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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비 정 Sep 08. 2015

천국의 빵

할라 브레드

유대인을 남편으로 둔 관계로 내가 제일 자주 굽는 빵은 할라 빵이다. 물론 촉촉하면서 톡톡한 질감과 달짝지근한 맛, 구울 때마다 다른 모양으로 완성돼 나오는 막직한 덩어리의 푸짐함에  좋아하는 빵이기도 하다. 매주 안식일마다 굽는 정성은 없지만 한 달에 두어 번 또는 유대인 명절 때가 되면 그 명절에 맞는 할라 빵을 굽는다.

조만간 유대인의 명절 로쉬 하사나가 다가오는데 그 명절과 겹쳐 우리 부부는 크루즈 여행을 떠나게 되어 미리 할라 빵을 굽기로 하였다. 로쉬 하사나에 맞춰 둥글게 모양 잡은 할라와 이웃과 나눌 타원형 할라, 두 덩어리를 보통 때 보다 큼직하게 구워냈더니 '내 인생에 제일 큰 할라로군' 하고 남편이 한마디 던진다.

유대어로 할라(חלה, Challah)의 의미는 (portion, 분배)이다. 유대인의 생활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그들의 상징적인 이 빵의 유래는 4000년 전 유대인의 역사 속으로 올라간다. 할라라는 단어가 첫 번째  언급된 것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시나이산을 떠나 모압 평원에 이르기 까지 유대인의 광야 이야기를 담은 바이블 '민수기'의 한 구절에서이다.

..... When you enter the land where I bring you, it shall be that when you eat of the bread of the land, you shall set aside a portion for God. Of the first of your dough you shall set aside a loaf as an offering; as the offering of the threshing-floor, so you shall set it aside. From the first of your dough you shall give to God an offering throughout your generations.

(내가 인도하는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에서 난 곡식의 빵을 먹을 때, 반죽을 분배하여 신을 위하여 따로 놓아라. 첫 번째 반죽의 한 덩이는 제를 올리기 위해 따로 놓는 것과 같이 타작한 마당에도 따로 놓아 제를 드려라.  첫 빵을 신께 올리고 너희 대대로 그리 할지라.)

(민수기 15:18-21)

여기서 할라 빵의 반죽을 땋기 위해 덩어리를 자른 후 한 덩어리를 사제를 위해 십일조로 따로 바치는 유대인의 종교적 풍습이 시작된다.


금요일 해지기전 몇 분 전부터 시작되는 유대인의 안식일은  토요일해가 지고 별 세개가 뜨기 까지 이다. 정통 유대교인들은 안식일에  노동이나 일은 물론이며 불을 지펴 음식을  장만하는 일도 금지되고, 청소를 하는 일도, 전기를 사용하여 텔레비전을 보거나 차를 타고 운전하는 일도 금기라고 한다. 이에 안식일에 올려지는 할라 브레드는 목요일 저녁에 반죽해 밤새 발효시켜 금요일 오전에 구워내고 금요일 저녁 식사와 토요일 점심 식사와 저녁 식사, 세 번에 걸쳐 식탁에 올린다. 물론 이 힘든 안식일 의식은 정통 유대교인들의 이야기이며 대부분의 현대 유대인들은 금요일 저녁의 두덩이 할라 빵과 시나고그의 예배 참여, 코셔 룰을 지키는 식사 정도로 간략하게 지낸다.

광야의 시기에 하늘에서 내려준 '만나'라는 것이 있다. 탈출 후 식량이 떨어지자 안식일 전날 밤에 하늘에서  이슬처럼 내린 것이 있었는데 달고 맛도 있어 집집마다 그것을 거두어 두덩어리의 빵을 구웠다고 한다. 여기서 두덩어리의 할라 빵을 안식일 식탁에 올리는 풍습이 생겼다.

두 덩이의 할라 빵은 세줄, 네 줄, 다섯 줄 여섯 줄, 일곱 줄 등등의 반죽을 나누어 긴 가닥을 만들어 땋는다. 이 가닥 가닥은 팔들이 얽힌 것을 상징하며 사랑, 진리, 평화, 창조, 자유, 가족 결속, 화합 등을 의미한다. 안식일에는 대부분 여섯 가닥으로 땋은 빵 두 덩어리를 만들어 빵 두 덩이가 모두 열두 가닥이 되도록 하는데 유대인의 12 부족을 의미한다고 한다.

안식일 이외에도 유대인의 명절에는 할라 빵이 식탁에 오른다. 각  명절마다 또 다른 모양의 할라 빵이 오르는데 이번 달 13일이면  시작되는 로쉬 하사나에는 시작과 끝이 없는 영원을 의미하는 둥근 모양으로 땋아진 할라 빵이 오르며, 퓨림절에는 하만의 귀를 닮은 트라이앵글 모양의 할라 빵이 오르고, 모세가 십계명과 토라를 받은 것을 기념하는 오순절엔 십계가 적힌 태블릿을 의미하는 타원형 할라 빵 두덩이를 올린다.

물론 명절이나 안식일이 아니라도 가족 모임이나 파티 때도 등장하는 것이 할라 빵이다. 우리 시댁 식구들도 요즘은 대부분 코셔 빵집에서 사다 먹는다. 종류도 많이 생겨 통밀로 만든 할라 빵이며 호밀로 만든 할라 빵도 있고 반죽에 건포도나 견과를 넣은 할라도 많다. 홍콩에선 할라 빵 파는 곳을 못 보았으니 어찌하랴, 내손으로 굽는 수밖에....

우리 부부가 보름간의 이번 여행을 끝나고 돌아오면 곧이어 호주 사시는 시부모님께서 홍콩을 아들 내외 보러 오신다. 틈만 나면 구웠던 나의 할라 빵 솜씨를 보여 드릴 날이  머지않았다. 그땐 지금 보다더 크게 구워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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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하시는 시아버님과 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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