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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뢰 Aug 17. 2024

늦지 않게 너에게 닿기를

이모

한 발, 한 발 언덕을 걸어 올라간다. 

소통이라……. 내가 요즘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소통. 

나는 이제 사회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어라도 배워야 했다. 

이모 말대로라면 나는 조금 특별한 사람이니까.      


듣지 못한다는 것은 타인들의 오해와 편견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때로는 억울할 때도 있고, 속상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자리에만 머무를 수 없다.     


 “못 듣는 게 무슨 벼슬이나 된다고.”


1초에 다섯 번은 눈을 깜박인 것 같다. 

고개를 돌리며 내뱉은 그녀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표정에는 경멸이 떠올랐다. 

벼슬이 뭐지? 


 “벼슬? ……관직이라고 해야 하나? 이게 더 어려운 말인가? 파랑이는 어디서 그런 말 들었어?”


조카가 나이에 비해 어려운 단어를 물어본다는 생각이었는지 이모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나에게 되물었다. 

지금의 나라면 절대 물어보지 않았을 텐데. 그때는 너무나 순진했다. 

나는 입을 뻐금거리고,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뜻을 전했다.


 ‘선생님이. 못 듣는 게 벼슬이라고.’


말의 뜻을 알아들은 이모의 얼굴에서 순식간에 핏기가 가셨다. 

위로 올라갔던 입꼬리도 뒤틀렸다. 

하얗던 이모의 얼굴은 불과 몇 초 만에 빨갛게 변했다. 

이모의 얼굴은 표정과 색이 순식간에 바뀌면서 바빠져 갔다. 

이모가 내 양팔을 붙잡고 천천히 말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모의 감정이 왜 바뀌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지금 그녀의 기분이 유쾌하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어리둥절하고 있는 나를 보며 이모가 천천히 다시 말했다. 


 “파랑아. 살면서 앞으로 이런 얘기 숱하게 들을 거야. 하지만 절대 기죽지 마. 

너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들 귀담아듣지 마. 

너는 훨씬 가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런 인간들이 하는 말에 휩쓸리면 안 돼. 알았지?”


단호하게 말하는 이모에게 모르겠다고 하면 실망할까 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살면서 나는 이모의 말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숱하게 들었던 말들. 

가끔 이모의 말을 떠올린다. 

이모가 힘주어 말하며 나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들. 

단어 하나하나, 음절 하나하나 천천히 또박또박 내뱉었던 말들. 


이모의 말처럼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사람일까? 라는 의구심도 들지만 

그런데도 이모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때문에. 

나는 그들의 쓸데없는 말들을 차단하는 능력이 생겼고, 이제 내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장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상처받고, 스스로 치유하고 일어선다. 

타인과의 소통도 나에게 이런 것이 아닐까? 상처받고, 치유하고.     



 설탕 80g

 달걀 80g

계량컵의 눈금을 들여다본다. 

사회로 나가기 위한 첫걸음. 

빵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꼽으라면 당연히 이모 때문이다. 

이모는 커피 향보다 빵 냄새가 좋다고 했다. 

더 따듯하고 포근해서. 


그리고 나는 묘한 느낌의 차이 때문에? 글을 통해 알았다. 

커피는 향이라 부르고 빵은 냄새라 부른다는 것을. 

재미있는 차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두 후각을 통해 느끼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향과 냄새의 차이라니. 재미있다. 


이모와 함께 사는 우리 집이 이모의 말처럼 따듯하고 포근한, 그리고 내 생각처럼 향이 아닌 

냄새가 나는 집이었으면 했다. 

기분이 좋아지는 빵 냄새. 

노트에 메모하고 방금 구운 마들렌을 포장한다. 

이모와 마주 보고 먹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모의 입으로 들어가는 마들렌. 


 “맛있네! 맛있다!”


이모가 웃으며 말한다. 

이모는 나와 대화할 때는 항상 천천히 말한다. 

지금의 나는 어렸을 때보다 훨씬 잘 보는데도 말이다. 

이모가 웃으니 나도 기분이 좋다. 


 “파랑아, 내일은 이모도 같이 나가자. 그쪽에 볼일이 있는데 일보고 저녁까지 먹고 들어오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모와의 외출. 오랜만이다. 

저녁이라고 해 봤자 분식이겠지만 그런데도 행복하다. 

아니다. 내일은 토스트를 먹자고 할까? 

오늘 종일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단어. 

내가 들었다고 착각한 단어.      


어렸을 적에는 종종 이런 착각을 하기도 했다. 

사실은 들을 수 있다고. 

계속 같은 단어를 되뇌면 그 단어가 머릿속에 각인이라도 된 것처럼 들린다는 착각. 

그리고 내가 입과 혀를 움직여 그 단어를 말 할 수 있다는 착각. 


나이가 어릴수록 착각이 아니라 진짜라고 생각하다가 믿어버린다. 

그리고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다. 

하지만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키가 자라고 철이 들자 그런 일은 점점 없어졌다. 

포기하고 현실에 순응해가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크게 나쁘지는 않았다. 


 “이상해.”


나는 분명 ‘돼지’라는 단어를 말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내가 대답을 한순간 아이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다. 

시선을 받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저 그림이 돼지가 아니었나? 

아이들 틈 사이로 보이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여자아이의 입 모양. ‘이상해.’


당황한 선생님의 얼굴. 

그 후 입을 다물자 세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 마음만 빼고.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모에게 매달릴 수도 없다. 

난 항상 그랬던 것처럼 행동했다. 

상처받고, 치유하고.       

    


 버스가 우회전한다. 오늘 내 옆에는 이모가 있다. 

이모는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티셔츠 차림이다. 

이모는 왜 결혼을 안 할까? 문득 궁금하다. 

정말 주위에서 말한 것처럼 짐이 되는 조카 때문일까? 

내가 이모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시선을 느꼈는지 이모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왜?”


나는 눈을 내리고 고개를 흔든다.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이모가 궁금해서. 

이모가 팔을 들더니 내 손에 이모의 왼손을 포갠다. 

이모의 체온이 좋다. 손에 닿는 이모의 감촉이 좋다. 


 “볼일이 끝나면 여기 와서 기다릴게. 너 2층이지?”


나는 이모의 입술에 집중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이모가 웃는다.


 “거기에서 기다릴게. 알았지?”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끝나고 떡볶이 먹을까?”


이모가 눈웃음을 지은 채 말한다. 

나는 따라 웃지만, 고개를 가로젓는다. 

스마트 폰을 꺼내 글자를 입력한다.


 ‘토스트’


이모의 시선이 스마트 폰에서 머물더니 다시 나를 바라본다. 


 “토스트? 그래, 오랜만에 토스트 먹으러 가자.”


그래, 나는 어쩌면 어제부터 단지 토스트를 먹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소리가 들리다니 말도 안 된다. 

이모는 “재미있게 하고 와”라고 말한 뒤 손을 흔들고 언덕을 내려간다. 

나는 벌써 열아홉인데 이모는 끝내 나를 장애인지원센터 현관까지 데려다줬다. 

미소가 지어진다. 이모가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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