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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홍콩 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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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 정 Sep 02. 2015

용이 지나는 그늘

버려진 어촌  

홍콩의 관문 첵랍콕 공항에서 도시의 심장부 쪽으로 이동하려면 꼭 지나야 하는 다리가 있다. 도로와 철도를 연결해주는 용의 몸통 칭마대교. 칭마 대교의 이름은 다리를 연결해 주는 칭이 섬과 다리를 지나며 보이는 채 1평방 킬로미터도 안 되는 작은 마완 섬의 이름에서 따왔다는데 장기간 이어졌을 건축 공사의 불편에 대한 보상에서 였을까, 앞으로의 개발을 약속하는 의미에서 였을까? 거대한 용의 모습에 가려져 보여지지 않는 아니 보이지 않는 용의 그림자 부분의 한 조각, 마완 섬의 버려진 어촌 마을을 담아본다.

버려진 마을에서 보이는 칭마 대교

뱃길이 교통 수단의 전부였던 오랜 옛날에는 마완 섬은 사람이 사는지도 몰랐던 아주 작은 섬이다. 가끔 지나던 해적들이나 뱃길을 멈추던 곳이었고 1974년 영국 정부의 사찰로 잠깐 관심을 받은 일 외에는 씨족 사회로 이루어진 마을 어부들과 농부들 가족들의 느긋한 일상과 바쁜 삶으로 평화롭게 이어진 나날들이었다.

 마을이  이루어진 것은 이삼백 년 전, 칭이 섬에서 온 찬씨 가족들에 의해 섬의 중심부에 틴리우 마을을 세우고 농사를 지으며 살기 시작했고, 근대에 들어와 우씨 가문과 팡씨 가문 그리고 또 다른 우씨 가문에 의해 바닷가에 어촌 마을이 세워진다. 우씨 가문은 물고기 잡이와 새우젓 제조로 팡씨 가문은 닭과 오리를 치며 생활을 연명하고 수상 가옥과 전통 가옥이 들어선 마을에 유치원과 학교를 짓고 배가 닿을 선착장을 만들어 마을 회관과 바다 여신을 모신 틴 하우 템플을 중심으로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며 외부인들의 무관심 속에 조용히 살아왔다.

문이 굳게 닫힌 아이들이 다녔던 퐁옌 학교

근대까지 이곳에는 직접 잡은 해산물로 요리한 맛난 시푸드 레스토랑들이 있었고 유일한 외부와의 통로였던 삼정을 오가는 뱃길을 통해 들어온 외부인들에게 특유의 쾌쾌한 냄새를 풍기며 바닷가 공터에서 새우 페이스트(우리나라 곤쟁이라 불리는 새우의 젓갈을 갈아 만든 것)를 만들어 팔았다.    

 옛 틴하우 템플. 개발된 지역에 새로 지은 또 다른 틴하우 템플이 있다.

70년대 사회가  현대화되면서 고기 잡이로 연명하기 힘들어진 어부들은 어부 생활을 접거나 어촌 마을 바닷가에 망을 치고 뗏목을 띄워 물고기를 기르기 시작하게 된다. 태평양을 통하는  바닷길의 한편인 그곳에 뗏목을 띄우고 보금자리를 잡은 그들의 가난하고 힘든 모습은 조금씩 사회 문제의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고 미국 정부의 보조로 홍콩 정부는 부둣가가 바라 보이는 마완섬 언덕 쪽에 24 가족이 살수 있는 근대화된 주택을 몇 채 지원해  이주시킨다. 집에는 샤워시설이나 목욕탕이 따로 없었고 공동 화장실과 공동 샤워장이 따로 지어졌다. 그곳이 마완 섬의 어촌이다.

지금도 사람의 손길이 오가는 버려진 피쉬 팜.
뒤에는 란타우 섬이 보인다.

 마을에 청소기 부품 생산을 하는 공장이 들어선다. 어부로는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공장으로 출근하며 생활을 이어가지만, 시대가 변하고 새 세대가 자라면서 젊은 사람들이 섬을 떠나자 공장마저도 인력난에 문을 닫는다. 이제는 나이 든 사람들만 집에 남은 마완섬. 홍콩 정부가 구제를 한다고 발표한다. 바로 칭마 대교 건설.

유령 마을이된 어촌에서 보이는 칭마 대교

80년대 후반 공항과 컨테이너 부두 개발 사업의 일환인 로즈 가든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공항이 있는 란타우 섬과 신계 지역을 연결하는 칭마 대교 건설. 마완 섬의 평화스러운 어촌은 슬프게도 경제적 풍요를 갈망하게 된 사람들로 철저히  외면당하며 무너지기 시작한다.

대교가  건설되며 마을 사람들은 뒤늦게 마완이라는 작은 섬은 용의 몸통과 같은 칭마 대교를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하는 외톨이가 되는 모습을 지켜만 보아야 했다. 거대한 철교는 마완을 무시한 채 칭이와 란타우를  연결했을 뿐 마완에서 외부로 나가는 길은 여전히 뱃길이었다.

버려진 수상 가옥 멀리 란타우로 들어가는 칭마 대교가 보인다.

마완에 남아 있는 그들에게 다리와 연결이 없다는 것은 앞으로 마완의 쇠퇴와 고통을 의미했다. 당연히 그들은 반발했고 일어섰다. 긴 싸움... 그리고 1994년, 홍콩 정부는 마완섬에 대규모 주거 지역을 건설하는 조건으로 칭마 대교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다. 하지만 기다려야 했다. 칭마 대교 건설이 끝날 때까지...

리조트 스타일 아파트 단지와 마을 주민이 이주된 빌리지 하우스

1997년, 드디어 마완 섬에 섬광이 이는 뉴스. 선흥카이 건설에서 대부분이 공터로 있던 마완 섬 북동쪽으로 리조트 스타일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건설한다는 발표와 함께 발 빠른 움직임이 일었다. 아파트 건설을 위해 대교로 연결되는 길이 뚫리고 주민 이주를 위해 마을이 있던 부근에 뉴 틴리우 빌리지라는 삼층 빌리지 하우스가 지어졌다. 2004년 드디어 새로 지어진 빌리지 하우스로 어촌 마을 사람들은 이주를 시작한다.

일생의 추억을 만든 곳을 떠나는 나이 든 사람들은 아쉬움 반 새로움 반 아니었을까? 그곳에는 명절이면 사자춤이, 손주들의 학교 행사가, 이웃의 결혼식이, 신년에는 폭죽이 터졌던 곳이겠다. 물론 젊은 이들은 새로운 집의 편리한 욕실과 화장실 주방 시설에 열광하였겠지만....

버려진 마을 길가

이제 평화롭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던 바닷가 어촌 마을은 90년대 이전의 생활상을 남기고 텅 빈 집들로 유령 마을이 되었다. 맛난 시푸드를 내던 식당 들은 문을 닫았고, 꼬리한 새우젓 냄새를 풍기며 새우 페이스트를 말리던 대바구니도 자취를 감추었다. 좁은 골목길엔 이끼가 잔뜩 피었고 벽들은 무너지고 있다.

불공평한 이주에 대한 항의

창문도 현관 문도 떨어져나간 집들은 외부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 철조망으로 막아 놓았다. 간간이 지금도 불공평한 이주를 반대하는 몇몇 사람들의 인기척이 보이고 이주를 거부한 몇 집만이 사람이 살고 있는 듯하다. 수상 가옥은 나무가 썩어 조금만 건드려도 폭싹 주저 앉을 듯한 모습이다.

빈 수상 가옥
빈 수상 가옥

버려지고 무너져 가는 낡은 빈집들을 지나며 이 곳이 전성기였을 시절의 모습을 그려본다.

고깃배가 좁은 부두를 들락거리고, 페리를 타고 들어와 식당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사람들과 특산물 구입을 위해 살피며 걷는 외부인들 , 방문자를 붙드는 해산물 식당 주인이 보이고, 새우를 말리며 손자 손녀 자랑을 하시는 노인들이 보인다. 뼈다귀만 만 남은 쓰러져가는 건물들이 그 시절 삶과 거짓과 무시의 증인이 되어 주는 듯 바다만 바라본다.

집집마다 정부 토지라는 싸인이 붙어있다.

바닷가에 자리한 도시인 만큼 옛 홍콩은 많은 어촌 마을이 있었다. 대부분  도시화되어 현대식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고 최신식 빌딩과 쇼핑 몰이 자리했지만 아직도  군데군데 낡은 어촌 마을을 찾을 수 있다.

정부의 싸인이 붙어 있는 철조망을 보면서  머지않아 이곳을 허물고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뀔 것을 예감한다. 그렇게 용의 그림자로 용을 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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