 전제로 내 부모에게 '기대'하면 서로가 힘들어 질 뿐이다. 부모도 그저 사람이기에, 하기 싫은 게 있고, 하고 싶은 게 있고, 그저 본인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할 뿐이다. 내 부모의 삶과 의견 또한 존중받아 마땅한 것이며, 내 부모가 줄 수 없는 것을 떼 쓰듯 기대하고 강요하는 것 또한 나의 일방적인 욕심에 불과한 것이다. 그저 나의 필요와 조금 어긋나 있더라도, 건네 주시는 무언가에 담긴 사랑만 감사히 받는 것이 서로가 행복해지는 길이다.


그 뒤로 나는 대부분의 기대를 내려 놓았다. 부모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남편, 지인, 직장 동료 등 내가 아닌 타인 모두에 대하여, 나의 일방적인 기대는 모두 내려 놓기로 했다. 내 기대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것들은 받아 들여지지 않기에, 그 폭력은 거꾸로 내게 돌아와 나도 다치게 한다.


그어진 선에 실망하지도, 내 선을 강요하지도 말고,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것.


곡해하지도 말고, 왜곡하지도 말고, 사랑을 전하는 방식이 저마다 다르며, 해줄 수 있는 부분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렇게 나는 내 안에서, 내 부모와 화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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