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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 정 Aug 31. 2015

슬로우 슬로우 쿡쿡

아르헨티나 바비큐 '아사도 Asado'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남편 직장의 특성상 우리 부부는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귀며 그들의 문화를 경험하며 산다. 일하는 남편과는 달라서 학교 다니는 어린아이도 없고 종교 적인 모임도 없는 나에게는 사람을 사귀기 가장 좋은 자리가 '파티'라고 할 수 있다. 홍콩인이라면 친지가 가까이 있어 여러 경사로 인한 더 많은 파티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홍콩에 이주해 사는 외국인들은 그러한 환경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티를 참 많이 즐긴다. 홍콩에서의 파티는 대부분 집이 좁은 관계로 레스토랑이나 아파트의 클럽 하우스 혹은 아파트 단지라면 거의 갖추고 있는 바비큐 장에서 많이 하고 가끔 야외로 나가 그곳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홍콩에 와서 처음 해본 보트 파티 또한 인상적이었다. 렌트 보트를 예약해 홍콩섬 주변을 천천히 돌며 즐기는 보트 파티는 홍콩에서 살면서 꼭 즐겨 볼 만한 파티 중 하나다. 그러한 여러 스타일의 파티 중에 우리 부부가 즐겁게 참여하는 파티를 하나 꼽자면 아르헨티나식 '아사도'를 들 수 있다. 지난 주말 다녀온 '아사도' 파티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삼페인 한잔 받아 들고..

몇 년 전, 남편 회사 동료 아르헨티나인 세바스찬과 호주인 부인 토니가 홍콩의 동남쪽 전원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사이쿵이란 곳에 있는 국립 공원 안의 아름다운 바닷가를 접한 땅을 사서 그들만의 취향대로 집을 지었다. 그리고 매년 세바스찬의 생일을 맞아 아사도 파티를 벌인다. 이날은 그들 부부의 직장 동료들은 물론 주변 이웃들도 모여들어 그야말로 글로벌스러운 파티라 할 수 있겠다. 사이쿵 타운에서도 국립 공원 지역 안으로 한참 들어가야 하는 동네라 택시를 타든 자가용으로 가든 거리적 불편함이 있어 보통 생일 파티라면 축하 메시지나 띄우고 말겠지만 그런저런 이유를 붙이지 않고 선뜻 파티에 참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파티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아르헨티나 식 바비큐 아사도이다. 세바스찬 부부의 환대를 받으며 이곳이 홍콩인가 싶을 정도의 풀 내음 가득한 공기와 바닷가가 확 트인 전경과 함께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아사도의 불꽃에 바쁘고 복잡했던 하루하루 홍콩 도시 생활의 피곤함이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고나 할까?

통으로 굽는 새끼 돼지와 양고기 그리고 큼직한 초리소와 블러드 소시지

아르헨티나의 이름난 세 가지를 꼽는다면 그곳의 이름난 와인 '말벡'과 축구 선수 '마라도나' 그리고 '탱고'를 들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바로 '아사도'를 든다..

아사도는 로스트, 굽는다는 의미로  아르헨티나, 칠레 그 외 몇몇 남미 국가의 그들 식의 바비큐, 바비큐가 중심이 된 친목 모임을 일컫는다. 오래전 아르헨티나가 유럽의 곡물과 육류 수출국으로 물망에 올랐을 때 팜파라는 농촌 지역의 한 농장 주인이 유럽을 방문 하고 돌아와 유럽의 슬로우 쿡 고기 요리에 아이디어를 내어 전하기 시작했다는데,  이것이 아르헨티나의 카우보이 가우초들의 문화에 융합되어 인기를 얻고, 지금은 주말이면 아르헨티나 가족들의 모임을 빛내 주는 멋진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나무가 탄 뒤 숯으로 된 자리에 고기 올린 그릴을 올린다.

아사도의 고기 굽는 방법을 보면 땅 위나 커다란 철제 판 위에 나무를 올려 불을 붙이고 그위에 빠리야스(parrillas)라 불리는 그릴을 올리고 큰 덩어리의 통 갈비나 두터운 스테이크 등의 소고기, 돼지 고기, 양고기 등등의 통 구이용 고기를 올려 굽거나 스페니쉬 소시지 초리소나 내장 등을 올려 굽기도 한다. 언뜻 들어보면 별 차이 없는 보통 우리네가 많이 접한 바비큐와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직접 불위에 그릴을 올려 센 불에 단시간에 굽는 방식과는 다르게 불과의 거리를 두어 세지 않은 불기운이 전하는 열기로 굽거나 불 붙은 나무가 숯이 되고 잔열이 남았을 때 그릴을 올려 낮은 열로 몇 시간을 은근히 익히는 것이 다르다. 여기에 고기가 구워지면서 기름이 불위로 떨어지져서 그을음으로 인해 몸에 나쁜 케미컬이 고기에 전가되는 것을  피해  기름이 땅에 떨어지도록 불과의 거리를 조금 더 두고 하다 보면 시간은 훨씬 더 걸린다.  아사도 파티가 있는 날 아침 11시에 새끼 통 돼지와 통 새끼 양고기를 굽기 시작한다는데 저녁 느지막이 서빙이 되는 걸 보면 꽤 오래 걸리는 요리가 아닐 수 없다.

바비큐가 익어가는 사이사이 소금 기름을 발라준다.

아사도에  사용되는 고기는 양념에 재우지 않고 생고기 자체로 올려  중간중간 소금 기름을 발라준다. 슬로우 쿡에 어울리는 부드러운 고기 맛을 내기 위해 불과의 거리나 불의 세기도  중간중간 조절하여 주는데 삽으로 불  조절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확실히 이것은 남자의 요리다.

고기가 구워지고 준비가 되는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은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며 치즈류나 핑거 푸드로 적당히 요기를 하며 새로 만난 사람들, 오래 알던 사람들 서로서로 즐거운 사교 시간을 갖게 된다. 날씨가 선선하다면 바비큐가 구워지는 장작 불가에 모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운다면 더 할 나위 없을 것 같다.

장시간 낮은 온도로  찜질하다시피 구워진 고기들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참으로 연하다. 통갈비는 소갈비찜을 슬로우 쿠커에 했을  때처럼 뼈와 살의 분리도 쉽게 된다. 통째로 구운 통돼지나 통 양고기의 껍질 부분은 바삭바삭 짭짜름한 과자를 씹는 듯 고소하다. 초리소 역시 센 불로 구울  때처럼 껍질이 터지지 않아 소시지 안의 육즙이 그대로 있어 맛이 더욱 좋다.

소금 간만으로 구워진 아사도에는 파슬리, 올리브 유, 와인 식초 등으로 만드는 치미추리 소스가 함께 따른다. 세바스찬의 파티에는 외국인이 모이는 것을 감안해 머스터드, 칠리 소스, 페리페리 소스(스페니쉬 칠리 소스) 등등 여러 가지 주방에 있는 소스류는 다 내다 놓는 것 같다. 이번 파티에는 내가 직접 치미추리 소스를 한병 만들어 갔더니  고기뿐 아니라 샐러드 드레싱으로도 치미추리 소스를 찾는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  요리하는 사람에게는 제일 기쁜 일이다.

치미추리 소스 레시피 가기

 그렇게 먹고 마시고 떠드는 동안 시간은 간다.  그리고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뜬다. 일요일인 다음 날은 각자 자신들의 풍습대로 해장을 하고 새로 시작되는 주일을 맞이 할 에너지를  축적할 것이다. 나 역시 나대로 콩나물 해장국으로 속을 달랠 것이다.

한국 아줌마의 홍콩 한 귀퉁이 조용한 바닷가에서 지구 반대편의 아르헨티나의 아름다운 문화 경험.

아사도는 먹는 음식 그 자체만도 아니요,  요리하는 그 자체만도 아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묶어 주는 그런 것이었다. 다음 아사도 파티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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